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산다는 것...
내가.. 수술을 받고...자궁을 덜어내고...
영원히.. 불임판정을 받는다면..
나는.. 견뎌 낼수 있을까?
희망도 없는 이 지옥에서...
나는 과연 살수 있을까?
문주..
문주...
사랑스러운 나의 아기 문주...
이 아이를 생각하면...
못 견딜 것도 없을것 같았다...
시어머니가.. 영원히 사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나만 남겨질 때가 올 것이다...
멍하니.. 있는데... 어머님이 부르셨다..
"얘... 얘... 나 물 한잔 다오.."
어머님은.. 동서네에 다녀오시고 난후...
초음파 사진 한장을 가져 오셨다..
그리고는...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 보시며...
"당신.. 이게 뭔줄 알아요? 이게 그 고추라는 거에요..고추... 얘.. 너도 와서 봐라.. 넌 이런 거 한번도 못 봤겠지만.. 이게 고추다.."
하고 싱글벙글이셨다...
어머님의 기분이 좋아지시자.. 나의 시집살이도 한층 느슨해졌다..
어머님은 종종.. 나에게 여유로운 시간을 마련해 주셨다..
물론.. 바깥외출이라도 할라치면..어머님의 얼굴에는 어두움이 실렸고..
친정에 전화라도 넣는것은 꾸지람으로 이어졌지만...
그래도 나는 한번씩.. 오후의 이런 여유로운 사색의 시간..
그리고 이제 돌이 지나.. 제법 말길을 알아듣기 시작하는 문주에게 엄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는 어머님께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이대로..
이대로...
어쩌면.. 이대로는 살 수 있을까?
나의 생각은 갈팡질팡하였다...
어머님께 물을 떠다 드리자...
"오늘 문주 애비는 일찍 온다디?"
하고 물으셨다..
"네.. "
그날 저녁...
남편이 어머님의 방으로 불려가고...
내가 차를 준비해.. 방으로 내갔다..
방 앞에 서자...
큰 소리가 울려져 나왔다..
"어머님.. 왜 이러세요? 요새가 무슨 조선시대에요? 아들 못 낳으면 쫓겨나야하는 칠거지악같은 거라도 있는 줄 아세요? 어머니 며느리요.. 그래요.. 수정이요.. 최선을 다했어요.. "
"내가.. 뭐.. 수정이를 쫓아내겠다고 했니? 다만.. 나는 니가.. 어딜 가서... 아들이라도 하나 봐 오면.. 지가 부담이라도 덜겠지.. 나는 다 수정이 생각해서야.. 지가.. 그래도 명색이 맏며느린데.. 지 동서 아들낳는데.. 아들 없이 달랑 딸 하나... 있으면 저도 위신이 안 설테고.. 니가 낳아만 온다면.. 저도 자기 아들처럼 키우면.. 그게 나중에 다 지아들이 되는거야..."
"아예.. 수정이를 쫓아내세요.. 네.. 어머니.. 수정이더러 나가라고 하세요..."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쟤가.. 어디 나갈애냐..거머리처럼니다리를 꽉 물고 놓지를 않으니..."
거기까지...
나는 거기까지 듣고... 황급히 부엌으로 돌아왔다..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쳤다...
어째야 좋단 말인가...
남편이 방문을 거칠게 열고 밖으로 나왔다..
부엌에서 어정쩡하니.. 찻상을 앞에 두고 서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부엌으로 들어섰다..
나를 안았다..
따뜻하게..
따뜻하게...
"수정아.. 미안하다...미안해..."
그 때.. 어머님이 따라 나오셨다...
"잘 하는 짓이다. 어른 계시는 집안에서.. 역시 못배워 먹은 천한 것은 하는짓이 다... 저렇다니까... 너는 결혼해서도 그리 서방한테 꼬리질을 치고 싶으냐?"
"어머니!"
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너는 니 마누라땜에 니 어미 잡겠다.."
어머니가 방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날밤...
남편과 나는 나란히 자리에 누웠다...
"여보... 나.. 당신한테 고마워요..."
"바보같이... 내가 당신한테 해준게 뭐가 있어?"
"그래두요...나 내일부터 문주 데리고 친정엘 좀 가 있을게요.."
"처가엔 왜?"
"그냥요.. 나.. 엄마본지.. 너무 오래됐어요.. 그래서.. 엄마도 아빠도 문주 너무 보고 싶어 하시구요..."
"어머니한테는 내가 말씀 드릴게.."
"아니에요... 내가 말할게... 내가 한번 야단 들으면 될걸.. 당신 어머님한테 싫은 소리 듣게 하고 싶지 않아.."
"수정아..."
남편이 나를 안았다...
남편의 팔을 풀었다..
그리고.. 옷을 벗었다...
조용히.. 조용히...
"여보.. 오늘 우리 그거 해요..."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의 남편을 온전히.. 내 것으로 가지는 것이..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다...
영원히.. 남편과 안아보는 것이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를 신뢰하진 않았다..
그를 원망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는 무너질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가 약한 사람이었다..
어머님에게 있어 그는 사랑받아야 할 맏아들이었다...
그가 나를 위해 지금껏 싸워준 것들...
그가 나를 위해 지금껏 포기한 행복들에...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빚진 셈이었다...
이제...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