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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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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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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BY 아나스타샤 2001-10-19


세번째의 녹차를 따라 받고서,
옆모습의 스님께 잠시전 생각했던 청을 드렸다.
"스님 이곳에서 하루 묵어가면 안될까요? 그냥 내려가기가 싫네요"
꺼지기 시작하는 불꽃을 무심히 뒤적이며 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스님은 거절을 한다.
"곤란합니다. 이곳은 명색은 관광지 이지만, 이시간 부터는 저희의 수도처 입니다"
다시 입을 떼었다.
그냥 내려가기 싫었다.
이제 내려가면 내 인생 어느 부분에서 다시 이런곳의 하룻밤을 자게 될런지 그런 희망조차 뿌우연 곳에서 붙잡는 하룻밤 이었기에.
"같이 자겠다는게 아니고, 전 스님과 자게 해 주세요"
스님은 나를 쳐다보며 빙긋 웃는다.
여스님의 절에 남녀가 함께 와서 기거한다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었음을 짐작하였냐는 듯한 웃음에 같이 웃음이 나왔다.
"그럼 그럴까요? 마침 저와 함께 지내던 도반이 오늘 하루 출타를 해서 적적하던 참이었는데 잘 되었군요. 막무가내로 떼쓰면 끝까지 거절 하려고 했었어요...."
핏기 없어 보이는 스님의 웃는 얼굴이 무척 곱다.

저 갸녀린 몸으로 이런 생활을 어떻게 견디어 나갈까....

얼덜결에 하룻밤을 자게된 진하와 함께 이른 저녁을 얻어먹고, 법당 앞 단촐한 화단에 걸터 앉았다.
이제 내가 마지막 장을 넘겨야 할때다.
진하와 다시 만났고, 그가 이끄는대로 이 먼곳까지 왔지만
가는 길은 내가 정해야 한다.
그는 빛나는 젊은 태양이 기다리고 있고, 나는 꽃다운 나이를 가장한 병든 육체를 숨길곳이 필요한, 서로 틀린 길이 있음을 내가 정해야 하는 것이다.
"진하야 내 이야기 잘들어"
거의 산을 넘기고 숨어버린 해의 여운이 진하의 온몸을 시리도록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드는것을 애써 외면하고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이었다.
"난 거의 지쳤어. 난 살고 있는것이 아니야. 난 이제 살고 싶지도 않아."
입을 열려는 진하를 가로막았다.
"끝까지 들어줘. 오래전부터 생각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난 너를 만날 계획은 없었어.
우리의 지난날은 곱게 묻어둘거야. 너도 그렇게 해야해. 나한테는 나대로의 삶이 따로 있어. 그것은 결코 너와 함께 하는 길은 아니야. 내가 옳아. 너는 너의 길을 가"
"무슨 뜻이야 현지야"
몇분도 안된 짧게 마주앉은 시간에 벌써 진하의 목소리가 갈라져 상심한 마음을 드러내었다.
"나와의 모든 기억을 이제는 용서하고 잊으라는 뜻이야. 너무 멀리 왔어. 너는 나와 함께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안돼. 내게는 나의 짐이 있어. 그것을 너와 공유할 수는 없어. 나를 다 이해는 못 하겠지만 잠시 함께한 추억만으로 모든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야."
"현지야....."
"너도 이해해 주기 바래. 나도 너의 모습을 곱게 간직할거야. 그러나 함께 할 수는 없어. 절대로"
"마음을 돌릴 수는 없는거야? 나는 이만큼 걸려서 널 찾았는데?"
"애초부터 돌릴 마음은 어느곳에도 없었어.
진하야, 날 놓아줘...... 나도 널 놓을께..."
잠시 목이 메었지만, 상관없었다.
고운 기억만으로 살 자신이 없을 바에는 차라리 단호한 끝을 맺어야 한다.
어느때건, 어느곳에 있던 오래전의 회억만으로 살 수는 없다.
그것은 내가 가질 몫은 아니었다.
산속의 침통한 적막속에 흐르는 진하의 가슴속 개울물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대답없이 고개 숙이고 있는 진하를 에워싸고, 거친 신음소리로 흐르는 소리 요란한....

이른 아침의 등산객들의 낯선 소음으로 아침을 맞았다.
대충 손으로 머리를 묶고 방을 나서니, 방 밖의 툇마루에 진하가 앉아 있었다.
구부정한 어깨를 보는순간 뒤로 다가가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잠깐 일었지만 인기척만 내었다.
내 손은 숱하게 너의 등을 쓸어내렸다. 마음속으로....
"준비할래? 내려가게"

밤새 저렇게 나 일어날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진하야, 나 이곳에서 며칠 있으면 안될까?"
"나 혼자 돌아가라고?"
"그래주면 좋겠다. 이곳이 마음에 들어. 잠도 오랫만에 푹 잤고..."
머뭇거리던 진하는 며칠후 집으로 찾아 오겠다는 말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미안해, 혼자 가게 해서...."
"아니야, 나도 이곳이 마음에 드는걸. 며칠 마음 정리하고 집에서 보자."
여장을 꾸려 혼자 터덜거리며 내려가는 진하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면 안되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다...
그를 걱정하는 그의 부모님을 봐서라도 내가 붙잡으면 안되었다.

왜 같이 떠나지 않느냐는 스님의 말에 그냥 웃었다.
"저 하룻밤만 더 재워 주세요. 내일 돌아갈께요."
그러마고 허락받고, 방에 들어와 팔베게를 하고 누웠다.
나는....
내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짐을 정리할 것이고, 진하가 찾지 못하는 낯선 곳으로 숨을 것이다.
나는....
숨는다 해서 내 생활에 검은 휘장을 드리우지는 않을 것이며, 오늘보다 더 긴 시간이 흐른뒤 자유로운 내가 되어 있을때를 기다릴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이 초록빛에 휘싸인 봄을 지나고, 이글거리는 태양의 여름을 지나, 머금었던 물기들을 모두 모아 단풍 든 잎사귀를 가진 가을의 지금이라면,
나는....
가을로 가는 거침없는 기차를 탈 것이다.
지금이 가을일지라 해도....


지루한 잡문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