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꿈을 꾸었다.
그 속에서 시현과 그녀는 마주보며 웃고 있었다.
누구의 방인지 모르는 화려한 침실에서 두사람은 뜨거운 키스를 나누다 수줍어 자신의 옷자락을 여미는 그녀의 손을 내려놓고 그는 하나하나 그녀에게 걸쳐진 옷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이어 두사람이 하나가되고 거친 신음소리와 에로틱한 움직임만이 조용한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꿈속에서 자신의 반응하는 모습에 당황해하며 깨어나려 애썼지만 그녀의 내부 어느곳에서는
그 순간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은 충동과 싸우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신혼 여행중이었다.
그와 사랑에 빠진후 아직 졸업을 일년이나 남겨둔 그녀에게 그는 결혼 할 것을 원했다.
그의 청혼은 기뻤지만 그러기엔 그녀가 맞서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는 그런 그녀의 고민들을 의연하게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살아오는동안 자신의 권리 주장이나 반항 같은건 꿈도 꿀수 없었던 엄격한 아버지의 굴욕적인 대접에도 그는 너무도 잘 버텨냈고 이미 자신의 위치에서 성공을 거둔 스물 여덟의 오만한 자존심도 버렸다.
결국 그들은 원하던 결혼을 했고 행복했었다.
그녀 앞에 또다른 두려운 존재가 나타나기 전까진 .
그의 사랑을 믿고 확신하기엔 너무도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고 그녀에게 엄습해오는 질투와 소유욕은 감당하기 너무 어려운 감정의 싸움이었다.
그가 그녀를 선택한 이유에 대한 단서를 찾아낼수 없어 괴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가 경이로움과 찬사를 보내는 생소한 음악들을 함께 공유할수 없었고 그의 주위에 몰려드는 친구란 이름의 많은 여자들 틈에서 그녀가 더 뛰어난 점을 발견할수 없어 솟아 오르는 질투심을 견뎌내기 힘들게 되자 그것은 곧바로 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녀가 그와 한바탕 전투를 치루고 집을 나와 결혼한 언니 집에서 하루를 머물고 들어간 어느날 그는 그들의 침대에서 다른 여자와 함께였다.
그동안 그녀가 질투를 해왔던 모든 일들에 완벽한 증명을 하듯이.
곧바로 집을 나온 그녀는 그가 하는 어떠한 해명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그의 말대로 오해를 풀고 돌아간다 해도 늘 자신이 그를 더 깊이 사랑한다는 초조함과 소유욕 때문에 언젠가는 그가 지쳐 떠날거라는 확신이 들자 그녀는 지금 그만 두는게 나을꺼라는 결심을 했다.
결혼후 3개월만의 일이었다.
너무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미처 혼인신고도 하지못한 그들은 아무런 절차없이 끝을 낼수가 있었다.
그의 키스에 반응한 일과 어젯밤의 꿈 때문에 그녀는 오늘 하루가 너무 힘이 들었다.
외관 공사가 오늘 완전히 마무리되면 내일부터 그의 작업실부터 시작해서 내부 공사에 들어가는데 매일 같이 나오던 시현이 오늘은 시간이 끝나가는데 얼굴을 보이지 않자 그녀는 신경이 쓰였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다시 한번 지하실을 체크해보고 돌아서려는데 문가에 서있는 시현을 보고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 깜짝 놀랐잖아요... 인기척도 없이 ]
그는 아무말없이 어깨만 으쓱 할 뿐이었다.
[ 다들 돌아갔어요. 저도 이만 가려고 하는데 ]
[ 잠깐 얘기좀 하고 싶은데 ... 어제 일은 ]
[ 하고 싶지 않아요 ]
그녀가 딱 잘라 말하고 그를 지나쳐 문을 나서려 하자 그가 그녀의 팔을 잡아 돌려 세웠다.
[ 진이야!... ]
그때 일층으로 향하는 계단 머리에서 인기척이 나자 그녀는 얼른 팔을 뺐다.
계단을 내려온 사람은 뜻밖에도 정운이었다.
