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이 비로 더위가 좀 가실런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작은 아이를 업고 밖으로 나갔다. 경비실 앞으로 은지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옷이 젖는건 신경쓰지 않고 아이들은 우산을 돌리며 장난을 쳤다.
" 수림아,지환아, 어서들 유치원 가야지. 장난 치지 말구 천천히 걸어가라. 뛰다가 넘어지면 다치는거 알지? " 은지가 친구들이 뛰어가는걸 따라가려다 몇번 넘어져서 무릎이 엉망 이었다.
"엄마,빨리 들어가." 유치원을 갈때면 이렇게 엄마를 빨리 들어가라며 설쳐대는 아니가 이상하게도 집에는 혼자 오기 싫어 한다.
"그래, 잘 놀고 와. 엄마 들어 갈께. 빠이 빠이"
집으로 오니 작은애가 등 위에서 잠이 들었다. 아이를 내려 놓고 서둘서 윗층으로 올라 갔다. 지금부터 자면 한시간은 깨지 않고 자니까 올라가 차를 마시고 와도 좋을거 같다.
"언니, 들어 갈께."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 갔다.
"왔어? 잠시만 나 청소기만 돌리구. 커피 뽑고 있으니까 니가 갔다가 마셔" 언제 다 치웠는지 정리가 말끔이 되어 있다. 부지런한건지
아님 내가 게으른건지... 우리집과는 늘 정 반대다.
향기 좋은 헤이즐럿 커피를 잔에 가득 담아선 경치가 좋은 베란다 쪽으로 의자를 들고가 앉았다.
"언니, 비가 오니까 참 좋다. 왜그런지 들 뜨기도 하고 좀 이상하네"
언니는 청소기 소음 때문에 잘 들리지가 않는지 연신 딴 소리만 했다
"그래...이 방만 돌리면 된다. 기달려. 음악좀 틀어봐.분위기 좋은걸루다." 언니는 씨디를 많이 모았다. 이런 음악들을 다 듣고 사는건가
여유 있어 보이고 소녀같아 귀여워 보였다.
음악까지 더해진 지금의 분위기가 사랑스럽다. 평온하다.!
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담배가 피고 싶다. 집으로 내려 갔다 오기는 분위기까 깨져서 싫고, 주위를 돌아 보니 언니 남편이 피는 수입 담배가 보였다. 한개피를 꺼내 물고 베란다로 나가려 문을 여는데 언니가 청소기를 들고 낑낑 거리며 나왔다.
"뭐하니? 왜? 더워서 문 열게?" 에어콘이 적당히 시원하게 만들어 놓은 거실에 더운 공기가 들어 오는게 미안했다.
"그게 아니구. 담배 한대만 필게. 수림아빠거 몰래 슬쩍 했는데.."
"어머, 너 담배 피니? 몰랐다.도대체 언제 부터 폈니?" 이상한 여자로 볼까봐 걱정 스러웠는데 오히려 언니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옆으로 다가 왔다.
"야,뭘 나가서 피우냐. 여기서 피어도 된다. 우리 수림 아빠 늘 피니까 냄새 나도 상관 없어. " 고마웠다. 언니의 배려가..
한모금 한모금 깊이 빨아 들이고 연기를 토해 냈다. 약간의 현기증과 나름함이 밀려 든다.
"너,정말 이쁘게 핀다.아니 멋있게 핀다."
"언니, 무슨 말이야...놀리는거야?"
"아니구, 내가 대학 다닐때 담배를 배울려구 친구들하고 몇번 했거든.카페에서 어떤 여자가 담배를 피는데 긴손가락 하고 하얀 밤대가 너무나 잘 어울려서 반했잖아.그래서 나도 해볼려구 했지. 근데...내참 친구들이 나더러 손가락이 짧고 굵어서 아줌마가 피는거처럼 멋이 없데는거야. 그래서 포기 했잖아."
"하하하하하. 언니 너무 웃기다. 정말 웃겼어." 언니의 순지한 이야기가 날 유쾌하게 만들었다.
"너...다시 봤다. 증말 멋있다. 한대만 더 해라." 달려가 담배를 들고와 내민다.
"언니, 왜그래...뭐가 좋다구.. "
"그럼,나라도 해볼란다. 봐봐라.멋있나." 능숙하게 담배를 물어 들고
불을 당겨서 한모금 빨아 들다 연기를 한번에 토해 냈다.
"켁켁...흑... 목에 걸렸어.매워...물"
"하하하. 못말려. 거봐.하지마. 그렇게 하는거 몸에 좋지도 않아. 뻐끔 담배는 보기도 좋지 않구."
"뭐? 뻐끔 담배? 그게 뭐야?"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눈이 빨갛게 충혈되서 나를 봤다.
"응..그냥 멋으로 연기는 삼키지 못하고 입에 물고 있다 뱉는거."
"히히히히...야.생각해 보니 그럼 내 친구 하나가 그건가 부다. 고게 맨날 그랬거든...." 한참을 그러다 보니 한시간이 금방 지났다.
"언니, 나 가야 겠다. 작은애 일어 났겠어." 다급히 일어 났다.
