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느이 아버지 하구 지금까지 잘 살았다 생각한게 딱 한번 있었다. 느들 결혼식 때. 그래도 아버지가 없었어 봐라. 오라비가 있나 삼촌이 있나. 그때 여태 산기 참 용하다 생각했다."
엄마가 왜 저런 말을 하시는지 짐작이 간다. 엄마는 그냥 잠깐 쉬러왔다는 내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혹시라도 남편하고 싸우기라도 했는지 물어보고 싶겠지만 엄마 입에서 남편의 안부를 기대하는건 무리다.
집안에 아기가 있는 건 참 좋다. 이 아이, 하늘이라는 이름을 얼마전에 가진 조카가 아니었으면 나는 이럴 때 어디를 쳐다봤을까.
나의 초라했던 결혼식이 생각났다.
남편은 자신을 탐탁치 않아하는 처가 식구들이 못마땅해서 식 내내 눈도 안 맞추고 대단한 결의라도 한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방학인데다가 너도 나도 취직 시험 준비하랴 친구들도 별로 없었다. 부케를 누가 받았는지조차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때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주례사한테 걸어갈 때 아버진 덜덜 떨고 있었다. 아버지야 말로 그나마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주목을 받으며 걸어 보긴 처음이었을 게다.
그랬어도, 엄마가 아무리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어도 남편이 조금만 살갑게 굴었으면 속에 담아두지 않는 엄마는 금방 풀렸을지도 모른다. 일을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집에 와본적이 없는 엄마.
아직도 나를 사위로 인정하지 않는거야 하며 전화한통 하지 않는 남편. 그런 분위기가 싫어 친정 걸음을 하지 않는 나. 셋 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평생 놀고 먹는 거라면 니 아버지 하나로 신물이 난다. 여자라고 남자한테 기대지 말라고 손가락질 받아가며 대학공부 까지 시켰더니 지 앞가림도 못하고..."
좀 쉬어보고 싶다는 말에 엄마는 질겁을 했다.
"엄마, 언니 좀 가만 둬요. 내려온지 며칠이나 됐다구.."
경희의 말에 엄마는 하려던 말을 삼키더니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게 편할 것 같다. 집에서 유일하게 엄마한테 하라 하지마라를 할 수 있는 애. 결혼해서도 동생 정수의 학비까지 대 주는 능력있는 학원 강사, 경희한테 배우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고등학생도 있다고 했다. 그런 경희가 부럽고 동생이지만 어렵다.
대학교 3학년 때 경희가 학교로 찾아왔었다.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이름없는 지방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얼마 안되서였는데 신입생 모습은 어디에도 없어보였다. 남편조차 친구 같다고 햇다. 경희는 단 이틀을 나와 지내고 남편과 나의 사이를 알아챘다. 그 애가 내려가는 길에 언제 썼는지 편지를 쥐어 주었다. 몇 장 안되는 내용이 잘 생각나진 않지만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말이 있다. 언니가 좋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난 그 사람 맘에 안들어. 결혼할때까지 조심해.
무엇을 조심하라는 거였을까.
동생으로 생각하면 되잖아. 남편이 말했다.
언제까지 저애를 데리고 있을 거에요?
일주일이 다 되어오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내가 소리쳤을 때 남편은 무슨 걱정이냐는 듯이 말했다. 동생? 유라를 동생 경희로 생각하라구?
경희가 들으면 까무라칠 일이었다.
이제 겨우 며칠이나 됐다구 그래? 안정을 줘야지.
남편은 그러는 내가 못마땅한지 빠르게 내 뱉었다.
나 없는 사이에 눈치 주는거 아냐? 그러다 또 나가면 알아서 해.
잠시 난 유라가 우리에게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남편이 저렇게 말하는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며칠동안 섬에 가야 해. 나쁜놈들, 요즘도 섬으로 끌고 가는 놈들이 있대.
그는 행여 싸우다가 칼이라도 맞을까 봐 가죽자켓을 속에다 껴입으며 말했다.
그는 요즘 새로운 일에 뛰어들 계획이다. 탈북자들이 소외감 느끼지 않고 우리와 동화되어 살아갈 수 있오록 돕는 운동과, 사할린에 강제 이주된 사람들이 마지막을 고향에서 묻힐 수 있도록 추진하는 운동 사이에서 그는 고민한다.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나는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