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714

동무야


BY hl1lth 2001-03-30

"현섭 이 어딨니?"
"언니, 나 여기 있어."
7살 된 남동생 현섭 은 봉순에게 늘 언니라 불렀다. 암만 누나라고 가르쳐도 그 당시뿐, 조
금만 지나면 다시 언니라고 부른다. 소리나는 곳으로 가보니 등에는 막 돌이 지난 막내 현
식 이를 등에 업고 한켠에 네 살 박이 여동생 은미 를 앉혀 놓고는 막대기로 지렁이를 툭!
툭! 건드리며 놀고 있었다. "지렁이는 왜 못 살게 굴어!" 봉순 이는 현섭이 에게 눈을 부라
린다. "왜 그래~ 지렁이 잡아서 순철 이네 닭 갖다 줄 거란 말이야! " 그러고 보니 한쪽에
조그만 깡통에는 지렁이 몇 마리가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어, 그랬니?  미안해, 벌써 많이 잡았네" 미안하다는 말에 샐쭉했던 얼굴이 금방 풀어지며
언니, 현식이 좀 받아, 힘들어 죽겠어 " 하며 등에서 흘러 내려와 거의 땅바닥에 발이 닿을
듯한 현식 을 포대기에서 풀어놓는다. 봉순인 현식을 자신의 등에 업고 포대기로 싸서 묶은
후, 현식의 조그마한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뒤에서 바둥거리며 발바닥을 요리 조리 빼던 현
식이가 간지럽다는 둣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옆에 앉아 있던 은미 가 봉순 이 옆으로 다가와 자신도 현식 의 발바닥을 간지럽히며 히죽
웃는다. 날 때부터 머리 숯이 적었던 은미를 봉순이 엄마는 "배내 머리는 어려서 몇 번 깍
아 주어야 한다." 며 빡빡 밀어 놓아서 동그란 머리통이 귀엽게 드러나 있었다. 6살까지 동
생이 없어서 유난히 외로워했던 봉순이에게 현섭 과 현식, 그리고 은미는 친구 같은 존재였
다. 넷이서 현식 이의 재롱을 보며 놀고 있는데 "봉순 아~" 하고 철이 오빠가 부른다. 오빠
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나이가 많은 철이 오빤 스물 두 살로 홍대 앞에서 디제이를 하고 있
는데 집에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연예계 쪽은 절대 안 된다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탈랜트 시험에 응모하기도 했지만, 덧니가 너무 희안 하게 삼중으로 나 있어서 교
정 후 다시 오라며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오빤 아버지에게 교정해 줄 것을 졸랐지만 교정
비가 너무 엄청나서 아버진 오빠의 이를 고쳐주지 못했고 그 일로 집안은 여러 번 시끄러웠
었다. 하여간 오빤, 동네 처녀들이 한번씩은 몰래 흠모하며 수줍은 짝사랑을 키웠을 만큼 대
단한 멋쟁이였다. 큰 키에 수려한 외모, 재미있는 말솜씨, 최신 유행하는 옷차림은 늘 오빠
를 빛나게 했다.

"철이 왔냐? "
어느 틈에 봉순이 엄마가 부엌에서 나오며 철이 오빨 반갑게 맞는다. 철이 오빠가 온다는
말에 애타게 기다리시던 할아버지께서도 오빠가 인사를 올리러 미처 방으로 가기도 전에
마루로 나오시며 "왔구나, 왔어." 하고는 손자의 손을 부여잡으신다. "잘, 지내셨어요?"
"오냐, 지낼 만 하냐?"
"예,"
"고모부 는요?"
"학교에서 아직 안 왔다. 어서 들어가자."
모처럼 집에 온 철이 오빠는 고모부랑 할아버지 드리라며 담배 한 보루와 소주 댓 병을 사
왔고, 봉순 이와 동생들을 위해 과자와 사탕도 한 보따리 사 가지고 왔다. 모처럼 만에 보는
오빠가 반갑고, 사다준 과자도 반갑고 아이들은 신이 난다. 할아버지와 오빠가 그간의 일들
을 이야기하시는 동안, 꼬맹이 현식 이는 사탕 한 알을 입에 물고, 한 알은 손에 쥔 채 방안
을 어지러히 아장거리며 돌아다녔고, 은미는 라면 땅 한 봉투를 뜯어 열심히 오물거리며 먹
고 있었다. 현섭이 는 현섭이 대로 동그란 크림빵을 집어들고 달콤하고 하얀 크림부터 이빨
로 긁어가며  햩아 먹었다.

"봉순아, 만화책 재밌냐?" 봉순 이가 읽다 두고 나간 만화책을 집어들며 오빠가 묻는다.
"그럼, 오빠도 아직 만화책 좋아해? 옛날에 나 네 살 적에 오빠 따라서 만화방에 잘 다녔었
잖아." "너 그런 것도 생각 나냐?" "그럼, 그 만화방에 폭이 좁고 기다린 의자에 앉아서
오빠 책 다 볼 때까지 기다리던 생각도 나는걸" 철이 오빠가 멋 적은 웃음을 웃고 봉순 이
도 따라 웃는다. 그때, 방문이 드르륵 열리며 봉순 이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서신다.
"장인 어른, 다녀왔습니다. " "
오, 자네 왔나. 철이가 왔어."
"고모부 더 까맣게 타셨네요."
"나야 늘 그렇지 뭐, 디제인가 뭔가는 잘 하고 있구?"
"예."
"어떻게 집에 올 시간이 됐어?"
"예, 모처럼 휴가를 얻어서요. 친구들하고 대천 해수욕장에 가기로 했는데 하루 뒤로 미루고
잠깐 뵐 려구 왔지요."
"잘했어, 그래야지. 할아버지가 늘 네 걱정 이신데, 당연히 뵈러 와야지. 시간내기가 어렵겠
지만 자주 와"
"예, 근데 고모부, 아직도 약주 자주 드세요? "
"술 없이 재미없어서 어떻게 살라구 허,허"
그때 다시 방문이 열리며 봉순이 엄마가 상을 들고 들어오신다
"자, 상 차릴 동안 씻을 사람은 좀 씻구, 봉순 인 밥상에 수저 좀 놔라"
상기된 엄마의 모습에서 엄마가  오빠를 얼마나 기다리고 보고 싶어했는지 봉순이는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