"가서 애도 데리구 와.점심이나 수제비 끓여서 먹자. 반죽 냉장고에 있어. 국물만 끓이면 되니까..빨리"
"에이, 미안하게. 맨날 얻어 먹기만 하는데." 올때마다 그렇게 챙기려는 언니가 미안해서 좀처럼 내가 먼저 전화를 하지 않으려 했다.
"다녀 올께. 뭐 필요한거 없어?"
"어. 파나 있음 갖고 와라."
"그래.."
아이는 다행히 자고 있었다. 젖병에 분유를 넣어 챙기고는 냉장고에서 파를 꺼내 랩으로 싸서 가방에 담았다.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서 윗층으로 올라 갔다.
"언니, 파 여기 있어"
"빨리도 왔네."
점심을 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꺼내 놓은 수박 한쪽을 집어 들었다.
"수제비 너무 잘한다.언니 보기에는 살림 못할거 같은데..참 잘한말야" 집에서 수제비를 끓일거처럼 보이지 않았다. 짜장면을 시켜 먹으면 먹었지...
"그러니? 헤헤.기분 좋네. 내가 얼마나 음식을 못하는데. 너가 나보다 더 못하나 부다. 이게 맛있다는거 보니.."
"그런가? 어...나 음식 무지 못해. 취미도 없고."
"뭐, 음식좀 못하면 어때.우린 다른거 잘하잖어."
"맞어, 우리 그건 잘해." 언니와 진한 농담까지 해가며 기분을 냈다.
낮에 너무나 재밌게 놀아서 그런지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콧노래도 불러가며 저녁을 준비했다.
"띠리리리,띠리리리"
"여보세요."
"아빠다, 낮에 어디 갔었니?
"아..윗집에요"
"애들은.."
"자요"
"그래, 어서 하던 일 해라"
친정 아빠와의 대화는 이런식으로 간단했다. 결코 자랑스럽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은 아빠다.내가 결혼을 하고나서야 전화통화를 하게되서 옆집에 아저씨와 대화하는것 보다 더 어렵고 불편 했다.
엄마와 결혼을 하고 얼마 안되서 바람을 피고 깜쪽 같이 자식 둘을 밖에서 봤다. 엄마는 강제 이혼을 당하고 정신병원에 입원 할정도로 충격이커서 잠시동안 우리 삼남매를 저쪽 집에 보내셨다. 워낙에 어린 나이에 가서 저쪽 여자를 엄마로 알고 살았다. 나중에 친엄마에게 돌아 오고 나서야 우리가 왜 그렇게 방치되고,집안 일을 해야 했는지 알게 되었다.
모든게 상처 투성이었다. 나의 생각이나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이 버려졌다,다시 돌아 왔다는게 혼란 스럽고 불쾌했다.
엄마는 자식들을 다시 데리고 와서는 너무나 헌신적인 모습으로 키우려 했다. 온갖 아픔을 다 참아 내며 자식들만을 위해 희생하며 사시는 것 처럼 ... 이미 자식들에 마음에는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조금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며 억지를 부리셨다.
"난,니 아빠만 지금까지 바라보며 살았다. 니 아빠 그렇게 하고 저기 가서 살아도 늙으면 돌아 올꺼야. 하느님이 내 맘 다 알꺼야"
이런 말을 듣게 되면 피가 거꾸로 흐르는거 처럼 감정을 다스리기 힘들었다. 자식을 포로로 잡고 아빠가 항복하기만을 바라는...
아빠의 전화를 받고 나니 하루 종일 좋았던 기분이 엉망이 되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 아팠던 어린 시절만 눈 앞에 어른 거렸다. 칼을 갖고 뇌 한쪽을 도려 내서라도 잊고 싶다!
컴퓨터 앞에 가서 통신을 하기위해 부팅을 했다. 머리가 복잡할 땐 일방 적으로 떠들어 댈 수 있는 채팅이 좋았다.
여기 저기 기웃 거렸다.
<< 쪽지가 도착 했습니다.>>
안녕? 저 기억 해요? 얼마전에 독서방에서 만났는데...
아이디를 보니 본듯 했다.
"모르겠어요. 기억이 잘 안나요. "
일대일이 걸려 왔다.
시인> 기억 못해도 할 수 없어요.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가을> 죄송해요, 별로 대화가 하고 싶지 않아요.
시인> 글을 좋아 한댔죠?
가을> 아..기억 나네요. 글을 쓰시고 있다는..맞죠?
시인> 거봐요.기억 날 줄 알았어요. 날 쉽게 잊지 않을거라
생각 했어요.
가을> 무슨 말인지.. 뭘 잘못 생각하시네요.
시인> 후후..너무 그러지 마요. 장난 한거니까. 좋은 시 한편
보내 줄께요. 그저 글을 사랑 하시는 분이라 생각 되서
이러는거니 오해 마시구.
가을> 네,죄송해요.제가 기분이 꿀꿀해서...
시인> 그래요. 그럼 좋은 감상 하시구 나중에 느낌이나 말해 줘요.
가을> 그럴께요. 안녕..
시인> 안녕히...먼저 나가요.
가을> 네.
자기 주장이 강하고 거침 없이 말하는게 인상적이 었는데,이렇게 다시 만나는 구나...거침이 없다는게 무조건 부러웠던 사람이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