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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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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BY 아나스타샤 2001-09-21



초췌한 몰골에 눈두덩이 푹 꺼진채로 경민이 들어섰다.
안봐도 그도 힘들었겠지.
내려오고 싶어도 잘못된 모성에 발목이 잡혔겠지.
거기까지는 이해하려고 애써보았지만, 그것도 힘들었다.
그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차피 경민 한사람만 보고 한 결혼이 아니었든가.
그가 몸을 잡혀 손만 내게 내어민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경민은 울며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숱하게 말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민씨, 열번을 물어도 내 대답은 하나야. 난 돌아가지 않을거야"
"현지야.....현지야....."
그의 눈물이 눈에 들어오지조차 않는다.
"당신 엄마가 원하는대로 해요, 그게 우리 둘을 위해서 바른선택 일거야"
"현지야,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안계시는 엄마곁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어. 다시 잘해볼 수 있을거야. 현지야, 돌아가자"
그는 안되는 것을 우기고 있다.
내가 포기한다면 그도 다시 편안해져서 그토록 사랑하는 엄마뜻을 따르는 착한 아들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것이다.
엄마가 경민의 멱살을 쥐고 몸부림을 치셨다.
"그 에미에 그 아들눔이겠지. 가라. 우리 현지 눈에서 더 피눈물 뽑기전에 니들끼리 잘살아라 이것들아. 천하에 인간같지 않은것들, 니네 새끼가 귀하면 나는 내 새끼 안귀하냐. 이 잡것들아"
엄마가 아무리 모진말과 손으로 그를 내리쳐도 경민은 엄마의 손에 몸을 맡긴채로 울고만 있다.
울고있는 경민의 그 모습이 그와 마지막이었다.
서울로 돌아간 경민은 술로 체념과 뒤엉켜 혼란스러운 감정을, 나와 함께 했던 그 방에 누워 육신이 좀먹고 있을터였다. 안봐도.....
결혼때 올라간 작지만 이런저런 혼수품을 찾으러 간다는 엄마의 언질에 그쪽에서는 단칼로 말을 잘랐다 했다.
아이를 억지로 뗀것 같으니 오히려 자신들 쪽에서 위자료를 받아야 한다고.
그 혼수품들은 위자료의 일부라고....
세상에는 가증스러운 현상들이 참으로 많다.
그 물건들을 사용하고 있을 그집 식구들의 머리속에서 내 몸뚱이 하나 빠져 나온것이 일단은 엄마에게는 다행인가 보았다.
나도 그런 물건들은 필요없었다. 내 옷가지 하나라도 다 싫었다.
그집에 있었던 것들은 모두.
이혼을 하자는 말에 그쪽에서는 위자료로 더 요구하는가 보았다.
하하......

엄마가 말아주시는 미역국을 꾸역꾸역 입에 밀어넣으며,
나의 지나온 날들보다도 앞으로의 남은 날들이 더 암담한 생각....
엄마를 두고 먼저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엄마의 가슴에 자식이 칼을 들이대는 짓이지만
내 심정은 꼭 그랬다.
누군가가 내 등을 떠미는것이 아닐까.... 그럴정도로 나는 죽음과 가까웠다.
하지만, 살아야 했다.
제대로 사는것을 엄마에게 한번이라도 보여줘야 했다.
방바닥에 수북히 모아지는 머리카락들이....
선잠에 들어 소스라치게 놀라 만져보는 내 배의 훌쭉함이.....
나를 수시로 몸서리쳐지게 했다.
아가야 미안해......
새 머리카락이 돋을때 즈음에는 널 같이 잊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