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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BY 안개 2001-08-28

"너희들 덕분에 그래도 일찍 끝났다. 더운데 애 많이 썼다. 비 오기 전에 빨리 가봐야지."
이장이 봉사활동 통지서에다 도장을 찍어주며 말한다. 이장댁이 오더니 슬그머니 조카손에 용돈을 쥐어준다.
떠들썩하게 배웅을 해주고 나자 애들 때문에 활기있던 집안이 조용해진다.
조리실에 들어가 아침에 해자엄마가 건드려 놓은 담뱃잎을 간추리자 주천댁이 슬그머니 들어와 한 줌 집어서 쓸 만 한 게 있는지 고른다.
"이제 몇 골만 뜯으면 되니까 막걸리 한사발 하시고 가지요 형님."
"그럴까 그럼. 더운데 밖에 나갈거 없이 그냥 일루 갖고와."복수아버지가 건조장 안에서 말하자 이장댁이 점심에 먹었던 반찬 두어 가지를 소반에 받쳐온다.
"이건 딸 때마다 귀찮어. 주전자에 따라 먹어야 제 맛인데..."막걸리 병을 위아래로 흔들며 주천댁이 거든다. 혼자살더니 느는 것은 술밖에 없다고 하더니 웬만한 남자들보다도 더 마신다.
"내년에는 담배 안하면 뭐 할란가?" 복수아버지가 막걸리잔을 내려 놓으며 은근히 묻는다.
"이제 담배 안할라고? 그럼 이제 복수 아버진 뭐해먹고 살어" 안주를 집던 주천댁이 복수아버지를 보며 놀라서 묻는다.
"버섯을 하던지 참 다래를 하던지 뭘 하든 담배는 안할려구요." 이장의 말에 복수아버지의 얼굴이 굳어진다.
차마 난 어떻게 되냐구 물을 수 가 없다.
주천댁이 막걸리 사발을 벌컥 벌컥 들이키며 빈 잔을 복수아버지에게 내민다.
"환갑 지나면 인생이 좀 편해져야 하는데 복수아버지는 아직까지 뭐해 먹구 사나 그 걱정이요."복수아버지의 마음을 읽은 듯 말한다.
주천댁 얘기를 듣고도 이장이 아무소리 안하는 것을 보니 혼자 할 생각 인가보다.
복수아버지도 새 장가를 갈려면 좀 편할라구 가는거지...그것들만 없었어봐요. 지금은 얼마나 편하겠어. 아마 복수도 지금쯤 지 아부지 모시고 살았을 건데. 손주나 보고 살던지 아니면 단촐한 나 하고나 어떻게 하지. 다 복수아버지 팔짜유."막걸리 몇 사발을 마시더니 주천댁이 안하던 소리를 한다.
"사실 나는 해자 엄마가 젤로 부럽소. 어떤 년은 서방한테 잘못보여 몇 년 살아보지도 못하고 ?겨났는데 그 여편네는 무슨복에 아무것도 안하구두 서방한테 대접받구 사는지..그래서 내가 더 심술이 나서 그러는 거라우." 더운 여름날에 술을 마시더니만 쉽게 취했는지 속엣말을 한다.
"아주머니도 참, 뭐가 그리 부러워요. 우리 마누라는 아주머니가 젤로 부럽다고 합디다.
서방땜에 속썩나, 자식땜에 애 끓이나."이장이 웃으며 말하자
"그래도 늙으니 서방있고 자식 있는게 제일 인거라."하며 한숨을 쉰다.
복수아버지는 듣는지 마는지 아무말 없이 술만 마신다. 목이며 얼굴이 술이 올라 시뻘겋다. 혼자 마당에서 담배를 끼고 있던 이장댁이 '담배가 몇 발 모자잘 것 같은데...'하며 세사람 눈치를 본다.
"어느 대갓댁 아녀자의 팔자가 그 여편네 따라가겠나. 걱정거리가 있나, 일을 뼈가 빠지게 하나, 그저 배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자고 때 되면 애낳고..."아예 작정을 했는지 물 마시듯 막걸리를 들이킨다.
이런 식으로나마 대놓고 부리는 투정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
"그 여자도 알고 보면 불쌍한 여잔데 그만..."
"아이고 복수아버지 눈에 안불쌍한 여자 어딨어. 휴우.. 근데 왜 난 안불쌍해. 옛날에 내맘 다 알고 있었으면서 아무말 안하기에 원래 성격이 그러니 해서 암말 않고 기달렸드만 웬 덜 떨어진 여편네 하나 떡 하고 데리고 와서, 나를 닭 ?던 개를 만들더디 지금 꼴 좋소." 말이 미쳐 끝나기도전에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 복수아버지 한테 따지듯 말한다.
"아이구 이러다 싸우시겠네. 이제 술 그만 드세요. 오늘따라 이상들 하시네. 다 지나간 일을 이제와서 어쩌라구 들춰내요 들춰내긴..."이장이 막걸리 사발을 치우자
"미안하네. 이런꼴을 다 보이고. 괜찮으니까 그거나 이리줘." 도로 술병을 뺏는다.
난 모르겠어요. 형님까지 왜 이러시나. 비가 올 것 같은데 빨리가서 담배나 몇 발 더 뽑아 올테니 더 드시든지 말든지 맘대로들 하세요"이장이 혀를 차며 밖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