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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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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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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BY 바다 2001-03-31

등 뒤로 느껴 지는 차가운 기운이 온 몸으로 번져 간다.

마음이 뒤엉킨 실타래 처럼 엉켜 버려, 대충 어딘가를 잡고는 싹둑
잘라 버려야 할 때... 가위를 잡고도 한참은 엉킨 실 뭉치를 이리
저리 살핀다. 어딘가에 있을 실마리를 찾기위해...
분명히 실마리는 있다!
단지, 약속 할 수 없는 시간과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할
뿐이지.

"들어 왔나..."
"...."
남편의 목소리가 조용히 그러나 무게가 실려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갔다.
"방에 들어 가서 눕지...왜 그러고 있어..."

그냥....그냥 남들처럼 소리 지르고 화를 내....손에 잡히는 걸 던지 기라도 하란 말이야. 그렇게 하면 더이상 내가 설 자리가 없어 지잖아. 당신이 말하는 사랑은 너무 차가워...난 당신과 있어도 온 몸이 시리고 춥다구...

" 장모님 한테 전화 왔었다. 날 밝으면 전화 드려 봐."
" 무슨 일 ....."
남편의 입에서 친정엄마의 호칭이 불려 지자 현실 속에 내가 보였다.

그렇게도 벗어 나고 싶은 엄마의 그늘 ...아무리 발버둥 치고 전력 질주를 해서 달려 가봐도 언제나 그 자리다.
엄마는 교묘하게 딸의 인생에 올가미를 쳐놨다.

대학교 들어 가기 전 까지 엄마는 딸의 가방을 들고 등하교를 했다.
친구를 사귀면 어느새 친구의 신상을 파악 해서는 끊어라,마라 했고 연필 하나도 딸이 사도록 허락 하지 않았다.
"내가 널 얼마나 정성 드려 키웠는데...가방까지 엄마 들고 학교에 다닌 딸이 있으면 나와 보라구해. 너가 이렇게 아빠 없이도 곱게 큰건 순전히 엄마의 희생 때문이야..."
엄마는 철저히 믿고 계셨다. 딸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지만,어쩌면 도전할 수 없는 나약한 딸에게 아빠에게 맺힌 한을 철저히 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내키지 않는 전화를 걸었다.

"엄마....나야...무슨 일 있어?"
"애....넌 살림하는 여자가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 다녀? 너가 몰라서
그러지 요즘 정신 나간 여편네들 유혹에 빠지게 만드는게 얼마나
많은데 그러고 다니냐? 거 전화 방이다 뭐다 하면서 ..."
"엄마...알아요. 알았으니 무슨 일 있냐구요..."
"니가 알기는 뭘 알아? 아무것도 모르는데....어휴...너처럼 순진해서 어쩔까 싶다..."
전화기를 집어 던지고픈 충동을 참느라 엄마의 말이 제대로 들려 오지 않았다.
"니 아빠 전화 오지 않았니?"
"가끔 오잖아요. 요즘은 뜸 했는데...왜요?"
"저쪽집 아들이 장가를 간다 잖어. 그때 그랬거든...이맘때에 한다고 했는데 영 소식이 없네...."
"하면 하는 거지 뭘 신경을 써요...."
"아니, 장남이 여기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지가 여기 와서 인사를 해야지....나한테는 안해도 형한테는 인사를 해야 하는게 당연 하지.."
"엄마, 언제 부터 저쪽집 한테 대우 받으며 살았다고 그런 말을 해요.몇십년을 남남처럼 살았잖아요."
"거야 니들이 결혼을 안 했을 땐 그래도 이젠 다 결혼 하고 그랬으니 확실히 해야지. 니 아빠가 몸은 거기가 있어도 장남이 여기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이리로 기어 오게 되 있어."
"엄마...좀 기달려 봐요. 뭐 연락이 오겠지..."
"알았어, 전화 오면 엄마한테 하라구 해. 그리고 살림이나 잘 해. 나가지 말구...철이 없어서...쯔..."

마음을 다스리느라 꼼짝도 할 수 가 없다. 조금만 움직여도 뼈조각들이 스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전화벨 소리에 기절 할 듯 경련이 일어 났다.
"여...보...세..요..."
"........"
맑은 시냇물 소리가 들려 왔다. 수화기에 귀를 가까이 댔다.
이렇게 고운 소리가 있었구나....잊고 살았던 ....
"잘 들었니?"
"네? 성준씨?"
"응....친구 만나러 절에 왔다가 수민이에게 선물 주고 싶어서.."
"너무 예쁘다....고마워....."
"좀 더 들어봐...."
"응..."

시냇물 소리를 선물로 주는 이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