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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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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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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BY 아나스타샤 2001-09-17


세상에는 이해되지 못하는 악연도 있는 모양이었다.
남녀 사이야 만나서 애정이 식으면 헤어지면 그 뿐이고, 연관없는 이웃이라면 그집문을 넘지 않으면 그 뿐이었지만,
고부간 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온 관습을 타개할 획기적인 반란이 없는한 불가능한 악연인 것인가 보다.
싸움끝에 어머니는 외가댁을 간다고 짐을 챙겨 떠났다.
어머니의 외가댁은 우리 친정이 있는 시골과 멀지않은 다른 읍이었다.
아들들이 총동원해서 어머니의 시골행을 막았지만, 아무도 어머니를 꺽을 수는 없었다.
문을 나서며,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그리고 내 배를 흘겨보는 어머니의 눈에서 불이 뚝뚝 떨어진다.
내가 어쨌기에 도대체 나를....

7개월의 내 뱃속에서는 아이가 힘찬 운동으로 자신의 존재함을 알리고 있건만, 나는 우는 것 외에는 달리 먹는것도 잠을 자는것도 편하게 하지 못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나의 근본을 송두리째 앗아갈 정도로 깊은 나락을 헤짚게 하였다.
내 고단한 인생은 역시나 였다.
어디를 가나 역시나.....

어머니가 나가자 휭하니 밖으로 나간 경민에게 전화가 왔다.
혀가 조금 꼬이는 소리인 경민은 술 외에는 달리 하소연 할데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아직 시아주버니나 시동생들이 오지 않은 시간이기에 경민이 있다는 장소로 나갔다.
여름의 초입이라 포장마차는 야외에 의자들을 갖추고 있었고, 그 한쪽 구석에 경민 혼자 술잔을 들고 앉아 있었다.
뒤뚱거리기 시작한 내 걸음이 귀에 익은지 경민이 고개를 들어 가까이 가고 있는 나를 쳐다본다.
그는 울고 있었다.
눈물을 떨구고 있는것이 아니고 얼굴 온통 눈물이 그를 덮었다.
"경민씨, 미안해"
나의 말에 경민은 거세게 도리질쳐서 고개를 계속 흔든다.
"아니야! 아니야! 현지 네 잘못은 아무것도 없어. 다들 그것을 알거야. 엄마가 나빠"
쉴새없는 경민의 눈물을 보며, 내 탓인것 같아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저 사람은 아무것도 알지는 못하지만, 하늘이 있지 않은가.
하늘이 깨끗치 못한 내가 속이고 역행하자 다른이들에게서 눈물을 뽑는가보다는 생각에 아무런 말도 못하는 바보같은 나....
"현지야,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겠지?"
"용서고 뭐고가 어딨어. 경민씨만 잘 넘겨주면 난 괜찮아"
"괜찮다고? 뭐가 괜찮은데? 등신처럼 당하면서도 괜찮다고?
말해봐, 현지 너는 도대체 왜 그러고 한마디도 못하고 사는건데?"
전 아무말도 할 수 없어요.....
저는 저의 남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묵묵한 내게 경민은 자신의 화 반, 내게 원망 반으로 애꿎은 술잔만 땅바닥에 내동댕이친다. "
현지야, 엄마는 너랑 헤어지지 않으면 모자인연을 끊자신다. 오래전부터 그래왔어"
그랬구나....
그래서 경민이 그토록 헤메었구나....
"경민씨? 도대체 내가 어머니께 어떻게 해야 그런 소리를 안 하실까?
"넌 어떻게 할 수 없어"
"해결책을 내 봐요, 정말 이혼이라도 할건가요?"
"현지야, 엄마의 생각은 말이다"
갑자기 경민이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까지 커다랗게 웃었다.
정말 우스운 무엇인가 본 것처럼 커다란 소리로.
"현지야 기가 막혀서 웃음밖에 안 나온다."
"말해봐요, 어머니의 생각은 무엇인지"
"이미 결혼은 받아 놓았지만, 우리 그 위대하신 엄마의 생각은 말이다.
네가 외동딸이고, 외삼촌이 소개할때 시골 부자라고 해서, 엄청나게 기대를 했다고 하시더라. 그러나 막상 눈으로 보니 기가막혔다고 표현하는 우리 엄마. 내게 도움주지 못할바에는 너랑 헤어지라고 하는거야"
"그럼 왜 처음부터 말 안했어요"
"내가 그걸 말이라고 옮기니? 난 꼭 너를 행복하게 해 줄거야. 싫다는 너를 억지로 밀어붙여서 데리고 온 내가 그걸 말이라고 하면 천벌을 받을거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한밑천을 기대했는데 무산되어서 나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거군요?"
"바보야. 내가 술을 먹게 된 것도 그래서다"
이젠 내가 웃었다.
나도 경민처럼 큰 소리로 웃었다.
너무 웃어서 눈에서 눈물이 범벅이 되도록 실컷 웃었다.

모두를 이해 할 수는 없다.
그러려면 나는 아버지부터 이해해야 하고, 엄마부터 이해해야 한다.
그 두분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않는한, 시어머니의 모순을 탓할 수는 없다.

어머니가 며칠간 집을 비우자 시동생들도 외박이 잦았다.
경민과 둘이 있자 나는 오랫만에 엄마에게 한번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섰다.
결혼식이 끝나고 처음 친정을 가는 것이라, 말끔한 임신복도 한벌 사고, 미장원에서 짧게 컷트도 했다. 겉으로는 행복한 임산부의 모습이고 싶었다.
친구 은경에게 전화를 걸어서 친구들과 약속도 잡았다.
은경은 전화 수화기 너머로 팔짝 팔짝 뛰며 환호성을 지른다.
기집애, 너무 행복해서 전화 안한거냐고.... 나쁘다며 얼른 오랜다.
너무 행복해서?
정말 너무 행복하면 전화 하는것을 까먹게 될까?
결혼식을 올리고, 임신을 하면 다 행복한줄 아는것이 미혼때의 철없는 꿈이었다.
다른 환경을 원하여 한발 딛은 그곳이 미혼때는 상상도 하지 못할
깊은 수렁이어서, 두발 다 뺄 수 없는 그런 늪 속 일수도 있다는 것을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말아야지.... 시골로 가는 버스안에서, 모두를 보고 싶은 마음에 마음이 설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