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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늦게 나온거야? 핸드폰도 연락이 안되고 이제 가게가 좀 잘된
다 싶으니 슬슬 게으름이 도지는구나 ]
하루종일 연락이 되지 않던 친구가 오후 4시가 다되어 가게에 나타나 전화
를 받자 그녀가 비꼬았지만 늘 기운이 넘치는 혜원이 오늘은 받아칠 생각
을 하지 않고 조용했다
[ 무슨일 있니? 왜 이렇게 조용해 ]
[ 아니... 그냥 좀... 무슨일인데? ]
[ 어제 우리 사장님이 니네 가게에서 엄청난 일감을 가져 오셨던데, 누구
야?... 너랑 친해 보인다던데 가게 손님이야? ]
[ 아니, 저기 진이야 나 좀 바쁘거든 나중에 연락할께 ... 근데 그사람 아
직 안왔니? ]
[ 누구? 응 ...아직 근데 진짜 무슨일 있는거 아니야? ]
그녀의 걱정을 뒤로하고 혜원은 뭔가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전화를 끊었다.
' 근데 왜 안오지? '시계를 들여다 보던 그녀는 손님이 오기전에 매무새를
한번 다듬기 위해 화장실에 다녀오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다 문을 열고 들어
오는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얼어버렸다.
그녀가 정신을 차릴틈도 없이 정운이 그를 맞으러 앞으로 나가 인사를 나누
는 모습이 들어오자 그녀는 머릿속이 하얘져서 도통 어떤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운이 그녀에게 와보라는 눈짓을 했지만 현기증이 일어 그녀가 발걸음을
떼면 곧 다리가 풀려 쓰러질것만 같았다.
용기를 내어 한걸음씩 내딛자 얼마 안되는 거리가 마치 몇킬로는 되는것처
럼 멀게만 느껴졌고 그녀가 걸어오는 동안 그 남자는 한시도 눈을 떼지않고
그녀를 보고 있었다.
사무실 안쪽 유리칸막이로 분리된 회의실로 안내되어 자리를 잡은 그남자에
게 정운은 그녀를 소개시켰다.
[ 여긴 어제 마음에 들어 하셨던 Think의 인테리어를 했던 이 진이씨라고
합니다.]
그녀가 미처 뭐라 말을 꺼내기 전에 그가 손을 내밀었다.
[ 오랜만이죠? ... 많이 놀란것 같은데 ]
[ 두 분... 아시는 사이인가요? ]
정운이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슬슬 분노가 치솟기 시작했
다. 그녀가 무방비 상태임을 알고 이런식으로 아는척을 하다니 이제 놀라워
하고 있을때만은 아닌것 같았다.
[ 예전에 잠시 알았었죠 ...어디 공부하러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언
제 왔어요? ]
뒷말은 그를 빤히 쳐다보며 지지 않겠다는 도전적인 말투였다.
[ 공부는 무슨 ...그것도 공부라면 할수 없지만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음악
만 실컷 듣다 왔지 ]
[ 저...사장님 이분은 작곡가예요, 요즘 알만한 곡들은 거의 이분 작품일걸
요 ]
둘의 대화를 궁금해하는 정운에게 그녀가 씁쓸한 기분으로 설명했다.
[ 그래? ...제가 그쪽 계통으로 문회안이라 잘 몰랐습니다. 아뭏튼 두분이
잘아는 사이 같으니 일하기가 편할것 같은데요 ]
이후엔 정운과 그사람이 앞으로의 일의 진행에 대한 얘기가 오고 갔고
그녀는 도무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김 시현, 이남자가 왜 여기에 나타난거지?
그녀 인생에서 최대 실수이자 고통이었던 그를 잊기위해 지난 4년동안 얼마
나 열심히 살아왔는데 지금 그녀는 이 혼란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가슴
이 답답해져 왔다.
얘기가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는 기억할수가 없었다. 대화내내 집중을 할수
가 없었기 때문에...아뭏튼 정운의 밝은 표정으로 보아 일이 잘되었다는걸
짐작 할수가 있었다.
그가 떠나면서 다시한번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것을 느꼈지만 무시했다.
[ 누가보면 헤어진 연인이라도 되는줄 알겠어, 왜그렇게 긴장한거야? 진이
씨답지 않게 ]
그가 나가자마자 정운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묻자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그녀는 당황했다.
[ 제가요?...그런거 아니예요. 그냥 좀 뜻밖이라 ]
곧이어 후배인 소희가 다가와 그에 대한 노골적인 관심을 보이며 호들갑을
떨자 정운은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