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고양이때문에 경끼한 기억이 있는 내가 만삭의 몸으로 발견한
고양이는, 뒤로 넘어져 유산하지 않은게 천만다행일 정도로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그건 도둑고양이, 정확히는 어느 집에서 키우다가 숫고양이와
눈맞아 새끼베고 가출한 고양이임이 틀림없었다.
알아내기는 어렵지않은 일이었다.
목에 둘러진 목걸이가 한눈에 보기에도 꽤 비싸보이는 가죽띠였다.
너무나 놀라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새끼가진 엄마의 공통점이었는지,
나는 그 고양이의 불룩한 배에 눈이 갔다.
하얀 바탕에 커다란 검은 점이 군데군데 박혀있고 배는 나처럼 만삭이고
행색은 초라했지만, 표정만은 아주 기품있어 보였다.
할머니댁의 고양이들은 길에 돌아다니는 불쌍한 고양이들을 거두어
키우는 것이어서 못생기거나 장애가 있는 고양이들이 많았는데,
그런것만 보다가 몇십년이 지나 마주친, 나와 같은 상황의 그 고양이는
너무 예뻤고, 산달이 다되어가는지 배가 불러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손에 든 대걸레자루를 현관에 내려놓으며 숨을 크게 내쉬고, 마시던
커피잔을 들어 마저 마셔버렸다.
예전의 고양이가 생각났고 좀전에 마주쳤던 그 고양이의 선한 눈빛과
기품있는 자태가 떠올랐다.
그렇게 마주친 나에게도 경계하는 눈이아닌 그저 선하기만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 고양이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아무 생각없이 밥을 한그릇 퍼서 식탁에 올려놓고 입덧을 시작할때부터
죽도록 입맛이 당기던 시뻘건 육계장국물을 옆에 놓고 한숟갈 뜨려다
문득 그 고양이가 또 눈앞에 아른거렸다.
먹는건 제대로 먹고 있는걸까....아이아빠는? 추위는 어쩌지?
저러다 새끼를 낳으면 이 추운겨울에 어디서 산후조리를 하지?
이런저런 생각에 들고있던 수저를 내려놓고 냉장고를 뒤져 햄조각을
찾아냈고 아까와는 다른 기분으로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놀랍게도 그 고양이는 전혀 뒷걸음치지도 않았고, 무표정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듯 했다.
오히려 내가 더 조심스러웠다.
배부른 동지로서 안쓰런 마음에 한 행동이었지만, 아직은 예전의 경악스런
기억이 남아있어서 더이상의 행동은 자신도 없었기에 멀찍이 햄조각을
내려놓고 아까의 대걸레자루로 고양이의 코앞으로 디밀었다.
냄새를 맡아보던 고양이가 덥석 물더니 날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고맙다고 말하는 느낌이라면 비약일까?
그리곤 그 자리에서 먹지않고 부른 배를 뒤뚱거리며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기품을 보여주려는 듯이 천천히 뒤쪽으로 돌아 걸어갔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고양이 특유의 가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집에 있는 음식중에 고양이가 먹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걸 가지고
뒤켠으로 가, 내가 왔다는 표시처럼 "흠! 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난 뒤
조심스럽게 음식을 바닥에 두고오곤 했다.
내심 그 고양이가 집 건너편 공터에라도 가주길 원했지만 쫓아낼 용기도
없었고 조금은 안쓰런 마음에 그냥 그렇게 가끔씩의 적선만을 하고있던
터였다.
오히려 다른데로 가주길 바라며 혼자서 먹이를 조달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편하게 치부해버렸다.
처음엔 햄조각 하나로 시작되던 것이 나중에는 한밤중, 만삭인 몸상태가
영 시원치않아 끙끙대면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다가도 문득 생각나,
입지않고 처박아둔 옷가지를 꺼내서 또다시 헛기침 두어번을 한 후
고양이가 있는 곳에 가져다 두는 것으로까지 발전되었다.
가끔 낮시간에 고양이가 없는 눈치면 그 좁은 공간을 한번 찾아가
보곤했다.
내가 가져다준 옷가지가 바닥에 깔려있었고 어디선가 주워온 돌멩이며
나뭇가지 나부랭이들이 주위에 쌓인걸 보았다.
생각보단 그리 지저분히 어질러 놓지도 않았고, 혼자서 견뎌내느라
힘들었을텐데도 주위의 나무판자에 손톱자욱 따위도 나있지 않았다.
어느 쨍쨍하게 추운 12월초의 아침, 출근을 하려다 고양이가 생각나
뒤켠을 가보았다.
으례 그랬듯이 헛기침을 하고 살짝 들여다보니, 세상에.....꼬물거리는
조그만 것들이 다섯마리나 옹기종기 붙어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