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한번쯤..나와서 용서를 구한다면...
하긴 그가 잘못한게..뭐가 있는가..
그래도..집에는 가야하니..어쩔수 없이 그를 불러야 했다.
"지점장님.."
내 목소리를 들은건가..?
내 말을 무시하는건가 싶어 약간 화가나고 ..
어쩔수 없이 나를 잃어버렸던 순간에 후회가 베어져 짜증이 섞인 큰소리가 나왔다.
"지점장님~"
그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참 편한사람이야..조금전 내품에서 행복했던 그 여자 맞는건가? 콜택시 문제라면 10분후에 도착할꺼야"
또..돌이켜 따져보면 별것 아닌 자존심이란것이 머리를 쳐들었다.
"잠시만요..오늘일 때문에 일하는것에..불편할 일은 없겠죠?"
"...하룻밤 여자와의 일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는 사람이야 난.."
그렇게 잔혹한 말을..내뱉고는 그는 방으로 들어갔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닫혀지면서..
다리에 힘이 스르르..풀려 주저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택시의 경적소리가 들렸다.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현관문을 열고 택시쪽으로 달려갔다.
아무일도 없었어..아무일도..그래..아무일도 없었던 거야...
수없이 되세기며 집으로 도착한 나..
현관의 거울속의 나는 화장은 지워져있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입을 너무 꼭 다물어서인지..입술에 베어져나온 빨간 피..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드레스를 벗어 가져왔던 쇼핑빽에 구겨넣었다.
멍청하긴...바보..이런 바보...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아직 전화벨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조금씩 가까이..그러면서..난 후회라는 과거에서 벗어나 현실의 세계로 돌아왔다.
"여보세요.."
"하빈아..엄마야..자는거니?"
"응? 아니..왜..?"
그냥,,엄마에게서 전화가 오면 왜,,라고 묻게된다.
학원비 때문일지..생활비 때문인지는 몰라도..
"응..엄마가 서울에 왔는데..너 사는데 보고 갈까 해서.."
엄마에게 흉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않다.
아니 이런 내모습을 보면..기절하실게 뻔하다.
얼마나 착한딸..로 생각하시는데..
대강의 위치를 말하고 서둘러 일어나 정리하고 어제의 나를 지웠다.
"들어와,,찾아오는데 힘들진 않았어?"
"아니..네말대로 학교앞에서 택시타고 왔어..집이 좋구나.."
"응..그렇지? 걱정마,,내가 돈 많이 벌면 엄마는 더 좋은 집에 살게 해줄께"
"그래..그러렴..우리 딸..좀 야윈것 같은데..잘 먹고 다니니?"
"응..그런걱정은 마..근데..무슨일로..서울까지 온거야?"
"그냥..온거야..그냥..일이 좀 있어서..친구도 좀 보고,,겸사겸사.."
엄마가 나를 찾은것은..처음 집을 구할때였다.
아무도 모르게 보자기에 곱게 싸놓은 돈을 전해주시려고..
집을 옮겼다고 하니 걱정이 되서 오셨나 보다..
점심을 먹고 쉴 겨를도 없이 집안일이 걱정 되시는지 나오지 말라며..
한사코 말리고는 돌아가셨다.
난 엄마의 뒷모습이 사라지는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왠지 걸음이 무거워보인다. 엄마도 이젠..힘이 드신가보다..
시집와서 인심좋은 아버지와 빠듯한 살림에 3형제까지 키우신다고..많이도 힘드셨나보다.
저녁쯤이면..언니가 도착해서 이것저것 물어볼게 뻔한데..난 어디까지 얘길 해야하지?
일단..피하고 볼까??
집에는 간단한 메모를 남기고 가까운 PC방에 갔다.
그래..됐다. 엔을 따라잡기 위한 내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덕분에 제우스는 3위로 밀려나 있었다.
이제 1위 엔과 나의 차이는 7%..작다면 작지만..크다면 큰 차이..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마지막 승부를 띄워야한다..
일을 끝내고 메일 박스를 확인하고..난 놀랬다.
제우스의 메일로 가득차 있었다.
유머얘기..슬픈 사랑얘기..주식정보..
사소한것에 세심할 줄 아는사람..인것 같다.
답장하기를 클릭했다.
--* 답장 메일 *--------------------------------------------------
이렇게 많은 메일..보내는 것도 취미신가요? ^^
무척..기분이 우울했었는데..조금 웃기도 했고 슬퍼서 조금 울기도 했어요.
겨우 제우스님이랑 3% 차이인데..너무 띄우지 마세요..
끝까지 최선을 다해봐요..
사이버라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묘한 매력때문인지..
