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들이 바람에 몸을 의지해 어떻게든 다른 세상 으로 가보고자
힘든 여행을 시작 하고 있었다. 나무 ?을 한바퀴 돌고 나자 세찬
바람이 낙엽들을 휘몰아 길을 떠났다.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 졌다. 먹구름이 몰려와 지나칠 줄 모르고
잠시 뒤엔 비까지 뿌려 댔다.
이런 날은 특별히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김치 부침이 먹고
싶어 진다. 냉장고를 뒤져 김치와 냉동된 오징어를 꺼냈다.
"딩동" 벨소리가 울리면 심장이 빠르게 요동을 친다.
"누구세요? "
"나다..."
"엄마예요? 왠일이세요...."
"어유...문이나 빨리 열어라..팔 떨어 진다."
문을 열자 검은 봉투들이 힘겹게 늘어져 바닥에 퍼져 있다.
"엄마, 이게 다 뭔데요?" 봉투들을 안으로 옮기며 작은 한숨을
토해냈다.
"이건, 감자구, 저건 오이, 고추도 있다. 사과도 싸더라..."
"뭐하러 이런걸 사와요. 여기서도 싸게 사먹는데..."
"애는 누군 팔이 떨어져라 갖고 왔더니...알았다...이제 니가
다 사먹어..."
엄마는 가끔씩 집에 올때 마다 친정 동네에서 파는 싼 과일이나
야채를 사오셔서는 생색 아닌 생색을 내시며 날 힘들게 했다.
설령 야채나 과일을 싸게 사셨다고 해도 차비값만 더해도 결코
당신 생각처럼 싼게 아닌데...
"엄마, 김치전 할건데 기다리세요..."
"에구구구...어디 해봐라. 먹어 보자."
그러니..잘했네. 엄마가 도와 줄까? 이런 말을 기대하는게 무리
겠지...
"좀 질지 싶다. 밀가루를 더 넣지 그러냐..."
"아니, 조금만 해서 이제 없어...."
무안한 마음에 더 부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엄마는 늘 당신의
생각을 직선적으로 표현 했다. 너무나 확신에 차서 누구도 감히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어쩌면 내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엄마의 심경 변화에 따라 적절히 동요하며, 혹시나 뭔가로
화가 나서 화풀이를 내게 해도 적당히 반응만 보이고 반항을 해서
는 안됐다.
자식을 버렸었다는 죄책감은 엄마에게는 없었다.
친엄마에게 돌아와 한동안을 "아줌마"라 부르며 겁먹고 두려움에
가득차 그저 이 아줌마에게 잘 보이고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생각만이 나를 지배 했다.
난 너무나 착한 딸이었다. 장사를 하는 엄마를 도와 학교가 끝나
면 일을 도왔고 집에서도 눈치를 봐서 엄마의 기분을 맞추려 애를
썼다. 그런 나를 보고 주위에 어른들은 칭찬이 대단 하셨다.
그런 칭찬이 더해 지면 더해 질 수록 난 강박적으로 엄마의 기분을
살피고 맞춰야 했다.
아마도 그분들은 내가 계모 밑에서 컸었던 사실은 모르 셨을거다.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힘들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려
가는 참한 어머니로 보여 지길 원하셨고, 남편은 외국에서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모범적인 가장으로 설정 하셨다.
엄마는 꿈을 꾸듯 엄마의 소망을 현실 안으로 끌어다 놓고.
자식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어 의식 세계를 혼란하게 만들
어 버리곤 혼자만이 즐기듯 그렇게 사셨다.
아들들은 교묘하게 엄마와의 대화에서 빠져 나갔고, 집 보단 밖에
서 시간을 많이 보내며 엄마와 접촉을 최소화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엄마는 딸인 나에게 집착을 했고, 그 딸은 마음에
병이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