오늘부터는 십분 늦게 집을 나서기로 했다.
그 남자와 마주치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계획대로 일을 해 나가기 위해선 될 수 있는 한 이쪽의 노출을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에서다.
운이 나쁘면 육교나 수퍼마켓에서 마주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빨리 앞당겨도 마주친다면 십분 정도는 운에 맡길밖에 없다.
부엌문을 나서기 전에 난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밖의 동정을 살핀다.
부엌 한켠 작은 창문으로 발돋움을 해서, 밖에 전철이나 사람들이 지나가는지 확인을 하는데, 더 주의를 두는 것은 부엌문을 잠글 때이다. 혼자 사는 자취방은 바깥하고의 경계라고 해야 엉성한 철 대문 하나이고 그나마 낮은 담장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오고가는 사람들이 내가 하는 행동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등뒤에서 누군가 나를 살핀다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부엌문을 열었을 때나 문을 잠그고 돌아섰을 때 지나가는 사람하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이유없이 서로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문을 잠그는 동작은 언제나 정확하고 민첩하다. 그렇듯 세심하게 신경을 써도 아주 가끔은 담장 밑에 일부러 숨었다가 일어서는 것처럼 누군가와 마주칠 때도 있다.
철 대문을 나서서 오른쪽으로 백 미터쯤 가면 육교가 나온다. 육교 밑으로는 전철이 다니는데 육교를 건너기 전에 내가 또 다시 살피는 일은 전철이 어느 쪽 에서든 오는가 하는 것이다.
육교 위를 지날 때 전철이 지나가면 마치 지진이라도 나는 것처럼 콘크리트가 심하게 흔들리고 누가 얘길 해도 들리지 않을 만큼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그럴 때 난 공포를 느낀다.
이렇듯 신경이 쓰이는 육교를 내가 매일 두 차례씩 왕복해야 하는 이유는 물론, 출퇴근 때문이다.
내가 그 남자를 처음 본 것은 지난 봄 출근 때였다.
부엌문을 열고 닫을 때 분명히 보이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주차장에 있는 봉고 뒤쪽에서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봄에 이사왔을 때까지도 집 앞은 정리되지 않은 흙 땅이라 주변사람들이 상추나 고추 파 등을 심어 긴요하게 써먹던 자리를 어느 날 밀고 닦더니 주차장을 만들어 버렸다. 차는커녕 운전면허증도 없는 나야 주차장을 만들어도, 혼자 살기 때문에 며칠이 지나도 밥 한끼 제대로 해먹지 않으니 흙 밭을 그대로 놓아도 상관없지만 주차장을 만들어 놓고 보니 내가 흙을 얼마나 좋아했나를 알게 되었다.
남이 심어 놓은 고추 모종 때부터 죽지 않고 잘 자라길 바랬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려 그게 어른 손가락만 해 질 때는 아무도 몰래 몇 개 따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차장이 생기고부터 이 주변에 차 가진 집이 이렇게 많았나 싶게 빈틈이 없이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시동 걸때마다 생기는 냄새야 그렇다 쳐도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크랙션 소리와 슬쩍만 스쳐도 시끄럽게 울어대는 경보장치에서 나는 소리는 한동안 나를 불면증에 시달리게 했다.
그러니 그 남자가 거기서 서성댄다고 해도 차 주인이란 생각밖에 다른 생각이 들리 없지만 내 행동을 지켜봤다고 생각하니 불쾌해졌다.
대문을 꽝 소리가 나게 닫자 그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차 앞쪽으로 나왔다. 그때, 오십이 넘었는데도 젊은 사람 못지 않게 운동을 하는 주인집 아저씨가 약수 물통을 들고 대문을 들어섰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자 그 남자는 육교 있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차는 그대로 있는데 이상하다 싶었던 게 그 남자에 대한 첫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