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고독으로부터 탈출
1.상면
인호는 나이가 스물일곱이 되던 해 처음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다.
그러나 인호는 동료 여직원인 의진에게 농담으로 건넨 말 한마디에 흔쾌히 친구를 소개
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내심 반가워하면서도 자신의 처지가 아직도 초라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어 낯선 여자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인호는 차일피일 미루다 의진의 설득과 성화에 마지못해 여자를 만날 수가
있었다.
인호가 처음 여자를 만난 장소는 명동 근처에 있는 다방이였다.
처음 의진으로부터 여자의 인상착의를 전해들은 인호는 난생처음 이성 친구를 사귄다는
기대감에 밤잠을 설쳤고 이른 아침부터 가슴이 설랬다.
약속 시간이 되어 다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인호의 가슴 속에는 아낙네가 앉아
다듬이질을 하는 것 같았고 얼굴은 볼그레 상기되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라는 의진의 말에 여자와 인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통성명을 겸한
인사를 나누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이 친구에게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차인호입니다.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김혜선입니다. 반가워요."
가냘픈 몸매에 검은색 스커트와 흰 블라우스를 곱게 차려 입은 혜선은 다소곳이 앉아
고개를 끄덕였고 인호처럼 얼굴도 상기되어 있었다.
혜선은 인호가 상상하던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그리 실망스런 외모는 아니었으며 조심스런
언행이 우선 맘에 들었다.
그리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자신을 생각하면 이성 친구가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상황이지. 이 여자 저 여자 봐가며 고를 처지도 못되었다.
서로가 싫지 않는 표정을 읽었는지 의진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며 다방을 떠났고
둘은 한참 동안 서로의 삶과 신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고 어색하던 표정이 누그려 질 즈음에 혜선은 인호에게 물었다.
"종교를 가지고 계세요?"
느닷없는 혜선의 질문에 인호는 잠시 망설이다 학교 다닐 때 잠시 불교 철학에 관심을
가졌던 기억과 등산을 하다 절에 들렸던 것을 떠올리며 불교를 믿는다고 하였다.
인호의 대답에 혜선이 조금은 실망스러워하는 것 같아 인호는 재빨리 답변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였다.
"사실은 학창시절 공부를 위해 불교에 조금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절을
다니거나 부처님을 숭배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저의 집안은 무종교 집안이며 저 또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혜선은 그때서야 실망스런 표정을 거두며 자신은 기독교를 믿고 있으며 모태 신앙이라고
하였다.
인호는 개인적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싫지 않았으며 한편으로는 부럽기까지
하였다.
이런 이유 중 첫째는 일요일이면 자신처럼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일찍 일어나 움직이는
것이 부지런해 보여 좋았고 둘째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자신과 달리 의지하며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절대자가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이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인호는 아직도 혼자만의 사고에 익숙해서 그런지 종교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