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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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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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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BY dlsdus60 2001-06-13

의진은 혜선과 전화를 하기위해 평소보다 빠른 귀가를 하였다.
혜선은 의진의 친구중 가장 친한 사이이며 모든 행동이 참으로 여성스러워 의진 엄마도
혜선 이야기만 나오면 내 딸도 혜선이와 닮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늘 하셨다.
하지만 혜선은 여성스러운 행동에 반해 남자들도 어려워하는 회계학을 전공하고 직장을
다니는 것을 보면 일에 대한 집념도 있고 자신의 생의 목표가 뚜렷한 여성일 것이다.
혜선은 의진을 만나면 독백하듯 가끔씩 묻는 말이 있었다.

"의진아. 나 돈 많이 벌면 뭐하고 싶은지 아니?"
"뭐 할 건데?"
"나는 말이야,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세상에 버려진 아이들을……."
"뭐라고, 무슨 처녀가 아이를 키워?"
"그 아이들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거든……."

의진은 혜선의 말을 듣고 있으면 착한 영혼의 목소리를 듣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곤 했다.

의진의 예상대로 혜선은 퇴근을 하여 집안일을 마치고 지금은 쉬고 있다고 하였다.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로 수다를 떨다 통화를 끝낼 즈음 혜선에게 넌지시 물었다.

"혜선아 너 남자 친구하나 만들고 싶지 않니?"
"애는 갑자기 무슨 소리야?"
"겨울도 다가오는데 찬바람 막아 줄 남자하나 없는 혜선이가 불쌍해서 그런다. 왜?"
"걱정도 팔자다. 너는 그럼 바람 막아 줄 남자가 있다는 거야?"
"글쎄……. 그건 비밀. 호호!"
"얘봐, 너 남자 생겼지? 맞지? 빨리 고백해!"
"나중에 알려 줄 테니 기다려봐. 다 때가 있느니라."
"어머머! 얘 정말 의리 없네."

의진은 혜선의 질투심을 은근히 자극하여 인호와 짝을 맺어주고 싶었다.
곧이어 혜선은 의진의 의도대로 자신도 남자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털어
놓았고 평소 새침하던 모습과 달리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여자들은 스물여섯이 되면 꽃띠라고 하는데 꿀벌이 찾지 않는 꽃은 이미 꽃의 의미를
상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혜선이가 남자를 그리워하는 것도 여자로서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 후 며칠이 지나 의진은 혜선에게 인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혜선은 인호와 미팅을
주선한다면 그를 만나 보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때 마침 인호에게 혜선을 소개할 기회가 주어져 며칠간의 우여곡절 끝에 둘의
미팅을 의진은 성사시킬 수가 있었다.

인호는 의자에 앉아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 혜선에게 전화를 하였다.
몇 번의 벨소리가 멈추자 피곤한 표정이 보일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인호를 긴장시켰다.

"죄송합니다만 김혜선씨 좀 부탁합니다."
"전데요. 누구십니까?"
"아이고! 차인호인데요. 의진씨가 다시 전화를 해 보라고 해서요."
"의진이가 왜요?"
"제가 혜선씨와 다시 만날 약속을 하지 않았다고 저를 방금 혼을 냈거든요."
"호호호! 그랬어요. 그럼 약속을 해야 혼나지 않겠네요?"

수화기는 손바닥에서 배어 나온 땀으로 끈적거렸고 여자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자신을
보며 인호는 너무나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하였다.
인호의 마음 같아서는 오늘 당장이라도 혜선을 만나고 싶었지만 입안에서 구르는 말은
좀처럼 밖으로 나올지를 몰랐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인호는 이렇게 망설이다가는 영원히 혜선과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혜선씨 그러면 오늘 만날 수도 있겠네요?"
"오늘요! 음…….좋아요."

혜선은 인호의 떨리는 목소리만으로 자신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의외로 많이 순진한 청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혜선은 인호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였고 첫 미팅 때 느꼈던 인호의 언행 모두가
편안하게 다가와 인호의 갑작스런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 들였다.
인호는 환희에 찬 얼굴로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의진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의진은
인호의 용기 있는 행동에 만족해하며 격려의 윙크를 보내고 퇴근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