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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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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동안


BY hl1lth 2001-03-30

신혼여행에서 돌아 온 미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입덧이 시작되었고 식을 올린지 11개월이 지난 후엔 아들을 낳았다. 허니문 베이비였던 것이다. 작고 앙증맞은 조그마한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둘의 모습을 함께 발견해 내며 놀라움과 신비함으로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둘은 어느덧 완전한 어른의 길로 접어들었고 그 둘의 사랑으로 잉태된 손주와 며느리를 위해 시어머니께서는 아직도 학교에 다니는 시동생 둘과 시누이 뒷 바리지 하시느라 힘드신 상황에서도 틈틈이 들러, 교통사고로 병원에 계신 친정어머님을 대신해서 미순의 산후조리를 도와 주셨다.

어디서 구하셨는지 한달 내내 쑥을 한 솥 가득 삶아 요강단지에 부어 그 뜨거운 김을 쐬게
하여 주신 덕분에 출산 후유증이 심했던 미순의 몸은 한달 보름이 넘어가자 거뜬해 졌다.
아이가 누워서 자기만 하던 시간이 점점 짧아지면서 재롱 부리는 시간이 많아지고 뒤집기를
스스로 해 낸 후 기어다니기 시작했을 땐 하는 짓마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그들은 아이
를 통해 행복의문을 넘나들며 온통 분홍빛으로 변한 시간 속에서 자신들의 삶이 아이로 인
해 더욱 더 축복 된 삶으로 변해 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물론 아이가 생기면서 들어가는 돈은 둘이 살 때와는 비교되지 못할 만큼 늘어났지만 경제
적인 부담보다는 아이의 탄생으로 인해 자신들이 얻은 기쁨과 행복은 조막 만한 생명체가
그들에게 주는 것이라곤 믿겨 지지 않을 만큼 대단히 크고 감동적이었던 것이다. 정말, 아이
는 신의 선물이라는 말이 실감 날 만큼 그 아이에게서 누리는 행복과 감동은 무궁무진했다.
그런 아이 둘을 낳고 기르면서 그들은 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우리의 부모들이 우리들에
게 무조건 베풀어 줄 수 있었던 사랑은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은 이 아이들의 순수를 사
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 이었구나를 생각하면서 절대로 그 누구도 주지 못할 부모 자식
간의 사랑과 믿음과 신뢰를 조금씩 느끼고 배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조그만 입에서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들을 때의 그 진한 감동! 하나 하나 사물을
이해하고 익혀 나가는 그들을 지켜 볼 수 있는 기쁨! 순수의 모습으로 자신들을 믿고 사랑
해 주는 그들에게서 느끼는 행복! 고만 고만한 키에 체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언니
동생하며 챙겨주고 아끼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 억지를 부리거나 기특한 모습을 보이거나
모두 사랑스럽고 예쁘기만 해서 도저히 주체 할 수 없을 것 같은 행복을 그들과 함께 누리
고 발견하고 창출해 내면서 앞으로 새롭게 발견 될 많은 기쁨과 행복을 함께 누리게 될그들
의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넷은 오로지 사랑이라는 이름을 걸고 행복해 지길, 그 행복이
깨지지 않고 오래 지켜지길, 아무도 입으로 말하는 이 없어도 모두들 느끼고 그렇게 되기
위해 다른 모든 이들이 그렇듯이 현실에 발을 두고 이상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
나가고 있었다.

미순인 알뜰하고도 알뜰한 살림을 하면서도 늘 넉넉한 살림을 했었다. 그것은 무조건 틀어
쥘 줄만 아는 자린 고비식 살림이 아니라 쓸덴 꼭 쓰면서도 아낄 줄 아는 미순이 의 지혜로
운 살림법 때문이었던 것이다. 일가 친족까지 모두 살뜰히 챙기는 자상함과 예의바름으로
친지간에선 인기가 좋았고 미순이 때문에 남편 상덕도 덩달아 인기가 올라갔다. 작아도 다
달이 들어오는 돈이 살림을 일군다고 했던가. 적지만 직장생활을 했던 남편이 다달이 들여
주는 봉급을 쪼개어 알뜰히 살림하는 재미를 느끼며 살기 시작한지 이년쯤 되는 어느 날 남
편은 이백 만원의 자본금으로 사업을 한다며 직장을 그만 두었다.

남편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랐던 미순 은 굳이 반대하지 않았고 오백만원으로 시
작한 남편의 일은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일이었는데 남다른 창의성과 시장조사, 그리고 성
실함으로 남편의 옷은 곧 대박을 터트릴 것 같았었다. 밤낮없이 실 투성이가 되어 일하는
남편의 옆에서 미순도 거들 수 있는 일은 거들며 함께 일했고 어린 아들도 순하디 순해 미
순을 힘들게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물품 납품 한달을 남기고 똑같은 제품이 먼저 출하되는
바람에 남편이 밤낮으로 매달려 만들어 내던 옷가지들은 모두 헐값으로 처리되어 빛만 남고
말았다.

그러자 남편은 바느질 하청거리를 맡아와 아줌마 두 서너 명을 두고 옷을 만들기 시작했고
미순은 그런 남편의 모습에서 어려워도 지치지 않고 오똑하니 일어서는 오뚜기를 느끼며 남
편이 내심 든든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렇듯 착실하게 밤낮으로 일하다 보니 이문은 박했지만
그럭저럭 점포 하나를 동대문 시장에 낼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러나 꿈과 희망에 부풀어 상
덕은 저가급 유명브랜드를 독점으로 취급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사기꾼의 말 만 믿고 처음
부터 단박에 큰돈을 벌 것이라는 기대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돈 삼천만원을 사채로 얻어
다 독점 계약을 했지만 물건은 단 한번도 납품 받아 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돈만 날리고 말
았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가게는 비워 둔채로 여기저기를 방황하는 남편을 어쩌지 못하고, 혼자
빈가게를 지키며 미땅한 물건 없는 가계에서 거의 보따리 장사와 같은 수준으로 이가계, 저
가계에서 물건을 구해 약간의 이문만을 남기며 팔며, 성실히 일한 미순이 덕분에 가계는 다
시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임대료에 비싼 이자 물어내느라 몇 년을 고생해야만 했었
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얼마간의 방황을 끝내고 다시 가게에 마음을 붙인 상덕이는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하며 열심히 일했고 이제 이 계통에서는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비록 번 돈은 모두 빛과 이자 갚느라 넉넉한 생활은 꿈도 꾸지 못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둘은 일에 대한 보람과 긍지로 자부심이 대단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만족했다. 친구들
과 친지들이 모두들 자리를 잡아 자신의 집을 구입하고 살림이 늘어가는 것을 진심으로 내
일처럼 기뻐하고 흐뭇해하고 동생들 결혼 자금으로 몇백씩 빛을 내어 뒷바라지하면서도 당
연하게 여기고 주말이면 배낭 지고 아이들과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여유 부리는 그들을 남
들은 속으로 물정 모르고 욕심 없는 바보라고 비웃었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보
다는 남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더 큰 기쁨으로 알았던 그 두 사람은 궁색하면서도
누구보다도 더 큰 부자로 그렇게 십여년을 잘 살아 내었던 것이다.

함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행복할 수 있었던 그들은 마치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듯 늘 행
복해 보였다. 그러나 그 행복 뒤에는 미순의 불평 없는 내조와 상덕의 미순에게로 향한 사
랑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