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저 잠든 지수 곁에 꼭 붙어서 저 밑에서 끓어오르는 공포와 싸우는 수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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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말을 해야하나..과연 내가 본 그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믿어주기라도 할까.
이제 오늘 밤부터 어찌 해야하나.
아이를 저대로 저 방에서 재울 수는 없지 않은가...
단순히, 아이가 걱정되서? 아니다. 그것만은 아니다.
나또한 견디기엔 너무 약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이 잘못된 악몽의 조각이길, 일시적인 불안감이 빚어낸 환영이길 바라는 것뿐....
그래 이건 현실로 착각되어진 악몽이야!
그런 일따윈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
아무도 믿어줄 수 없는, 아니 예초에 있지도 않았던 사실이야.
도대체 어떻게 이런 악몽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루종일 나 자신을 정리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다가 내린 결론이었다
'이건 악몽이야'
그런데...
잊혀지기엔 너무나 처절한 그 기운.
가슴이 다 타버릴 것 같았던 슬픔을 넘는 그 처절함은 털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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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누구세요?"
악몽으로 치부해버리기엔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이야...
뭔가 알아내려는 노력이라도 필요해!
앞집 여자에게라도 가보자.
혹 얻는 것이 있을지도...
"?"
앞집여자는 문을 열면서도 불편해하는 기운이 역력했다.
"저... 잠시 여쭤볼게 있어서요"
지난번처럼 우리 집쪽을 힐끔 쳐다본다.
마치 누가 보고 있기라도 한 양...
"....앉으세요.."
앉으라고 권하고는 있지만 뭔가 불안한 모습이었다.
"이사오고...처음이네요, 마주보고 사는 이웃인데..."
"..그러네요...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물어볼것이 있으시다고..?"
"저..여기 사신지 오래 되셨나요?"
"글쎄요 오래된건가...한 4년 좀 넘었네요"
"그럼 저희 이사오기전에 살던 사람들을 잘 아시겠네요."
"....."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혹 친하게 지내셨었나요?"
"...글쎄요..."
무슨 대답이 저렇단 말인가. 글쎄요라니....
"그게...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았어요. 말이 워낙 없던 사람들이라.."
"그래도 혹시 이사간 연락처라도 알고 계신가요? 우편물 때문에 주소를 남기거나 하지는 않던가요?"
"아니요...그런 거라면 저는 모르겠는데요."
"...네..."
대답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속에, 내가 어서 일어나 자기네 집에서 나가줬으면 하는 빛이 역력했다.
더 이상 이 여자에게서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실례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기다렸다는 듯이 문의 손잡이를 내려주는 그녀의 손이 재빠르다.
기대했었는데...혹시라도 무슨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그것이 무슨 내용의 이야기인지는 나 자신도 모르는 막연한 것일지라도...
"저..."
"?"
뭔가 주저하더니 나가려는 내 뒤에 대고 속삭이듯 얘기했다.
"공연한 이야기같지만, 저희가 여기 살아온 동안 댁에 이사온 사람들이 다섯집이었어요. 이번이 여섯번째에요"
"그렇게나 많았어요? 왜...?"
"자세히는 모르겠네요... 그냥.."
그리고는 급하게 문을 닫아버렸다.
4년여의 기간동안 여섯가정이라니....
이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아!
만일 그것이 내가 본것일지도 모르는(그 때는 단순한 악몽으로 단정짓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것과 관련이 있다면?
지수가 이유없이 입은 상처가 그것때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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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며칠동안 나는 매일밤을 불안에 떨며 딸아이를 지키고 앉아 길고 긴 밤을 넘기는 일이 잦았다.
다행히 악몽으로 놀라거나 '그것'이 나타나는 일도 없었고, 아이에게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간의 피곤때문이었을까, 깜빡 낮잠이 들어버린 오후였다.
'엄마....아파....내 침대는 왜 치웠어, 엄마....,엄마...'
"악!
그 소리는 너무도 생생했다, 그리고...똑같은 얘기.
깜짝 놀라 일어섰을때, 내 몸에는 소름이 잔뜩 돋아있었고, 전신이 땀에 쩔어있다시피 했다.
'안 돼! 이 공포에서 이대로 묶여 살수는 없어! 벗어나고 싶어!'
남편에게 얘기를 꺼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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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그 날따라 일찍 귀가했다.
"아휴! 요즘 왜 이리 피곤하지?"
옷을 벗지도 않고 소파에 주저앉아버리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여보..."
"왜?"
"할 얘기가 있어요"
"뭔데.."
"이 집 말인데요..."
"이 집이 왜?"
"..앞집 여자가 그러는데요, 4년동안 이 집에 이사온 가정이 우리가 여섯번째래네요."
남편은 눈도 뜨지 않은채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 좀 많군."
좀 많군..이라니?
어떻게 저렇게 이상한 반응을 보일 수가 있을까.
피곤이 지나쳐서 그런건가?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그렇지, 이건 평상시 남편이 보이는 반응이 아니다.
비록꼼꼼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은 성격이지만, 그래도 항상 자상하게 대화상대가 되어주던 남편이었다.
나나 지수에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항상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애쓰던 사람이...이 비정상적인 내용에 대해서 비치는 반응이란게 저런 뜻밖의 한마디라니...?
"그래도, 우리능력에 이런 집이 어디야...그리고 한집에 꼭 오래 살아야 되눈 건 아니잖아, 사람마다 다른거지 뭐, 한달을 살고 이사갈 수 도 있고 십년을 살 수도 있는거고.."
"그래요, 이 집이 좋긴 해요...하지만, 지수도 그렇고..."
"씻고 나올테니까 밥이나 줘."
갑자기 얻게 된 집이라 저럴 수도 있는건가?
내 얘기를 들은 척도 하지않고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던지더니 욕실로 쑥 들어가버리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소용돌이치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러고보니 요즘 남편은 단 한번도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었다. 다만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불안감에 남편의 변화에까지 신경쓸 마음의 여분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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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저 잠든 아이를 지켜보고 있던 내게 '그것'이 또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너무도 명확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