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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우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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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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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동안


BY hl1lth 2001-03-30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상덕은 보던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감사합니다. 사랑입기 입니다."
전화기를 타고 약간은 허스키한 여자의 목소리가 상덕에게 아는 체를 했다.
아~ 몇일 전 출판사에서 나왔던 그 여자.

사람의 목소리를 담박에 알아듣는 재주가 있던 상덕은 그 여자의 목소리도 대번에 알아들었
다.
"아. 안녕하세요. 한 우희 씨죠?"
"어머? 제 목소릴 알아주시다니 정말 영광인데요?"
"당연하죠. 아름다운 여인을 기억하는 건 남자로서 당연한 도리죠. 허허허"
"이제 보니 농담도 잘 하시는 군요. 사모님 외에 다른 여자와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사적
인 농담같은 건 안하시는 분인줄 알았는데요."

"아, 제가 그렇게 빡빡하게 보였습니까?"
"아니요. 그런게 아니라 두 분 바라보는 눈빛이 결혼 생활을 오래 동안 한 부부의 눈빛이라
고 밑기지 않을 만큼 뜨거웠었거든요. 그래서 제 마음대로 그렇게 생각한 거죠."
"네, 아이구 이거 들키고 말았군요. 허허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네. 사장님과 인터뷰한 초고를 저희 사장님께 보여드렸더니 내용이 퍽 마음에 드셨는지 내
달부터 기획하게 될 "패션에 관한 어드바이스"란 제목의 고정칼럼을 맡아 주실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셔서요."

"정말입니까? 저야 좋지요. 저와 저의 일을 홍보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요."
"정말 맡아 주시는 거죠? 그러실 거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대답을 들으니 정말 반갑네요.
고맙습니다. 앞으로 자주 뵙게 될 것 같은데 잘 좀 부탁드릴께요."
"부탁은 오히려 제가 드려야 될 것 같은데요. 만나뵙고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만"
"네, 그러세요. 언제쯤 시간이 나시겠어요?"
"사무실로 아무 때나 오시면 저는 항상 있습니다."

"사무실로요? 그러지 마시고 제가 잘 아는 음식점이 있는데 정갈하고 맛도 좋거든요. 분위
기도 조용해서 일 이야기 나누기는 적격인데, 이따 저녁에 그곳에서 뵈면 어떨까요."
"좋으실대로 하시죠."
"이번에도 사모님과 함께 오실 건가요?"
"그럴생각 이었는데 안됩니까?"
"네, 뭐 굳이 함께 오시고 싶다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저는 사장님의 칼럼을 원하거든요.
그러니 사모님의 조언이나 합석은 사양하고 싶은데요. 물론 사모님 조언 없이 사장님의 일
이 불가능해 진다면 다시 생각해 볼 문제지만요. 전 사모님대신 사장님의 작품에 저의 의견
과 감각을 절충한 칼럼을 만들고 싶거든요. 맘에 안드신다면 다시 생각해 보셔도 좋구요."

순간적으로 상덕은 여지껏 아내와 함께 서로의 의견을 절충하고 합의해온 지난날의 자신이
어쩐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한기자님과 공동으로 이 칼럼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말씀 같은데, 그러면 어쩔 수 없죠.
혼자 나가겠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전화를 끊으며 우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됐어. 이제 둘이 공유하고 참견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생기게 될 꺼야. 김 상덕! 처음부터
그러긴 쉽지 않겠지만 이제 곧 너의 아내를 무시하게 될걸? 네가 듣고 참고해온 그 여자의
어떤 의견이든 절대로 이 칼럼에선 무시당하고 별 볼일 없는 것처럼 만들어 보이게 될테니
까. . . 게다가 넌 지금 아마도 몹시 자존심이 상해 있겠지? 마누라 조언 없이 네가 무슨 일
을 하겠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내 말투가 그랬으니까.

이제 게임은 시작되었다. 이제껏 자신과 겨뤄온 많은 여자들. . . 반응은 각양각색이었지만
결과는 뻔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자신을 두고 딴 여자와 만나 놀아난다는 것을 알면 이성
을 잃고 흥분하기 마련이었다. 물론 둔한 여자들이 있어서 남자가 즐거울 수도 있긴 했지만
우희는 그런 여자들에겐 꼭 물적 중거를 남겼다. 게다가 부인만이 느낄 수 있도록 교묘하게
심리전을 펼치는 것도 재미있었다. 남편의 거짓말과 상대여자의 교묘한 심리전 사이에서 서
서히 얼굴에서 웃음을 잃고 날뛰는 여자들을 지켜보는 쾌감이란!

게다가 멍청한 남자들이 부인과 지신의 사이에서 눈에 빤희 보이는 말도 안되는 거짓말들로
자신의 아내를 우롱하는 짓거리들을 지켜보노라면, 우희의 허영심과 우월감, 그리고 승리감
은 최고조에 달하곤 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탐욕과 호기심을 갖은 남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이제 우희는 김 상덕이라는 남자 옆에 선 여자, 그 여자가 어떤
반응을 하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