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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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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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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야


BY hl1lth 2001-03-30

겨울 방학이 되었다.
이번 겨울이 지나고 봄이오면 봉순인 중학생이 될 터였다.
정부의 정책이 바뀌어 예전처럼 시험을 보지 않아도 학교를 배정 받게 되기 때문에, 봉순
이와 아이들은 마냥 태평스러웠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봉순인 하얀 칼라를 빳빳하게 풀
먹인 에라를 단 교복을 입고  머리는 단발로 단정히 자른 뒤, 가슴엔 중학교 뺏지를 달고 
다닐 터였다. 길거리를 오 다니는 선배 중학생 언니들만 봐도 봉순 인 가슴이 설레었다. 터
질 듯한 희망과 설레임으로 가득 찬 봉순인 대문을 나서며 손에 든 봉다리를 가슴쪽으로 끌
어 안았다.

"뭐하냐?"
철우 가 빡빡 민머리가 되어 수줍게 웃고 서 있었다.
"어~?"
"보기 싫지?"
"귀엽다 애,"
"뭐라고? 오빠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군."
"오빠? 오빠 좋아하시네-"
작고 귀여운 입술을 빼족 하니 내미는 봉순 이의 모습이 어쩐지 귀엽다고 느끼면서 철우 가
싱긋 웃는다.
"어디 가냐?"
"응, 미순 이네. 너, 조금만 늦었어도 나 못 볼 뻔했다."
"그러게, 근데 미순이네는 왜?"
"그냥, 놀러. . . 너도 할 일 없으면 같이 갈래?"
"그럴까?"

어차피 봉순 일 보러 온 철우 였다. 못 이기는 척 봉순을 따라 미순의 집 쪽으로 걸으며
철우는 봉순 에게 물었다.
"손에 든 거 뭐야?"
"응, 군고구마. 아버지가 군불 때면서 구워 주신 건데 미순 이하고 함께 먹으려구. . ."
"나 먹을 것도 있냐?"
"너도 먹을 려구? 생각해 볼게."
봉다리를 가슴에 품어 안으며 봉순 이가 장난스럽게 이야기한다.
깍쟁이 . . . 철우는 봉순 이가 좋았다.
뭐라 말 할 순 없지만 언제부터인지 봉순만 보면 가슴이 설레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자신을
느꼈다.

뭔가 봉순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긴 한데, 도데체 그것이 그리 쉽지가 않았던 철
우는 내색도 하지 못하고 늘 봉순이 앞에서 싱겁게 굴곤 했었다. 이제 중학생이 되어 각자
남학교와 여학교로 나뉘어 다니다 보면, 아마도 봉순이와 지금처럼 편하게 지낼 수는
없을 일이었다.

"철우야. 이제 중학교 다니면 자주 못 만나겠다."
"왜 자주 못 만나냐? 너희 학교 앞으로 내가 갈게"
"와서 빵 사줄라구?"
"그래, 빵 사줄라구."
철우가 은근슬쩍 봉순의 어깨를 자신의 어깨로 툭 치며 한마디 더 한다.
"너 중학교 가면 이 오라버니 보고싶어서 울지 말고 자주 연락해라."
"너나 나 보려고 공연히 우리 집이나 학교 앞에서 얼쩡거릴 생각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어?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지?"
농담처럼 진심을 봉순 에게 털어놓으며 철우는 봉순의 눈치를 살핀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철우를 보면서도, 당황한 듯 얼굴이 빨개지는 봉순을 보며 철우는
터질 듯한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막, 용기를 내서 "봉순아~" 하며 뭔가를 이야기하려는데
"야, 다 왔다. "하며 열려진 미순의 대문을 열며 봉순이 집안으로 들어선다.
"미순아~!"
"어, 들어 와."
소리 나는 안쪽으로 봉순과 철우가 들어서니 미순 이가 두 사람을 반갑게 맞는다.
"어? 어떻게 둘이 같이 왔네?"
"응, 오는 길에 만나서 같이 왔지. 야, 이거 군고구마."

아직 따듯한 군고구마를 미순 에게 내밀자, 두 사람을 따듯한 아랫목의 이불 속으로 앉으라
고 권하며 미순이 부엌으로 나갔다. 고구마 몇 알을 골라 찬장에 넣어 두고 나머지를 동치
미 와 함께 쟁반에 받쳐 가지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 온 미순은, 두 사람 앞에 고구마를 내
밀며 자신도 이불 속으로 발을 뻩고 앉는다.
"야, 고구마 참 맛있게 생겼다. 몇 알 남겨 뒀는데 괞챦지?"
"식구들 줄려구?"
"응, 우리 엄마하고 아버지가 고구마 좋아하시거든."
"더 많이 갖고 올 걸 그랬나?"
"아~ 니, 이것도 많다 애. 철우야 어서 먹어."
미순이 동치미 그릇과 함께 고구마를 건네주자 철우가 고구마 한 알을 들고 까기 시작했다.

노란 고구마 속 알이 나오자 모두들 오물거리며 맛있게 고구마를 먹기 시작했고 먹다 보니
까매진 손이며 입을 보며 서로 놀리며 웃다 봉순이 묻는다.
"저기, 너희들 미자 소식 들었어?"
"아니, 미자가 왜?"
"겨울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마산으로 내려갔데."
"마산엔 왜?"
"그 곳 공장에 취직해서 기숙사 생활을 한다나봐"
"학교는?"
"집에서 학교 보내 줄 형편이 되질 않아서 못 가게 됐으니까 공장에 취직을 했겠지."
"공부도 잘 하고 똑똑 했었는데 . . . "
"열심히 돈 벌어서 꼭 학교에 가겠다며 선생님을 붙잡고 엄청 울더래. 아마 졸업식 때도 안
올 거야"

"기집애 그래도 우리들은 만나고 갔어야지" 미순 이가 속 상해 한다.
"편지라도 한 장 보내주면 좋을 텐데. .
"얼마나 속 상했으면 아이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냥 내려갔겠니."
"제발 잘 지내야 할텐데"
"글세 말이야"
"그래도 너희 둘은 한 학교로 가게 돼서 다행이다. 나도 치마만 입었으면 함께 다닐 수도
있었는데. . ."
철우의 말에 봉순과 미순이 서로 마주보며 웃는다.

둘이 한 학교로 가게 된 건 정말 다행이었다. 늘 붙어 다닐 수 있었고 낯 설은 학교 생활에
친한 친구가 함께 다닌 다는 건, 그들에겐 정말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많은 추억으로 지켜온 육 년간의 순수한 우정 위에, 중학생이 됨으로써 좀 더 성숙한 모습
으로 커 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서로간에 지켜 볼 수 있는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이
기 때문이었다. 한 편으로 미자의 소식에 속상해 하면서도  둘이 한 학교에 가게 됐다는 사
실에 안도하면서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우리 다른 친구들하고도 중학교 가기 전에 한 번 뭉치자."
"그러자. 다들 중학교에 가면 만나기도 쉽지 않을 테니. ."

이제 그들은 이별 아닌 이별을 준비한다. 겨울의 쓸쓸한 바람이 그들의 가슴속에 불고,
작은 설레임과 희망의 바람도 함께 일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