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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너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 ]
혜원의 카페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녀의 친구는 이미 기다리고 있던것처럼
진이에게 침착하라는 표정을 지었다.
[ 나도 지금 황당해 ... 아무렴 내가 김시현을 너한테 보냈겠냐, 어제 시현
씨가 우리가게에 나타난것도 놀라웠는데 하필 니네 사장이 그때 시현씨랑
얘길 나누게 된건지...나두 어쩔수가 없었다구...그 사람 왔었니? ]
[ 응 ]
혜원은 그녀를 구석진 자리로 데려가 앉히곤 급히 자리를 떠나 음료를 들
고 왔다.
[ 아는척 하든? ]
[ 그럼... 아주 당당하게, 마치 골탕 좀 먹으라는듯이 오랜만이죠 하던
걸...이제 난 어떡해? ]
한풀 꺾인 그녀의 목소리에 혜원은 측은한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 마셔, 그리고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혜원이 내민 음료를 받아들고 단숨에 들이키려던 그녀는 갑자기 목안이 후
끈거리며 타는듯한 느낌에 그만 사래가 들려 기침을 해댔다.
[ 컥컥 ... 이게 뭐야? ]
[ 지금 너한테 가장 필요할것 같아서 ]
기침때문에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끝으로 훔치려던 그녀는 그만 터져 나오
는 눈물을 주체 못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를 만난건 대학 2학년때였다.
고등학교때 같은 반이었지만 같이 어울릴 기회가 없었던 친구 은희가 같
은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함께 다니게 된후 성격이나 모든면에서 그녀와
달랐던 친구때문에 부담스런 사람들과의 만남이 생겼다.
그런 은희가 그당시 몇몇곡을 써서 알려지기 시작한 시현을 알게 된후 그녀
의 인생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늘 노래를 부르고 싶다던 은희는 시현이 나타나는 곳마다 그녀를 끌고 다녔
다.
사춘기 시절에도 다른 친구들처럼 연예인 한번 좋아하지 않았던 그녀가 이
성을 쫓아 다닌다는 것은 매우 자존심 상하고 불쾌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늘 여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시현의 느낌도 별로 좋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은희와 사소한 이견차이로 떨떠름한 관계가 되었고 곧 멀어지
게 되었다.
3학년이 되어서 그녀는 처음으로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남자 고등학교 학생주임이었던 아버지의 엄격함 때문에 이성교제에 규제를
당하던 그녀가 처음 내본 용기였다.
그는 조용하고 자신의 학문에 꽤 열의를 가지고 있던 역사학과 선배였다.
특히 남을 배려하는 그의 모습이 좋아 꽤 진지해지려던 순간이었다.
그때 영화를 보고 나오다 시현을 마주치기 전까진.
그녀를 기억이나 할까라는 마음에 그냥 지나치고 난 며칠후였다.
커피전문점에서 선배를 기다리던 그녀에게 시현이 폭발할 것 같은 표정으로
나타나 그녀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자신의 차에 태워 놀란 그녀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데려간 곳은 양수리였
다.
차가 서자마자 내리려던 그녀를 붙잡아 그는 돌연 입??是?했다.
[ 속이지마, 어차피 우린 이렇게 될수 밖에 없어 ]
한동안 멍해 있던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린후 있는 힘껏 그의 뺨을 올려 부쳤
다.
그의 얼굴이 빨갛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지만 개의치 않고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 그 모범생같은 자식은 너한테 있는 진실을 끌어내진 못할걸... 나를 그렇
게 더러운 벌레 보듯 하는 그 눈속에 감춰진 갈증을 난 읽을수 있어 ]
[ 너무 기가 막혀 웃음도 안나와...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여자에겐 이런식
으로 자존심을 세우나보지. 정말 대단한 왕자병 증세군 ]
[ 하하하...그래도 솔직하지 못한것보단 낫지 , 더군다나 감정을 속이기 위
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건 더 용서 못할일이야 ]
[ 더이상 대꾸할 가치를 못 느끼겠어...날 집에 데려다 주든지 아님 여기
서 내리게 해주던지 했으면 좋겠어 ]
[ 그래... 오늘은 이쯤 해두지 빨리 자신을 돌아보길 바래, 이제 시간낭
비하기 싫으니까 ]
그가 차를 돌려 집으로 왔을때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후였다.
그녀의 동네근처에서 차에서 내리기전 그는 다시한번 긴 입맞춤을 했다.
반항하는 그녀의 힘은 너무나 미약했고 그의 만족스런 얼굴을 보며 낭패감
을 느꼈다.
[ 잘가 ...연락할께, 그리고 그 모범생이 상처받기 전에 일찍 끝내는게...]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그녀는 차에서 내려 쿵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문을
닫았다.
이제 서서히 의식하게된 그에게 감정을 드러내기전에.
연락하겠다는 말과 달리 그는 몇주가 지나도록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몇주 동안 절대 떠나지 않는 그의 존재와 싸우느라 그녀는 점점 심란해
져갔다
선배와의 만남도 이제 끝이 나버렸다.
그녀가 시현의 손에 이끌려 차에 타던날 약속장소에 도착한 선배는 그 모습
을 보았고 어떠한 해명도 필요없이 씁쓸하게 만남을 마무리 지었다.
시현에게 연락이 왔을때 이미 그녀의 자제심은 무너지고 있었다. 자신에게
이런감정이 숨어 있으리라곤 생각 못할정도로 그녀는 시현에게 깊이 빠져들
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