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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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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문학소녀 2001-04-20

<7년 전 그 곳에는>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류시화 「물안개」


사랑, 동경 그리고 연민 이 세 단어는 같은 뜻일 수 없지만 그 차이를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사랑인줄 알았고 힘들어 하는 친구를 보며 느끼는 동정심이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던 고교시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었던 한 남자. 지금 생각하면 사랑, 동경 그리고 연민 이 세가지 모두가 그에 대한 내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정말 사랑이 아니었을까! 남들이 얘기하기 좋은 첫사랑. 확신은 할 수 없다. 아직도 난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볕이 좋은 4월의 투명한 오후다. 참 이상하다. 왜 꽃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피었다 지는 걸까. 그저께 내린 비로 교정에 깔린 잔디들이 생명을 되찾은 듯 윤기가 돌기 시작한다. 연희는 또 어디에 간 것일까. 요즈음 내 눈에서 가끔씩 사라지곤 하는 연희의 행동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연희와 나는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까지도 함께 들어와 3학년인 지금 한반이 되었다. 우리의 우정은 자매 그 이상이었으므로 18년동안 주위의 부러움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런 그 애가 요즈음 학원 선생님을 좋하하기 시작하면서 혼자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많다. 처음 경험하는 가슴앓이를 내가 이해할 리는 없지만 그래도 옆에서 지켜보기가 안쓰럽다. 그런 감정도 때가 되면 피는 꽃과 같은 것이라면 연희의 가슴에 핀 꽃이 빨리 저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내 시선은 교정의 구석구석을 쉴세 없이 헤맨다. 토요일 오후라서 학교 안은 한산하다. 막 피어난 개나리나 진달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무리들과 잔디 위에 종이를 깔고 앉아 까르르 웃는 몇몇의 애들이 띄엄띄엄 내 시선을 잡는다.
연희는 막 파릇파릇 피어오르기 시작한 잔디운동장 저쪽 교단옆 계단에 작게 웅크리고 있다. 자신만만한 자태로 하얗게 웃고 있는 목련가지에 멍한 시선을 고정시킨 채 내가 다가가는 줄도 모른다.
“집에 안 갈거야?”
연희는 갑작스런 내 목소리에 놀란듯한 눈을 제자리로 옮기며 표정이 이내 진지해 진다.
“미경아 여덟살 차이가 많은 건 아니지? 선생님도 날 좋아하셔”
내내 여기 앉아서 그 선생님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 곧 중간고사야. 얼른 집에 가서 공부하자. 오늘하고 내일 밤새기로 했잖아.”
“………”
“연희야, 네가 선생님을 생각하는 감정과 선생님이 널 대하는 감정은 서로 성격이 달라.”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이 슬퍼보였어.”
연희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연희를 도와주고 싶다. 나는 갑자기 약정사 생각이 났다. 얼마전에 내가 그 곳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을 때 연희는 가보고 싶어 했었다.
“그러지 말고 너 나랑 약정사에 한번 다녀올래?”
별 생각없이 꺼낸 말이었지만 거리도 가깝고 월요일이 식목일 연휴라서 부담없이 기분전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꼭 가고 싶어졌다 .
“뭐 해. 빨리 일어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