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지 않은 시댁의 집에 여자라고는 시어머님과 나, 둘뿐
결혼하지 않은 형, 동생들과 벅적거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이면 출근 준비에 경민과 제대로 눈 한번 맞출 시간도 없었지만 경민은 천성이 따듯한 사람이었다.
방안이 온통 밤색 일색인 고급스럽지 않은 외삼촌이 해주신 장농이 차지한 좁은 방안에 둘만이 있을때면, 자상한 경민의 배려가 가끔 미소를 띠게도 해 주었다.
어머님은 무척 이중적인 성격의 소유자 였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내 처지에 완벽한 행복을 바라는것은 모순이었다.
식구들이 있을때의 살가운 보살핌은 낮동안 둘이 있을때면 돌변하였다.
경민의 관심이 엄마에서 내게 향해진다는 것을 참지 못하셨나보다.
결혼하지 않은 시아주버니의 속옷빨래도 시키고....
실수하는 척 하면서 내 얼굴에 빨래거리를 집어던져서 맞추기 일쑤였다. 입가에 웃음을 감추지 못한채로.....
아무런 대항도 하지 않았다.
결혼때의 허술한 혼수를 직접적인 이유로 들고 나오는데야 궂이 항변을 한들 이혼을 할 결심이 없는한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집 아들들은 모두 엄마의 치마폭에서 돌았으니까.
경민이 제일 효자였다.
어머니가 주무시기 전에는 그 방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외삼촌 눈에도 들었고, 어른에게 어떻게 하면 효도가 되는지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내게도 같은 마음을 베풀었지만.... 효자가 내 입장에서 결코 좋은것만은 아니었다.
임신을 했다.
결혼 초기의 바로 들어선 임신 소식에 어머니는 걸죽한 음담으로 내 배를 흘깃거리며 드러나는 적개심을 내 보였다.
지집이 얼마나 밝혔으면 벌써 애가 들어서느냐고....
제대로 입덧의 텃새는 부릴 입장이 아닌채로 조금씩 배가 불러왔다.
경민의 월급은 어머니가 모두 가져가 부식비만 타 쓰는 입장이었길래, 사실 목욕비도 시골의 엄마가 부쳐주는 아주 작은돈으로 내게 필요한 간단한 일상용품은 충당했다.
입덧으로 먹고 싶은것이 있어도 나는 참을 수 있었다.
짜장면이 먹고 싶으면, 흘러나오는 냄새를 맡았고
참외가 먹고 싶으면, 리어카위의 금빛 색을 눈에 집어넣으면 되었다.
아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내 입에 호사스러운 것을 집어 넣지 못할만큼 어머니와 많이 불편하고 괴로운 생활이었다.
경민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았다.
내게 퍼붇는 소나기중의 어느 빗방울 이거니.... 여기면서.
"전화받아라"
앙칼진 목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손아귀에서 팽개쳐지는 전화 수화기를 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에"
"어~~현지야 지금 나올래?
경민은 많이 취해 있었다. 내 배가 불러오면서 경민의 술 먹는 횟수가 조금씩 잦아지고 있었다.
"빨리 들어와요, 나가기에는 좀 늦었어요"
옆에서 험한말로 내 폐부를 찌르는 어머니의 소음을 피해 수화기를 귀에 바싹 붙여 다시 말했다.
"들어오라니까요"
"현지가 나오기까지 안들어갈거야, 집 앞 사거리로 나와라"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의 전화는 끊어졌다.
어머니의 눈초리를 적당히 무시하며 집을 나섰다.
저번에는 결혼 예물로 받은 시계며 반지도 어디서 잃어 버렸는지 모를 정도로 취했었는데...
사거리 앞까지 가자 몸을 아무렇게나 내던진것 같은 경민의 취한 몸이 남의 가게문 셔터에 기대져 있었다.
"경민씨 일어나요, 나 왔어" 옆에 엉거주춤 쪼그려 앉아 경민의 몸을 흔들자,얼굴의 근육조차 제멋대로 움직이는 얼굴이 헤벌죽~~ 웃으며 두 팔을 크게 벌려 허공을 헤메 안는다.
"우리 사랑하는 현지 왔구나"
이 사람은 마음이 너무 따듯해서, 너무 미안하구나....
일으켜 세우려는 나를 자신의 옆에 주저앉혀 헛손질의 손으로 배에다가 얹는다.
"현지야, 아가야, 미안하다 미안해"
"미안한게 뭐가 있어요, 그런말 하지 마"
"아니야, 현지야 나 안다. 다 알아. 우리 엄마 성격 내가 모를줄 아니?"
깜짝 놀랐다.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엄마가 매일 회사로 전화를 하신다. 너와 있었던 일을 화가나서 말씀하시지. 그러나 난 알아. 넌 잘못한 것 없는채로 늘 당한다는 것을"
그랬구나.... 항상 전화로 나를 험담했구나.....
"현지야, 내 엄마니 어떻하냐. 그저 미안하다"
"괜찮아요, 나 아무렇지도 않아"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은 아니지만 시어머니 때문에 어긋낼 수는 없다.
좋은 사람에게 몸을 의지한 나는 이런것쯤은 잘 참아내야 했다. 바보같이도....
늘 울자리를 찾아다니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