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의 아무렇게나 얽어매어 가축을 키우던 축사는 점점 규모가 커졌고, 작은 몸의 엄마는 읍내에까지 리어카로 음식점을 돌며 짠밥을 걷어 그 커진 규모를 그래도 감당하고 계시었다. 늘 아버지의 몫은 먼산을 바라보거나 때 되면 밥을 재촉하는 일 뿐이었다.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쪽마루에 계시는것 만으로도 엄마에겐 미소가 떠나지 않았으니까.
나는 버스를 타고 이십여분 떨어진 읍내의 여고로 진학하면서는, 엄마 혼자 벅찬 가축의 출산이며 축사의 청소를 이른새벽 도와야 했다.
내 몸에 분뇨의 냄새가 배일까봐, 살 떨리는 초봄의 아침에도 나는 늘 샤워를 하고 등교를 해야했다. 나의 학교생활은 아무 문제가 없었고, 친구들과의 하루는 새벽의 힘든 노동을
잊어버리기 충분할 즐거움이었다.
외모가 보탬이 되었다.
시골의 혈색에 어울리지 않게 하얀 피부나, 이국적인 외모로 친구들은 내가 밥을 해먹고
나오는 양은남비가 찌그러진 것을 상상하지 않았고,
새벽이면 허리에 고무줄 달린 몸뻬바지와 철떡거리는 긴 고무장화를 신고, 삽으로 돼지분뇨를 걷어야 하는 생활이 있는줄도 친구들은 상상하지 않았을게다.
내 팔뚝에 평생 지녀야 할 상처가 생기기 까지는....
돈사에서 재미를 본 엄마는 내 눈에는 송아지 처럼 보이는 개도 대여섯마리 시작하였다.
늘 무서웠다. 그 개들의 컹컹거리며 짖는 소리는 아직 때묻지 않은 의 심장을 옭죌만한 공포였다.
개들은 밥그릇도 삼킬만큼 무섭게 먹어치웠는데, 밥을 가져다 주는 그 새를 못참고 내 팔뚝을 물었다.
놓지 않았다.
길고긴 송곳니는 내 오른팔뚝을 관통하고 개에게 내맡겨진 나는 몸뚱이가 아니고 개밥이었다. 기절에서 깨어난 나는, 개밥그릇이 있던 자리에 흥건한 피를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팔은 감각이 없었다. 아버지가 개를 삽으로 내리쳐 목숨을 끊었다 한다.
근 한달여를 결석하며 치료를 받고서야, 나는 친한 친구에게 내 상처와 연관된 집안을 조금씩 이야기했다. 살은 메꿔졌지만, 흉하게 관통되어진 팔뚝은 예전의 팔뚝은 아니었다.
그 상처에 친구들은 울었다.
아아.... 내 친구들,
시골하늘의 그 밤하늘에 떠있던 별....
교정을 둘러싼 플라타너스의 스산한 낙엽소리...
플레어 스커트로 뛰어다닐적 마다 삐걱거리던 교실복도...
나는, 태원씨를 선택하면서 모든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이해될 수 없는 선택이었고, 내 고집스런 자존심은 우정을 믿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태원씨가 창피했었는지, 내 처지가 창피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친구들을 버린 댓가를 달게 받고있다.
여고 2년의 여름은 불볕더위가 기승이었다.
매미도 차마 더위를 피해 깊은 그늘속에 숨어버리고 우리는 커튼 드리워 햇볕 차단한 교실에서 그 여름을 진학준비로 보냈다.
햇볕을 보지못해 파리한 안색들의 우리는 공부보다는 잡지의 펜팔란을 보며 키득거리기도 했고, 친구의 삼촌이 외국에서 선물한 만년필을 서로 써보려고 빼앗다가 하얀 교복에
잉크를 뿌려 동동거리기도 했다.
그 깔깔거리던 여름에 "진하"를 만났다.
우린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찾으려고 애쓴적도 없었지만, "진하"
와 "나"는 서로가 찾던 사람이란 것을.....
하교길에 교복입은 진하와 내가 나란히 정류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는 또래의 학생들은 모두 흘깃거렸다.
진하와 나는 그들의 흘깃거림을 받을만큼의 외모였다.
그는 준수했고, 내게 감동을 줄 만큼의 정서도 함께 갖추고 있었다.
나는 진하를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