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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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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BY 아나스타샤 2001-08-26

차라리 잘된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애쓰며 길들여 지려고 버둥댔던 2년의 시간은 내게는 없어도 좋은 시간이었다.
아니, 그 2년 뿐만이 아니고 그 훨씬 전, 전부터 나는 없었어야 맞는 일이다.
엄마는 무얼하고 계실까.
깊게 주름패인 오그라진 늙은 몸을 뻗어 청자를 태우며 가슴속 한을 연기에 뿜어내고 계시겠지. 무책임한 아버지의 옆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채로......
엄마도 태원씨를 포기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선 잠시 목이 메인다.
이 호프집에서 태원씨를 만났다.
나는 오늘 이 문을 나서며 태원씨와 헤어질 것이다.
그와, 그의 부모님으로 연관된 모든 기억들로부터 헤어져야 하는 것이다. 태원씨를 만나게 된 시작을 이야기 하려면,
나의 예전을 거슬러가야 한다.
내 배경이 예사로웠다면 태원씨와 함께 하는 일은 결코 없었으리.

어린시절의 기억중 대부분은 엄마와 함께 아버지를 찾으러 다니는 일이었다.
나는 엄마가 왜 아버지를 찾아 다니는지도 모른채, 그저 엄마의 손을 잡고 졸랑졸랑 따라
다니는 것만이 좋아서 연실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엄마의 옆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녔다.
아버지를 찾는곳은 서너군데쯤 돌면 언제나 그곳에 계셨다.
아무렇게나 헝크러져 제짝을 찾기 힘든 신발들 속에서, 눈익은 아버지의 신발을 찾아낸 엄마의 눈빛은 내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앞이마에 흘러내리는 잔머리를 침을 발라 붙여 묶어주고, 빨간 구두를 사주는 엄마의 눈빛이 아니었다.
왁자한 소음속에 앉아있는 아버지는 항상 눈이 충혈되어 있었고,
어느때는 그런 눈을 옆에있는 대야의 물을 찍어 축이고도 있었다.
아버지를 찾아 셋이서 집으로 올때면, 나는 엄마의 손을 놓쳐야 했다. 갈때와 다르게, 집으로 돌아갈때는 엄마는 나쯤은 옆에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뒤쳐져 어린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한쪽 팔을 두손으로 잔뜩 움켜쥐고 걸었다.
행여나 그렇게 잡으면 다시는 노름방 같은곳에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일이 생기지 않기라도 하는양, 거세게 ......
친아버지가 아닌 의붓아버지라는 것을 알게된 것은 머리가 거의 굵어서였다.
친척이나, 다른 형제자매가 없는 내게 누군가가 귀뜸해줄 필요도 없었겠거니와, 친아버지가 아닐거라고 생각할만한 특이한 대접을 받고 자란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어린시절 중, 한번의 이사를 하였다.
엄마의 궁시렁거리는 잔소리속에 우리는 아버지가 노름으로 집이며, 땅, 또 직업까지 잃었다는것을 짐작했고, 낯설은 산속의 허름한 시골로 세식구는 이사하였다.
그곳은 내가 놀기에는 적당한 작은 시냇물도 하나 집앞에 흘렀고,
너른 마당을 둘러가며 피어나는 봉숭아며 맨드라미의 꽃들이 내 친구였기에, 나는 시골이 좋았다. 엄마는 너른 마당 한켠을 수리하여 가축을 키우기 시작했다.
편안하게 마루에 앉아있기를 좋아했던 아버지와 달리 가축은 엄마의 몫이었다.
그러나 엄마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하이얀 피부에 윤기가 흐르는것이 초경을 치르고 난 나의 눈에 비추인 엄마의 모습 짐작에서, 엄마는 원하는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고 보여질 정도로 우린 아무일 없는 시골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갈래머리 따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