제가 생각하는 제우스님은..참 다정하고 세심할것 같네요..
그때..그 여자분을 다시 만나셨다고요?
축하드려요..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으려니..자꾸 제우스님께 주절거리고 싶어지네요..이상하죠?
제우스님..내일은 일주일의 시작 월요일입니다. 좋은일이 가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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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에서 메일 알람이 울렸다.
이제서야,,나타나신건가? 이하빈?
그녀의 메일을 보면서..정말,,그녀다운 메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가지도 이상 멀어지게도..하지 않는 거리에서 그녀가..나를 지켜볼것 같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녀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그녀가 증권룸에 있다.초대장을 보내서 시작된 그녀와의 체팅..
그녀의 사소한 어린시절과 가족들 얘기..
화면이 잠시 멈출때면 난
당신을 만난적이 있는 김휘문이..제우스라고 말을 해야하나..말아야 하나..
하는 갈등을 하다가도 그녀의 빠른 타수에 올려지는 화면을 보면..
이렇게 편한 친구처럼 얘기하는 그녀가..다시 멀어질까 두렵기도 했다.
그녀가 물었다.
<빈>: ..정말 시끄럽게 말 많다고 생각하는건..아니지?
<제우스>: 아니..들을만 해..하하..아냐 농담..친구처럼 편하게 생각해서 그런건데..내가 고맙지..
<빈>: 그런가..? 정말요?
<제우스>: 응..그리고 왠만하면 '요'짜는 빼지 그러니?
<빈>: 음..그래두..그래..그러지 뭐..^^
<제우스>: 자료 보내준다더니..언제 보내줄래?
<빈>: 응..집에 아직 컴이 없어서..늘 깜빡하네..
체팅시간이 꽤..흘러가면서 친구처럼 말을 편하게 할수 있는 사이가 되어갔다.
언니가 나를 찾는 핸드폰이 왔기에..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어차피..조용히 넘어갈 언니도 아니고..
그에게 다음을 기약하고 나왔다.
그는 여느사람처럼 내 전화번호나 신상을..그렇게 묻지 않았다.
정말..오랜 친구처럼..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언니는 선본 남자에 대한 얘기로 정신이 없었다.
종말 좋은 사람이라고...들어보니 자상한 사람인것 같았다.
다음주에 또 만나기로 했다니..축하해줄 일이였다.
언니는 그 사람과 결혼하면 나라에서 보장하는 외국연수3년에 흥분해 있었다.
둘이 궁합이 그렇게 좋다고 하니..집안에서 반대없고..안나갔으면 후회할뻔 했다며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 언니에게 찬물을 끼얹는 내 얘기는..덮어야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는 지점장실로 들어갔다.
언니는 커피잔을 만지막거리는 날보며 어서 갖다주라고 눈짓했다.
"언니..오늘은..언니가.."
"어머..왜그래? 평소처럼 행동해.파티한번 갔다 왔다고 어색해하면 안돼지..넌 비서로써 간거야 알지?"
"응..알어.."
"혹시..너 어제 말한것까지가 전부 맞어?"
"응..그럼..무슨일이라도 있길 바래?"
"아니 뭐..아냐..들어가봐..이 서류 결제올리고.."
이쯤이면..그녀가 커피를 들고 아침 회의 준비를 하러 들어온다.
그런데..오늘은 조금..늦은것 같다.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하루종일 생각해 봤지만,,답을 낼수가 없었다.
역시 그녀..
평소와도 다름없이 인사를 하고 커피를 건네고 결제서류를 내민다.
"이하빈씨.."
"네 지점장님.."
"아닙니다. 오전회의 10분만 늦춰줘요."
"네"
사랑이라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이였는데..
나의 착각..
본능이라는 회오리에 말려든 한남자와 한여자였을뿐이였나보다..그것뿐이였으리라..
그는 창밖을 보며 긴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아무말..없는 그였기에..돌아서 나왔다.
공과 사를..구별하겠다는 의지인가?
그후 난 주가변동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며 단기매매로 수익을 올리기에 열중했고
저녁이면 가끔 제우스와의 체팅으로 증권수익률 대회 경쟁자이기보다는 사이버친구로써 자리잡아 갔다.
우린 서로 지금의 상대 모습에 대해 별로 묻지 않았다.
뭘하는 사람인지..어디사는지..누구나 궁금해할 그런얘기들은..
한번쯤은..그를 보고 그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 가끔 들었지만..
사이버 친구는..사이버일때 더 좋은것이리라..는 생각을 했다.
언니가 몸이 불편해서 오늘아침은 혼자 일해야 했다.
