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학교가 싫었다.
체류탄과 화염병과 이상한 열기들로 가득했던 80년대의 끝.
늘 전쟁터같은 정문을 피해 학교 뒷산으로 등하교를 해야했던
그 시절.
독재정권은 여전히 건재했고, 친구들은 하나둘씩 보이지 않았지.
1989년
<현대문학> 강의 도중에 날아온 체류탄으로 인해 수업이 중단되었던 봄날의 오후.
은채, 지민, 나 우리 삼총사는 학교 뒷산의 이름없는 무덤으로
직행했다.
비석도 없고, 벌초도 되어있지 않아 정말 무덤인지 아닌지도
분간이 안 되는 흐트러진 봉분........
그 즈음의 우린 이 외로운 이의 넋을 위로한답시고 자주
이 곳에 와서 책도 보고, 수다도 떨며 때론 깡소주를 마시기도 했지.
4월의 무덤가엔 진달래가 피를 토하는듯 만개해있었고
우린 그 처절한 아름다움에 빠져 김소월을 이야기했지.
은채가 가방을 열고 언제 사두었는지 소주 한병과 새우깡을 꺼냈다.
우린 술에 취하고 진달래에 취해서 붉게 물든 서로의 얼굴을 보며
또 한바탕 깔깔거리며 뒹굴었지.
투사 아니면 공부벌레, 아님 모두 날라리로 분류되던 이해할 수 없던
그때 우린 분명 날라리였다.
도서관도 아니고, 시위대 대열에도 끼지 못한 어중간한 날라리?
그래도 우리에겐 꿈이 있었다.
글을 밥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작가가 되겠다는......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