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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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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my꽃뜨락 2001-04-29



아들 담임 선생님께 느닷없는 호출을 받아 부리나케 달려가게 되었다. 지난 번 학부모회의 때도 뭔 일이 겹쳐 빠져버린데다 성적까지 형편무인 지경이니, 잔뜩 주눅이 들어 갈 수밖에.....

오늘은 이 장난꾸러기가 또 어찌해서 친구 입술을 터뜨렸단다.
말 나온 김에 우리 아들 자랑 좀 해야지!
이 놈은 지금 중3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1번에서 3번을 벗어나지 못하는 땅꼬마인데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운동에만 매진하는 그런 놈이다.

운동이라면 축구, 농구, 야구, 달리기 등 종류 불문하고 못하는 것이 없는 모양이라 친구 사이에서는 인기 캡이다.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운동선수로 키우자고 권하였을 정도로 좋아하고 잘 하고 했지만 내가 거절을 했다.

예체능 모두 재력을 동원한 부모의 뒷바라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는 처지에..도무지 그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놀기를 좋아해서인지 친구는 큰 놈, 작은 놈, 공부 무지 잘하는 놈, 못하는 놈, 가지각색으로 몰고 다니는데, 어느 땐 저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커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장미꽃다발을 들고 ?아와 나를 웃기기도 한다.

말하자면, 요즘 친구 사이에 인기가 많다는 터프가인가보다.
"안녕하세요? 인장이 엄마예요. 진작 못?아뵈서.. 죄송합니다."
나는 있는대로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30대 후반이나 되었을까?
당찬 모습의 선생님 표정이 보통이 아니다.

"아니! 아들이 둘도 아닌 하난데 저 모양이니 어쩔 셈이세요?"
뭔 소리여? 아무리 꼴찌엄마지만 말씀이 좀 심하네?
약간 기분이 상한 나는 상담방법을 수정하기로 했다.
"하하! 글쎄 그러네요."
"아들이 하나 아니라 반쪽이라도 제 스스로 할 생각이 있어야지..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더군요."

어이없다는 선생님 표정!
교사휴계실로 옮겨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갔다.
"이래 가지고는 인문계 못갑니다."
단호한 표정으로 학적부를 펼친다.
다 아는 성적인데 볼 것 있나? 나는 각 과목별 평가란을 살피기 시작했다.
'양, 양, 양, 가, 수, 우, 우, 양... '
하이구! 이 놈은 완전 양가집 아들이네. 그 와중에도 불쑥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이외로 과목별 평가는 양호하다.
이해도 빠르고 발표도 잘 하고... 오호! 그럼 됐다.
일단 안심이 된다.
교우관계 좋고, 잘 놀고, 미련맞지 않으면 평균은 되는구만.
아들은 입만 열면 선생님에 대한 불평을 토로했다.
독한 마귀할멈에다, 매일 쪽지시험을 보며 저희들 특히 저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성깔은 보통이 아니지만 아이들 성적에 욕심도 많고 열정적인 스타일의 선생님이구나 파악하고서는 내 심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아들이 모든 사람에게 대접받고 제 능력을 맘껏 펼치며 살기를 바라지만 부모 뜻대로 안된다는 걸 잘 알고있습니다.
때로는 이 놈이 나중에 뭐가 되려고?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아들에 대한 희망을 접게 되기도 하는데....
나는 이런 내 마음을 끊임없이 경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아들성적이 바닥을 헤메는 것보다 선생님이 행여라도 우리 인장이에 대해 '저 놈은 가망 없는 놈' 이렇게 포기하실까봐 그것이 사실은 가장 염려가 됩니다."
선생님은 영리했다. 금방 핵심을 집고는..

"무슨 말씀을... 얘들은 열번 되는데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너무 감사하고, 정말 안심이 되네요."
"우선, 외우는 과목이라도 열심히 해서 평균을 올렸으면 좋겠네요.
나도 어지간하면 인문계를 써주고 싶거든요."
이 정도면 감지덕지해야 하는데 그만 토를 달고만다.

"제 생각은...
공부에 흥미가 없는 놈을 억지로 인문계 밀어넣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래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아주고 싶은데, 아직 못?았습니다."
"어머님이 오죽 생각을 많이 하셨겠어요?"
"설령 커트라인을 넘었더라도 인문계 보내는 것은 고려해보고 싶습니다. 그보다 농고나 대안학교 같은 곳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인장이가 그쪽 취향이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아아!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의기투합하게 됐다.
선생님과 마음의 벽을 허물고 얘기하게 돼서 정말 기분이 상쾌했다.
선배 아들은 연대 의대 갔다하고, 친구 딸은 서울법대 갔다하고, 누구는 어쩌고...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 풍토가 자식 공부 잘하고 출세하면 엄마가 똑똑한거고, 혹시라도 어긋나면 그 엄마가 문제고 모자란다고 치부하지 않는가?
나는 지금, 이러한 휘둘림에 초연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있다.

한평생 살면서 저 좋아하는 것 하면서 사는 것처럼 행복한 것이 있을까? 그것이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이라도 나는 내 아들이 자기 일을 소중히 생각하고 성실히 일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정말 간절히 바란다.
농사꾼이면 어떻고, 공장 기능공이면 어떤가?

나는 장난꾸러기 내 아들의 마음을 너무나 사랑한다.
오늘 아침에도
"엄마! 어제 학교 갈 때, 어떤 할머니가 앞에서 무거운 짐을 이고 가시는데 학교에 늦을 것 같아서 그냥 갔어요. 그 할머니한테 너무 죄송했어요. 다음부턴 여유있게 가서 그런 할머니 만나면 들어다 드려야지..."

아이구!
우리 아들 예쁜 아들!!!

꽃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