둘이할땐 몰랐는데..괜히 일은 많은것같고 몸은 바쁜데 제대로 정리가 안된다.
지점장님의 책상을 정리하다가 파일박스를 떨어뜨렸다.
증권에 관련된 서류이기에..대충 보면서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전화가 왔다.
"응..누나야..말해봐..뭐?"
엄마가..엄마가...안돼..그럴순 없어..
"이하빈씨.."
'하빈낭자..'
누구..?꿈에서 들렸던 목소리 같은데..
"정신 들어요?"
지점장실 쇼파위에 누워있는 나..
전화를 받고 갑자기 주위가 까맣게 어두워지면서 시야가 좁아졌던 기억은 나는데..
쓰러졌던건가??
정신을 차리고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일어서려 했다.
"당신이 본 서류..현재 진행중인 수익률경쟁에서 이기기위해서인가?"
"네?그건.."
"아니..변명은 하지말고 차라리 솔직히 말하지 그래..서류를 보다가 날 보고 놀라서 쓰러진건..연극인가?"
"지점장님..이건.."
"현재 수익률 2위 아이디 빈..요근래 갑자기 수익률이 급증했던 이유가 있었군..내 자료가 많은 도움이 되겠군"
"지점장님..지금 무슨말씀...그래요..제가 아이디 빈..맞습니다. 하지만 그 서류는.."
"당신이라는 여자..알다가도 모를것 같아..이런 방법으로는 날 이길수 없을꺼야..
못알아 듣나 보군..그래 내가 아이디 엔이야..절대 당신에겐 1위를 양보하지 않겠어"
지금 난 힘든데..날 둘러싼 현실에 힘겨워 하는데 이 사람은..이 사람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내 손은 그의 빰을 갈긴 뒤였다.
"지점장님..아니 엔..난 당신의 자료를 본적이 없어요. 오늘 파일박스를 떨어뜨려 주우려다..
그래요..보면서 정리한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나에 대해 뭘안다고 날 싸구려취급하죠?
언제나 당신 편한대로 생각하고 당신 편한대로 얘기하나요?
그리고..당신..내가 꼭 이길테니 두고봐요..꼭 이겨야 하는 이유가 내겐 절실하니까요!"
돌아서려는 내게 그가 한마디 던졌다.
"그 이유가 뭐지?"
"내가 당신에게 말할 필요가 있나요?"
"날..싫어 해서인가?"
"..아뇨 저또한 하룻밤의 남자와의 일은..신경쓸겨를도 없어요. 그러니 신경끄시죠"
"당신..뭘 잘못 알고 있는데..화를 내야하는건 나야..안그래?"
"이 손..놓으시죠..전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어요.."
"그 말을..어떻게 믿지? 당신같은 이중성을 가진 여자가.."
"오호..한대 더 치시겠다? 지금 나랑 장난하나? 이런 삼류 연극은 그만하지 "
"당신..당신이 뭘 안다고.."
지금껏 누군가에게 소리를 질러본적이 없는 내가..그를 밀치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가 내 팔목을 잡고 벽으로 밀어 부쳤다.
"나도 당신의 진실을 알고 싶어..나도..."라고 조용히 말했다.
올려다 보았는데..그의 눈은 나를 믿고 싶다고..믿게 해달라고 말하는것 같았다.
"엄마가..위암..말기라고..병원에서 전화가..와서...그래서..그래서..흑흑.."
돌아보니..그녀의 핸드폰이..열려진채 책상밑에 떨어져 있었다.
이런..
얼마전 그녀가 빈이란걸 알았을땐..약간의 흐뭇함이 있었는데..그랬는데..
사무실의 열려진 문앞에서 그녀가 내 서류를 보는것을 보고 들어선 나때문에 기절한척한 연극일꺼라고..
그녀가 내정보를 통해 최근 한달간 최고의 수익률을 보였을거라는 억지같은 추측때문에..
이 여자를 울리다니..
"오해했다면..미안해..정말..어느 병원이지?"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참기 위해 입을 꼭 다물더니..독기가득한 눈으로 내게 말했다.
"됐어요..당신과는..다시는 보고싶지 않아요..비켜주세요!"
"아니..이렇게는..아냐..그날..그날밤도..난 그렇게 끝내려고 했던게 아냐.."
"분명히 말했어요..전 동정따윈 필요없다고요."
"그래..그날 정말 내가 하고싶은 말은..당신이 내게 처음은 아니지만..
정말...결혼이라는걸..해보고 싶다고..
늘 하루의 마지막을 그리고 하루의 시작을 함께 하고 싶다고..생각한건..당신이 처음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
그녀의 눈의 독기가 걸러지고 있다. 그녀가 나를 믿어주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