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쥐를 가지고 놀며 뜯어먹던 고양이의 눈과 마주친 사건이 이틀이나
지났지만, 할머니는 자식처럼 이뻐하시던 고양이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갈등하는 중에 우리에겐 기회가 왔다.
이미 우린 못볼걸 다본뒤라 간이 배밖에 나와있었고, 그 고양이를 미워하는
마음은 하늘을 찌를듯 했다.
언니가 고양이 목에 걸린 목걸이에 줄을 매는걸 자처했고 그 줄을 툇마루에
있는 발재봉틀에 묶어둘 수 있었다.
우린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저 이 고양이를 때려줘야 한다는 생각뿐,
그뒤에 일어날 일은 짐작도 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정신없이 파리채로, 곰방대로 그 고양이를 때려주기 시작했다. 어린
계집애들이 때려봐야 얼마나 때렸겠냐마는, 그 덩치 큰 고양이도 숱한
매질에는 견디기 힘들었나보다.
할머니가 오실 무렵, 정신을 차리고 고양이를 보니 비실비실거리는게
영 시원찮아 보였지만 뭔일이 생길거란 짐작은 하지도 못하고 할머니의
총애를 받는 고양이를 때렸다는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얼른 고양이 목의 줄을 풀어주고 파리채와 곰방대를 제자리에 갖다놓고
시치미를 떼고 앉아 있을때 할머니는 들어오셨고, 우리가 좋아하는
닭도리탕 재료를 부뚜막에 풀어놓으셨다.
맛나게 먹은 닭도리탕이 소화될때 쯤,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고 찔리는
구석이 있는 우리는 못들은척 했다.
다시 군불을 지글거리도록 지피시는 할아버지께 온갖 애교로 취침인사를
드리고 할머니에겐 굿나잇키스를 감질나게 해드린 후 잠을 청했다.
할머니의 혼잣말을 뒤로 한채..
"나비가 오늘은 이상하네...왜 방에 안들오구 밖에서 놀지?"
나비는 우리를 무서워하기 시작했고 매질은 아주 효과가 있었다.
그날 저녁엔 방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다음날 아침밥상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우린 쾌재를 부르며 밥한그릇을 뚝딱 해치웠고 그일은 잊어버리고 신나게
눈싸움을 하며 깔깔거렸다.
외삼촌이랑 실컷 스케이트를 지치고 집에 들어온 우리는 할머니가 울고
계신걸 보았다.
나비가...죽어버린 것이다.
매질한지 며칠지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온갖 총애를 받아오던 콧대높은
나비는 자존심이 있는대로 상해서 사람으로 치자면 우울증에 시달렸던게
분명했다.
파리채와 곰방대로 때리긴 했지만, 때리면서도 무서운 마음에 세게
내려치지도 못했으니 매질이 심해 어디가 아픈건 아니었다고 지금도
위안한다.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우린 너무나 큰 죄책감에 신나게 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 나비의
명복을 빌어줄만큼 좋은 감정도 아니고, 그해의 겨울방학은 정말 이래저래
말이 아니었다.
시들하게 놀던 우리들은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와버렸고 할머니에겐
아직도 그때의 일을 털어놓지 못하고 우리 자매의 비밀로 무언의 약속을 했다.
그 경악스러웠던 겨울방학 이후로 외가댁으로의 방학나들이는 점점
소원해지고 머리가 굵어진 후로 언젠가부터 외가댁에 발길을 안하게
되었으며, 동물을 무서워하는 편이었던 나는 특히나 고양이에 대해선
경끼를 하는 것처럼 싫어했다.
그러던 내가 만삭의 몸으로 발견하게 된 고양이는, 뒤로 넘어져 유산하지
않은게 천만다행일 정도로 충격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