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렇게 정상의 자리로 돌아온지 한달이 흘렀다...
친구들이 와서 자신들의 시집 얘기를 늘어놓을 때에도 나는 그냥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시누이가 손위로만 여섯인 집에 시집을 간 고교 동창생이 아들 녀석을 데리고 놀러왔다...
아들을 뱄다는 소식을 접하자.. 그 날로 공주가 되었던 일...
그 뱃속의 태아로 인해... 편안하고 대접받던 열달이 지나고..
아이를 낳자마자.. 친정엄마의 사정으로 시댁에 가서 산후조리를 했던 일...
병원에서 집으로 퇴원하자마자.. 근처에 사는 시누들이 애들이 다 와 있어... 누워보지도 못하고 조카들 뒷바라지에 팔을 걷어 붙여야 했던 일을 웃으면서 얘기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그제서야 해맑게 웃었다...
그냥...
단순히..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구나...
내가..
어머님께..
그리고 아버님께.. 무언가 용서받지 못할 큰 죄를 저지른 죄값으로 미움을 당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시어머니들은 다 똑같아...
애 낳으면 괜시리 극성맞아지고...
하루에도 두번씩 전화하시고...
일주일에 한번씩.. 집으로 찾아오시고...
주말마다 시댁으로 부르시고...
이 모든 일들이.. 아주 당연하게..
신 시집살이라는 미명하에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듣고나서 나는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시댁에 성묘가 있는 날이었다...
추석이 지나고...
가을바람이 지나고.. 겨울바람이 불어올 때면...
조상들의 묘를 찾아 인사를 드리는 풍습이었다..
그렇게.. 11월은 바쁜 달이었다...
11월의 첫째주에는 남편 친가의 성묘가 있었고...
11월의 둘째주에는 남편 외가쪽으로의 성묘가 있었다..
둘째주가 되었다...
입덧이 심해서 서 있기조차 힘이 들 때에도 그르지 않았던 행사였다.
시동생은 둘째라는 핑계로 빠지고...
남편과.. 나.. 그리고 어린 문주와 시부모님이 남편이 모는 차를 타고 성묘길에 나섰다..
어머님은.. 오랜만에 친정식구들을 만나시는 기쁨에 아침부터 들떠 계셨다...
어머님은 친정식구들과 어울리는 것은 즐기셨다.. 친정 식구들과 해마다 봄 가을로 여행을 다니셨고... 일가 친척들이 다 근처에 살았다.. 매번 제사때마다 아버님과 나를 대동하고 친정엘 다니셨다.. 그런 어머님께서 나의 친정나들이에 극도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떤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이 모든것이.. 아들을 둔 어머님의 어떤 묘한 심리상태에서 비롯된 당연한 행위라 믿었고 나를 위로하였다...
산소에 도착하고.. 나는.. 어머님이 나에게 들고 있으라고 부탁한 외숙모님께 선물할 화분을 들고 내렸고.. 어머님은 어린 문주를 안고 내리셨다...
사람들은 모두들 태어난지 몇달 안된 어린 문주를 보고 기뻐하였다...
서둘러 성묘를 끝내고.. 차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했을 때.. 어머님은 나에게 그 화분에 대해서 물으셨다..
"수정아.. 화분은?"
그제서야.. 내가 산소앞의 산소지기의 집에 화분을 두고 온 것을 알아차렸다..
"어머님.. 그게.. 제가 산소에 화분을 두고 왔어요.. 전...그 집에서 식사를 할 줄 알고..."
"뭐야?"
어머니의 눈이 독기를 내뿜었다...
외숙모가 당황하였다...
"괜찮아.. 가서 가져오면 되지...뭐..."
"네..어머님 죄송해요.. 금방 가서 가져올게요.."
"왜 그랬어? 응? 왜 그랬어? 너.. 나를 우습게 보고 무시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런 실수를 저질렀지.. 아님.. 니가 긴장하고 있으면 그런 실수를 했을리 있어? 응? 왜? 왜? 왜?"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히셨다...
외숙모님과 이모님들이 나에게 달려드는 어머님을 말리셨다...
남편이 달려오고...
"엄마.. 진정하세요.. 제가 수정이랑 가서 가져올게요.."
시아버지가 달려오셨다....
아버님의 얼굴을 보자.. 어머님의 화가 주저앉았다...
남편과 차를 몰고.. 산소로 돌아갔다..
화분이.. 현관 앞에.. 고이 놓여 있었다.. 내가 둔 그자리에...
눈물이 흘렀다...
악몽이 살아났다...
돌이킬수 없는 관계...
돌이킬수 없는 관계...
남편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먼산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수심이 어렸다...저 얼굴에 어린 수심이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