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이겨내야한다.
이유없이 변해버린 남편과 위험이 다가오는 것도 모른채 잠든 내 딸아이를 위해서...
시커멓게 쳐다보고 있는 촛점과 싸워 이겨낼 사람은... 오직 나뿐일 것이다.
"뭘....원하...는 거...야, 왜 내..앞에 ,,,자꾸....나타나..는 거..냐 ..구."
침착하자, 날 똑바로 쳐다보며 처절한 시선으로 내 몸을 묶고 있는 저 눈과 싸워 이겨내야한단말이다.
"대답해! 난 네 엄마도 아니고..너에게 어떤..해꼬지를 한 적도 없어..그런데 왜 자꾸 나타는 거지?...그리고, 네가 내 남편을 ..변하게 만드는 거지... 왜지?.... 대답해!"
이제 내 목소리도 점차 안정되어가고 있다.
두려움으로 떨리던 몸도 이제 점차 평안을 찾아가고 있었고...
무엇보다 저것의 정체를 안 이상, 떨고만 있을 순 없었으니까.
....나는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눈'이(정확히 희윤이의 눈일 것이다.) 나를 벽쪽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
그리고 어느 순간, 처절한 슬픔으로 가득차 있던 시선이 사라지고 웃기 시작했다. 아니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그것은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조소였다.
"엄마...엄마라니까... 당신은 내 엄마야! 왜인지 알아? 난... 엄마가 필요하거든...그리고, 아빠는 원래 저랬어, 변한게 아니야. 원래 우리 아빠는 저런 사람이었어. 약간, 아주 약간의 세뇌만 있었을 뿐이야. 밤마다 찾아가서 소곤거리기만 했었지, 아빠가 예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일깨워주는 정도로..그런데 엄마가 알지 못하는 사이 아빠는 예전의 그 분노를 되찾아가고 있었어...흐흐흐"
지금 내 뒷통수는 벽에 붙어있는 상태다. 바로 앞에.. 커다랗고 (유난히)핏줄이 붉게 서있는 커다란 안구가 무서운 시선으로 날 밀어붙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말도 안돼, 내가 네 엄마라니...넌...죽은 아이의 저주가 남아있는 눈일뿐이야, 그리고...네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네 아빠...그래, 네 아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있어. 하지만 그 역시 죽었잖아, 그리고 넌 그런 아빠가 싫었을텐데...새로운 아빠를 원했을텐데.. 왜?"
"....물론 그랬지. 저주스럽게 싫었지. 하지만...내 가족들을 다시 꾸려내려면 할 수 없어. 나의 아빠는 자상한 사람이 아니였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예전의 내 집, 내 가족이거든...."
예전의 내 집? 이건 말도 안된다. 이해할 수도 없다.
처음에 구회장으로부터 지나간 그 사건을 들었을 때, 동정하는 마음속에서 그리던 희윤이라는 아이는 이리 이상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저 누구라도 그런 일을 겪게 되면, 원한이.... 세상과 과거에 대한 분노가 사무칠 것이라서, 설명할 수 없는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그렇게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기괴한 저주의 물체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살던 공간에 들어온 침입자(?)들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완전한 자신의 가족을 재창조하겠다는 것이다.
"말도 ..안돼. 그러면 너를 보호하기 위해 네 아빠를 죽인 너의 엄마는.....엄마가 그런걸 원할까?"
"흐흐흐....흐흐흐.....흐흐흐........"
왜 저리 기괴한 웃음만 웃어대는 거지?
"엄마가 누굴 어쨌다구? 아니야..완전히 잘못알고 있어.. 그 때 아빠를 죽인건 엄마가 아니야...나야."
이럴 수가.....
"내가 찔렀어,그리고... 엄마가 말리길래 밀쳐버렸는데...엄마도 죽어버리더군..."
모든 게 잘못되어버렸다. 말도 안되게.....
"그건 말도 안돼, 넌 그 때 어린아이였어. 어린 아이가 그런 힘이 있을 수 있다니...말도 안돼."
"물론, 난 어렸지. 하지만 내 분노는 어리지 않았어.
처음엔..분노로 아빠 엄마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 내 눈이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어..."
한동안 다시 예전의 슬픔이 눈안에 가득했다.
"처음부터 나를 거부한 눈동자와 내게 남겨져 고통을 겪게 만든 또 다른 눈동자... 다시 처음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너무나 간절하게 원망하고 고통으로 몸부림쳤어.. 그런데 한쪽뿐이었던 눈이 들썩거리기 시작한거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단서는 오직 이 눈뿐이었으니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나로선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였어... 내 눈이 빠져나간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