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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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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BY dlsdus60 2001-06-14

둘은 서로의 키가 다르듯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도 달랐다.
인호와 달리 균호는 졸업 후 전자기술을 배워 고향에서 전자제품을 팔고 수리해 주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마친 고향 친구들 대부분은 객지에 나가 취직을 하였고 몇몇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을 하였으나 균호는 전자 기술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상경을 하였다.
균호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전자제품에 남 달리 관심이 많았었다.
그래서 균호는 졸업을 앞둔 한달 전부터 전자 기술학원에 수강 등록을 하여 6개월의
교육 과정을 마치고 전자제품 수리센터에서 1년간의 실무를 쌓고 귀향하여 읍내에
가게를 차렸다.
인호에 비해 균호는 매사에 철두철미 하였고 자신이 세운 계획에 대해 실천력도 강했다.
장남인 균호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에서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균호는 인호의 검게 탄 얼굴과 군복을 입은 모습이 신기한 듯 쳐다보며 웃음을 지었고
인호는 균호의 작고 야무진 어깨를 다독거리며 플랫포옴을 떠나 역 대합실로 나왔다.
인호는 그간 궁금했던 균호의 안부를 물었다.

"가게는 잘 되지?"
"그럼, 잘되고 있어. 앞으로 전자제품이 많이 보급되면 더욱 잘 될 꺼야!"
"그렇겠다. 아무튼 나는 니가 부럽다."
"무슨 소리야! 앞으로 선생할 놈이 나 같은 놈 부러워하면 되겄냐?"
"자식, 선생은 뭐 용빼는 재주 있다든! 별 볼일 없어, 두고 봐라. 전교조가 결성되면 선생
잘릴 사람들 부지기수가 될 꺼다. 그래도 너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는 게 최고지 뭐!"
"그래 그래, 그렇다 치자. 인호 너 배고프지?"
"술이 고프다!"
"자식, 술도 못 먹는 주제에 술타령은..."

그날 둘은 초저녁부터 인호의 군대 생활을 안주 삼아 취하도록 마셨다.
인호나 균호, 둘 다 세상에 태어난 후 그렇게 많은 소주를 마셔보질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둘은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다 부모님이 기다리는 집을 지척에 둔 인호는
몸을 가눌 수가 없어 균호가 이끄는 여관으로 갔다.
만취된 둘은 따뜻한 온돌방에 들어서자 서로를 붙들고 레슬링 경기를 하듯 온방을
뒹굴었다.
균호는 까까머리가 된 인호의 머리를 만지며 가가대소하였고 그럴 때마다 인호는 균호의
긴 머리카락을 잡고 늘어졌다.
둘은 몸에 남아 있던 힘이 다 빠진 다음에야 인호는 누운 채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균호야, 나 지금 고향에 와 있는 것 맞지?"
"그럼! 내 옆에 니가 있잖니."
"그래, 이게 꿈은 아니겠지! 균호야, 너는 내 곁에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내 마음속에도
있었어!"
"야, 임마! 내가 니 마음속에 들어 갈 만큼 그렇게 작아? 하하!"
"그렇다! 내가 보기엔 니가 손톱만큼 보인다. 하하!"

인호는 자신이 고향에 자유롭게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균호가 곁에 있어 자신이 진정 자유로운 상태라는 것을 느꼈다.
학업과 병영 생활이라는 두 가지의 사슬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맛보는 자유였다.
자유는 너무나 달콤하고 감미로워 인호는 저절로 눈이 감겼다.

버스에서 내린 인호는 벌집처럼 밀집된 가옥사이를 걷고 있었다.
길을 걷다 난데없는 북소리가 들려 그 소리의 정체가 궁금해서 인호는 자신도 모르게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 좁은 골목길을 들어서고 말았다.
한참을 걷다가 왼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북소리는 멈추지 않고 인호의 청각을 유인하듯 점점 크게 들려왔다.
붉은 철대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북소리가 새어 나오는 낡은 한옥 대문이
나타났다.
인호는 대문에 귀를 대고 있다가 북을 치는 주인공이 궁금하여 대문을 활짝 열었다.
뜻하지 않게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호수에는 솜사탕 같은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호숫가에는 초록 물감을 뒤집어 쓴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나무 밑에는 댕기머리를 한
낯선 여인이 앉아 북을 두들기고 있었다.
인호는 대문 안으로 들어섰고 여인이 북을 칠 때마다 몸에서 땀이 솟아 나왔다.
인호는 더운 몸을 감싸고 있는 옷을 하나씩 벗어 던졌다.
그리고 인호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여인에게 조금씩 끌려갔다.
보이지 않는 줄에 묶여 끌려가는 듯 하던 인호가 여인의 곁에 다가갈 즈음에는 벌거숭이가
되어 있었다.
북소리가 힘차게 울리자 인호는 숨이 막히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흔들리는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초원에 쓰러지고 말았다.
북소리는 고막을 찢어 버릴 듯이 울렸고 인호는 알 수 없는 몽롱함에 빠져들었다.
호수에 피어오르던 안개는 인호를 향해 몰려와 몸을 감쌌고 인호는 실크 이불을 덮은 듯한
포근함과 감미로움을 느꼈다.
안개에서는 향긋한 여인의 살 냄새가 났다.
인호는 안개를 품에 안고 여인의 향기를 가슴 저 밑바닥까지 닿도록 들이 마셨다.
향기는 금새 인호의 살과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황홀했다.
모든 근심과 억압이 일 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형언할 수 없는 쾌감에 몸은 가벼워지고
인호는 새처럼 비상을 하였다.
그것도 잠시, 물동이를 뒤집어 쓴 소금 가마니를 짊어진 나귀처럼 인호는 땅바닥에 나
뒹굴고 말았다.
어깨뼈가 부러진 듯한 통증이 모세혈관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인호는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다 아픔이 가라앉을 즈음에 깊은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