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37

[제7회]


BY pluto 2001-05-03

"아저씨.."
뭔가 장부를 정리하고 있던 경비 아저씨가 깜짝 놀라면서 나를 쳐다봤다.
"아.. 317동에 얘기엄마시구먼.."
"네, 맞아요. 아저씨, 여기 경비일 보신지 오래되셨나요?"
"네?"
다짜고짜 경비일 오래봤냐고 물어대니 좀 당황스러웠나보다.

"글쎄요...한 5년쯤 됐나?"
"그럼 그 사이에 이 아파트에서 일어난 사고는 대충 알고 계시겠네요?"
"사고요? 뭐... 그렇겠죠. 하지만 저희 아파트는 아시다시피 경비가 다른 곳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잖습니까. 원래 많은 곳은 한 라인당 한 명씩 경비원이 있기도 하던데, 여긴.."
"아니요. 그런걸 여쭤본게 아니에요. 사고말이에요."
"......"
"저희집에서 무슨 사고가 있었나요? 저희 이웃이 그러던데 계속 사고가 났다면서요."
"저희 집이라 하시면..."
"317동 602호에요."
"맞다,602호......그런데,그거 꼭 아셔야되나요?"
"네?"
"살고 있는 집에서 전에 무슨 사고가 있었다는거 아시면 불안해지시지 않겠어요?"
"불안해지지 않을려고 여쭤보는거에요. 어서요, 아저씨."

경비아저씨가 기억하는건 유난히 추락사고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꼭 아이들만...

"솔직히 저도 그런걸 믿지는 않지만 좀 ...그렇더만요. 어떻게 꼭 그집에서만 추락사고가 세번이나 일어날 수 있는건지 원...그것도 꼭 아이들만 그래요. 이상하기도 하죠."
"그게...다인가요?"
"아니죠. 거기 살고 있던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한적도 있대요. 제가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찻길을 그냥 건너다 그랬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계단에서 구른 아이도 있었고..."

"다...아이들만 그런건가요?"
"그게...그렇네요."

경비 아저씨의 눈길을 받으면서, 되돌아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하나.
막연한 불안은 현실적인 문제가 되어버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건...우연이 아니다.
나를 찾아왔던 '그것'과 분명 무슨 연관이 있을 것이다.

-----------------------------------------------------------------

"여보, 이사가요."
"뭐?"
"이사가자구요. 제발요. 더 늦기전에"
"당신 무슨 소리하는거야, 이사를 가자니, 뭘 더 늦기전에란 거야!"
"이 집에 살던 아이들 다 죽었대요. 앞집여자, 경비원 아저씨한테 제가 다 확인해봤단 말이에요."
"쓸데 없는 소리 하지마. 남들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겟지만, 집때문에 애들이 죽었단거야 뭐야. 당신 지금 말도 안되는 소리 하는거 알고 있어?"
"여보 제발....지수가" "시끄러!"

남편은 필요이상의 화를 내고 있다.
"짜증나 죽겠네, 집이라고 들어오니까 여편네가 말이지 이상한 소리나 지껄이고... 에이 짜증나!"

결혼한지 십이년이 지날 동안 남편이 나에게 '여편네'라든지 '짜증이 난다'든지 한건 그것이 처음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하는 이야기에 항상 자상한 대화를 이끌어가던 사람이었는데....

"지수야!"
지수는 또 왜 부르는거지?
자기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던 지수는,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거실로 나왔다.
"아빠 왜불러? 나 숙제 엄청 많단말야. 학원숙제도 해야되고..."
그때였다.
남편의 손이 지수의 뺨을 때린 것은..

"여보!...무슨 짓이에요?"
지수도 너무 놀랐는지 눈에 눈물만 그렁그렁한채 아빠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어디서 건방지게 아빠한테 인상이야? 불렀으면 그냥 네하고 나오면 될 것이지 인상을 빡빡쓰고...애미가 그러니까 딸년이라고 하나있는것도 똑같이 구는군."

지수라면 무슨 일이든지 받아주고, 마냥 사랑만 퍼붓던 자상한 아빠였는데, 지금 그가 별 이유도 없이 아이에게 손을 댄것이다.
어째서 아이를 불렀는지 이유도 밝히지 않은채 남편은 나와 지수를 향해 계속해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저건.. 내 남편의 모습이 아니다!

-----------------------------------------------------------------

지수는 그날밤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뺨을 맞은것이 아프고 억울하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아이를 놀라게 한것은 아빠의 예상치 못한 모습이었던가보다.
"엄마....흑흑..아빠.. 왜 그래?"
"......"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아이를 품에 안고 이 무서운 변화들을 어떻게 이겨내야할런지 ...너무나 당황하고 있었다.

-----------------------------------------------------------------

다음날, 아이가 등교하자마자 나는 경비 아저씨를 다시 찾아갔다.
"아저씨."
"..! 웬 일이슈?"
어제 나의 인상이 좋지 않았었는지 아저씨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어제는 죄송했어요, 느닷없이 이상한 질문만 하고 인사도 하지 않았네요, 죄송해요."
"아니요, 뭐 ...그럴수도 있겠죠."

"그런데 아저씨... 이 아파트에서 제일 오래 사신분이 누구실까요? 되도록 저희 집이랑 가까이 사시는 분이면 더 좋구요."
"제일 오래요?....글쎄...."
한참을 생각하던 경비아저씨는 갑자기 누군가 떠오른 듯했다.
"아! 그 분이 있네요. 작년말까지 노인회 회장이셨던 분인데요, 그냥 장회장님이라고 부르는 노인이 계세요. 가만있자...그분이 ...315동에 사시죠 아마.."
"몇호인지 알수 있을까요?"
아파트 동호수와 세대민을 적어놓은 쪽지를 밀어넣은 책상 유리밑을 한참 들여다 보던 경비 아저씨는 315동 804호를 알려줬다.
'315동 804호......'
대강 인사를 하고, 나의 급한 발길은 315동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