[ 여기 있었네... 아, 시현씨도 함께셨군요. 다들 돌아간줄 알고 헛걸음 치는줄 알았네 ]
[ 웬일이세요.? 안그래도 회사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
[ 아니 오늘 외부공사가 끝난다고 해서 와보고 싶었어. 정말 근사해 ... 어떠세요, 맘에 드시죠? 말씀드린대로 훌륭한 디자이너 아닙니까? ]
[ 그렇군요 ... 그럼 전 이만 ]
시현은 그녀를 보지도 않고 정운에게 인사한후 돌아가자 정운이 약간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 원래 좀 차가운 사람이예요 ] 그녀가 얼버무리자 그의 표정이 다시 환해졌다.
[ 어디가서 저녁이나 하지 ...오늘은 좀 할말이 있어서 왔는데 ]
그녀가 시현과 있을때와 달리 편안한 기분으로 그를 따라간 곳은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자리에 앉아 그녀가 그곳의 인테리어에 감탄을 쏟아내자 정운이 웃었다.
[ 오늘은 직업적인 얘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냥 즐기자구 ]
[ 할 얘기란게 뭐예요? ... 이런곳에 데려올 정도면 굉장한 부탁인거 같은데 부담스러워 지네요 ]
[ 우선 식사부터 하고 나서 ]
식사내내 그가 주는 따뜻한 분위기에 그녀는 며칠동안의 피곤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그는 커피를 마시며 잠시 기분 좋은 침묵에 잠겨 있을 때 그가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조그맣지만 고급스런 벨벳상자를 보는순간 그녀는 갑자기 겁이나서 차마 손을 내밀어 열어볼 생각을 못하자 그가 대신 뚜껑을 열었다.
가느다랗고 정말 너무 잘 어울리는 커플링이었다.
[ 내 나이에 이런걸 끼기엔 너무 유치한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꼭 사고 싶었어 ]
[ 별로 나이도 많지 않으면서 그래요 ]
그녀가 태연 하려고 애쓰면서 웃었다.
[ 이제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이렇게 되기에 많은 준비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 아니 , 나는 당신이 내 사무실에 처음 면접보러 온 날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했던거 같아 ]
[ 설마, 농담이시죠? ]
[ 그때 당신은 굉장한 기세로 자신의 뜻과 희망을 말했지. 난 이사람의 눈에는 자신을 믿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어. 그리구 ...굉장히 귀여웠어 ]
그가 옛날일을 떠올리며 웃었다.
' 그건 믿음이 아니예요 '
시현과의 일 때문에 졸업을 할수 없었던 그녀가 취직하기란 너무 힘들었다.
그녀가 틈틈히 따놓은 자격증들도 졸업장이란 벽에 부딪쳐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돌아갈수도 없어 언니 집에서 머물고 있는 그녀에게 취직은 절실했지만 순조롭지 못했고 대기업에 있다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독립한 정운과의 면접에서 그녀는 모든걸 걸었었다.
그녀를 믿어준 정운이 항상 고마웠지만 일이 이렇게 되자 그녀는 괴롭고 미안한 마음이 가슴깊이 느껴졌다.
[ 일단은 당신이 가지고 있다 내 진심을 받아들이게 되면 끼어 줬으면 좋겠어. 내것도 그때 당신에게 받고 싶어 ... 이번 일이 끝날 때 까지 결정해 줬으면 좋겠는데 ]
그녀는 그의 앞에서 반지를 돌려줄 용기가 나지 않아 괴로운 심정으로 반지를 받아 백에 넣었다.
그가 조금은 만족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도 일어섰다.
정운의 차가 그녀의 아파트 앞에 닿자 잠시 그가 머뭇거리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다 고개를 자신에게 향하게 한후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 잘자... 날 오래 기다리게 하진 마 ]
그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안전벨트를 풀자 수줍게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그의 차가 떠나는걸 바라보며 그녀는 한숨지었다.
' 왜 처음부터 이 남자를 만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과 이제 앞으로 닥쳐올 고통의 날이 예고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가 슬픈 얼굴로 돌아서는 순간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과 부딪쳤다.
[ 무슨 일이예요?...여긴 어떻게 ]
[ 그렇게 아쉬운 얼굴로 떠나 보내는 연인이 있으면서 나와 그런 키스를 하다니 당신 도덕심도 이젠 예전같지 않나보군 ]
그가 소름끼치도록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차를 몰고 떠나자 그녀는 또다른 고통이 폐부를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