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순 아~학교 가자!"
"알았~~어~~"
툇마루에 걸터 앉았던 봉순은 '엄마-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고는 바쁘게 대문을 열고 쪼르
라니 미순에게로 달려 나간다. 매일 아침마다 만나는 미순이지만 봉순은 늘 미순이 반갑고
살갑다. "미순아, 이것 먹어봐!" 조막만한 손에 쥐어진 한 웅큼의 원기소를 미순의 부채처럼
벌린 손바닥에 쏱아 주며 봉순인 쌩긋 웃었다.
"어제, 아빠가 사오신건데 맛있지?"
"응, 콩알 같이 생긴게 진~짜 맛있다"
원기소를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둘은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학교 가는 길은 늘 둘이 함께였다. 미순이가 늦게 도착하면 하는대로, 봉순이가 꼼지락거리
다 늦으면 늦는 대로, 지각을 할 망정 둘은 늘 함께 다녔다.
도시이면서도 시골 같은 마을, 산자락엔 능금이며, 복숭아, 앵두 등이 가득한 과수원이 즐비
하고, 계곡으론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내리는 정 깊은 곳. . . 아직 포장되지 않은 길은 흙먼
지가 뽀얗게 일어나고 비라도 올라치면 붉은 진흙탕물이, 철벅이는 운동화 뒤축에서 튀어
올라 늘 종아리를 지저분하게 만들곤 했다.
학교까지 걷자면 무거운 가방 때문에 팔이 축 늘어져 어깨가 빠질 것 같았지만, 가위, 바위,
보로 책가방 들어다 주기놀이를 하다보면,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지루한 줄 모르고
오가곤 했다.
이따금, 미순이가 책가방 둘을 끙끙거리며 들고가다 그만 팽 돌아져서는, "나, 안 해-!" 하며
들었던 봉순의 책가방을 길바닥에 내팽개치고 도망가버려 봉순이 잠깐 삐지긴해도, 늘 넉살
좋은 미순이가 달래고 넉넉한 봉순이가 양보하곤해 둘은 싸울 일도 없었다.
차렷! 경례!
반장의 구령소리에 맞춰 교실이 떠나갈 듯, "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합창을 하고 나이 지
긋하신 담임 선생님께서는 기다란 회초리로 교탁을 탁탁 치시며 " 오늘 안 온 사람 없지? "
느긋하게 아이들을 돌아보며 물으신다.
"오늘 칠성이는 배탈이 나서 못 온다던데요. 아침에 칠성이 어머니가 저희 집에 다녀가셨거
든요." 댐통이 생긴 머리를 긁적이며 창수가 대답한다."그래? 창수 말고 또 안온사람?" " 없
어요-" 아이들이 다시 큰 소리로 합창을 한다.
안경너머로 아이들을 둘러보시던 선생님께서 시험지를 넘겨보시며,
"에-어제 산수시험 본 거 채점이 끝났는데 미순이 하고 학표 가 100점을 맞았구나 자, 박수
-"
"와- 좋겠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면서도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어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조건 70점 이하는 다섯 대씩 때린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께서 70점
이하의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셨다. 약 스물 댓 명 정도의 이름이 불려지고 아이들
이 한쪽 켠에 일렬로 쭉 늘어섰는데 그 중에는 봉순이와 봉순이 짝꿍 철우도 끼어 있었다.
맨 앞에서부터 손바닥에 불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아이들의 가녀린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봉순 이에게 철우가 " 야! 손바닥에 침 발라서 비벼-" 하며 자기 손바
닥에 침을 뱉어 문지른다. 잔뜩 겁에 질려 주눅이 든 봉순이가 철우를 따라서 손바닥에 침
을 문지르며 섰는데, 앞으로 길게 늘어섰던 줄이 어느덧 엿가락 잘라먹듯 줄어들며 야속하
게도 봉순이 매맞을 차례가 되었다.
겁에 질린 봉순이 선생님 앞으로 손을 내밀자, 선생님께서는 회초리로 봉순의 손을 아래에
서 위로 높이 올리게 하시고는 "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며 매섭게 때리셨다. 두 손을 급
히 움켜쥐며 아파서 어쩔 줄 몰라하는 봉순이의 뒤에선, 손바닥을 꼭 움켜쥔 철우의 동그란
두 눈이 더욱 커지며 어깨를 움찔거린다.
"아이고 손바닥이야-" 봉순 다음으로 손바닥을 맞은 철우가 손바닥을 비벼대며 아퍼 죽겠다
는 시늉을 하더니만 다른 아이들의 맞는 모습을 보며 언제 맞은 적이 있었냐는 듯, 고소해
한다.
"야,- 너도 맞았으면서 남들 맞는 것보고 좋아해도 되는 거야?" 봉순 이가 눈을 흘기자 ,빨
갛게 부풀어 오른 손바닥을 호호 불며 넉살좋게 "재밌잖아" 한다. ,"꽤나 재미있겠다." 봉순
이가 삐죽거리며 빨개진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아이들이 모두 자리로 돌아가고,
교실 안이 다시 조용해 졌다.
선생님의 수업은 다시 시작되었고, 아이들이 진지한 모습으로 칠판에 적힌 공식들을 공책위
로 옮겨 적고 있었는데, 봉순이가 칠판에 산수공식을 적으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잠
깐 기지개를 켠다는 것이, 그만 실수하여 철우의 얼굴을 치고 말았다.
아프면서도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 묘한 표정을 짓는 철우의 얼굴 모습이 너무도 이상스
러워 그만 봉순의 웃음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푸웃!" 하는 소리가 조용한 교실에 커다랗게
터져 버리자, 담임 선생님께서는 "가뜩이나 구질하게 비오는 날 그러면 안돼요. 앞사람 머
리가 침 때문에, 쯧, 쯧 되겠어요?"
순식간에 긴장했던 교실 안은 웃음바다가 되고 봉순인 무안함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모
습을 본 미순이가 저쪽에서 혀를 날름 내밀며 놀린다.
"웃지마, 지지배야" 삐죽이 입을 내미는 봉순의 표정을 재밌어 하며 미순이가 "이따가 점심
시간에 내가 그리로 갈게."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작은 입을 쫑긋모아 소리나지 않는
입 모양으로 신호를 보내자 봉순이도 역시 "알았어~"하며 쌩긋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