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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일을 시작할 때 봄이 막 찾아온 때였던 것 같은데 이제 여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이제 가구배치까지 마무리되어 그녀의 일은 끝난거나 다름없었고 그의 몫인 이삿짐정리만이 남아 있었다.
그의 짐을 생각하자 예전 그녀가 함께 쓰던 물건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지만 곧 그녀의 짐이 거의 없었다는 기억이 씁쓸하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없는 결혼식을 마친후 그가 살던 오피스텔로 그녀의 잠자리를 옮긴게 전부였다.
인기척에 생각에 잠기려던 그녀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사람은 시현이었다.
작업하는 동안 한번도 들러보지 않던 그가 아침에 올라왔었다는 얘기를 소희한테 듣고
내내 불안해하던 터였다.
[ 어때요? ... 이제 제 임무는 여기서 끝인거 같은데요.... 그동안 작업실에서 생활하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
그녀의 말에 그의 반응이 좀 시큰둥하게 느껴지자 당황스러워졌다.
[ ...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 아니, 당연히 할 수 있는거라 생각해. 다른덴 대체로 마음에 드는 편이야... 그런데 침실은 도저히 부담스러워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당신이 날 어떻게 보는지는 잘 알지만 그래도 저렇게 화려한 침실은 너무 뜻밖이야... 좀 다시 손봐 줄수 없을까? ... 내 요구가 지나친거야? ]
그녀는 무안해서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감추지도 못하고 그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아니요... 오히려 제가 너무 미안하네요. 고객 입장에선 당연한 요구예요.... 뭐 특별한 주문이라도 있나요? ]
[ 별로 크게 불만인건 아니구 가구들은 괜찮으니까 벽지 색깔이랑 침대에 깔린 저것만 어떻게 하면 좀 좋아 보일 것 같은데 ]
그가 손으로 가리킨 침대 시트와 이불을 그의 앞에서 쫙쫙 찢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그녀는 애써 미소 지었다.
[ 바꿔볼께요.... 미안해요 며칠 더 시간이 걸리겠네요 ]
[ 아니 괜찮아. 까다롭게 굴어서 미안해 ]
그가 손을 들어 그녀에게 웃어보이며 자리를 뜨자 그동안 참고 있던 숨이 터져 나와 답답해진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 대체로 맘에 든다는건 또 뭐야? 그리구 화려한건 다 자기 취향아냐? ... 웃겨, 나한테 도대체 뭘 바라는거야 ]
그녀가 벌써 삼십분이 넘게 흥분하고 있자 혜원은 이제 슬슬 지겨워진다는 표정을 지었다.
[ 둘 다 웃긴다... 뭐니? 사랑싸움하는 애들도 아니구 ]
[ 그런식으로 얘기하지 말라니까. ]
[ 너도 그래, 원래 시현씨하고의 관계 무시하고 직업의식만 가지고 일 시작한거 아니었어.
근데 감정이 개입되서 일이 그렇게 된게 아니라곤 말하지 못할 걸. 그걸 못 깨달을 시현씨도 아니구. 한심해... 차라리 둘이 한 번 화끈하게 붙어 보던지 ]
친구의 꾸지람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반박할 아무런 답변도 떠오르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