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을 개어 엄마의 옷 보퉁이 밑에 집어넣을땐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내 인생에 다시는 땋은머리 나풀거리며 복도를 뛰어다니는 시절은 오지 않을것임을 알고 있었고, 그 교복과 함께 나는 진하의 기억도 내 가슴속 맨 밑의 한켠에 개켜넣었다.
진하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과, 내가 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은 상반된 감정으로 나를 계속 목메이게 했다.
울지 말아야 한다.
우는것도 내겐 사치일 정도로 나는 내 몸뚱이를 거둬야 했다.
주소 하나만 달랑 들고, 상미를 찾아 서울에 왔다.
졸업쯤은 내가 없어도 잘 치를것이다.
시골의 세모와는 달리 번쩍이는 서울은 그 출렁임 만에도 사람들의 체취가 느껴진다.
바쁜 그들의 걸음걸이 속에는 그들만의 애환과, 소중한 가족들에게로 향하는 조바심이 묻어난다. 나는 돌아갈 가족은 잠시 잊기로 했다.
내 작은 몸뚱이 하나 뉘일곳을 찾는것 만으로도 눈에서는 시퍼런 불길이 솟아났으니까..
상미의 올케는 나를 드러내어 불편해 했다.
내가 고작 하는일이 상미의 쟁반을 거들어 준다거나, 탁자정도를 치워주는 정도였기에 늦은 셔터문을 내리고 올케의 집에 들어가 발뻗기 힘든 조카들 사이를 상미와 함께 몸을 눕힐때면, 올케의 보이지 않는 시선에 맘 편히 발을 뻗을 수가 없었다.
"현지야, 불편하지?"
상미는 자신이 베풀어 주는 초라한 공간을 부끄러워한다.
"상미야 너무 걱정마. 어떻게 되겠지. 이렇게 시골로 돌아가지는 않을거야"
"너, 진하에게 연락 안해도 되니?"
"안할거야. 진하에겐 가야할 길이 있잖아. 나역시도 마찬가지고... 그 후에 만나도 늦지않아" 말하면서도 나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늦지 않다고? 그것을 누가 내게 말해준적이 있던가?
아무도 나의 한치앞을 턱짓으로라도 해주지는 않는다.
가진것 없는 서울생활의 시작이 더 뼈저리게 추위로 다가오는 것을 피하고 싶은 내 파닥거리는 날개짓은 스스로도 형편없어서 실소가 나온다.푸훗!
낮에는 이곳저곳을 눈여겨 다리품을 팔며, 직장을 알아보았다.
갈 곳은 많았다.
전신주에 붙어있는 광고지며, 신문 하단을 장식한 월수에 눈이 홀려 전화하면 여지없이 그런곳은 나를 싸매고 데려갈 것이니까.
그러자고 온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기다려야 했다.
진하를 마음에 품고 기다려야 하는 혼자만의 약속이 나를 아무곳에나 던지지는 않았다.
스스로도....
올케의 차가운 냉대를 뒤로하고 상미를 따라 호프집으로 나오는 저녁시간은 잠시라도 피곤한 몸을 쉴 수 있는 호사였다.
상미를 돕기도 하고....
미안해하는 상미의 손에 떠밀려 생맥주 한잔을 놓고 탁자 구석배기에 앉아 사람들을 짐작하는 그런 변하지 않는 날들이 한달이 지나갔다.
친구들은 졸업식을 며칠 남기지 않았을 것이며,
엄마는 나의 편지를 받고 안도하셨을 것이다.
진하는 자신이 가고자 욕심내었던 대학에 들어갔을까?
그래! 들어갔을거야.....
저 사람은 왜 혼자왔을까?
옷 매무새가 깔끔한 것을 보니 성격이 카랑한 부인이 있나보군.
생맥주의 거품이 입술에 묻을때면, 나는 잠깐 진하의 촉감을 느낀다.
차고 촉촉했던 그러나 따듯함이 퍼지는 진하의 기억을 이제는 술 한잔에 떠올려야 할 만큼 진하는 내게 멀리 있었다.
늘 혼자오는 사람이 있다.
내가 살펴본 바로는 그는 대인관계도 원만치 않은것 같고, 말을 어떻게 써야 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는 얼굴이 심하게 얽었으며, 하체에 붙은 살은 남자의 몸 같지않게 두툽해서 무척 둔해 보이기도 했다.
넓지 않은 실내에서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은 늘... 그와 나 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