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이라고 기억한다. 그렇다고 모태신앙도 아닌 나는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나이부터 누구의 손에 이끌려 갔는지도 알수없지만 어쨌든,, 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마 동네 아이들을 따라 재미로 다녔을것이다. 어린나이에 신앙의 의미를 알고서 다녔을리는 없었을테고,, "교회에 가면 맛있는 사탕도 주고 과자도 준다더라" 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을테고, 마침 동네 아이들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보고 뭐하나 얻을먹을 욕심으로... 따라 나섰던 것이리라.
그렇게 시작한 우리집의 첫번째 기독교 신앙인은 점차 신앙을 생활처럼 받아들여갔으며, 어느새 가족 모두가 기독교인이 되도록 이끈 어쩌면 전도자의 역활을 한셈이되었다.
결코 의도한 바 없었던 일이였지만,,
한때는 신앙에 극도로 빠져 온갖 교회 모임이며 행사등으로 학교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교회에서 지내기도 했었다.
무슨 집회라도 있으면,, 어디든 쫓아다녔으며,, 언제가부터는 꼭 신학인이 되어 어떠한 하나님의 사역이라도 해 내리라고 마음 먹기도 했었던 .....그러던 내가 그런 나의 신앙을 딱 한번 거부한적이 있었다.
그것도 순전히 나의 자유의 의지로!!
" 그" ...
바로 그 때문이였다.
그와 만나면서,, 난 그의 어머님이 지극히 열렬한 아니 어쩌면 맹목적으로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는 것이라고는 오직 "부처" 뿐인,...
홀어머니 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것도 그의 큰아들을 끔찍히도 사랑하시고 의지하는,, 보통 우리의 홀어머니들이 다 그러듯이...
그런 그의 홀어머니의 큰아들.. 그게 그였던것다!
그를 안지 얼마 안되었을때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지는 않았었다, 신앙은 얼마나 많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난 그와 그저 알고 지내는 사람 정도의 친밀도만을 기대하고 있었던 때고,,
그를 알기전에도, 그를 알고나서도 그 후로 많은 남자들을 알고 지냈지만,, 난 한번도 그 남자들에게 어떤 남다른 관계를 원했던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친구였으면 그는 친구일뿐이였으며, 어떤 경로을 통해 알게되었든 그가 선배였으면,, 그는 끝까지 내겐 선배로밖엔 그 어떤 의미도 두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는 그런 남자들과는 남다른 느낌을 내게 주었긴 했지만,,
별로 기대하진 않았었다. 가끔 만나 안부나 전하고 맛있는 거나 얻어먹고 , 아는 오빠나 친구 정도로 곁에 둘정도면 나는 늘 만족해했었으닌까,,
그러나 그는 전혀 예측할수 없는 사람이였다.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선 집앞이라며 잠깐만 나와주라고 하거나, 내가 일하는 카페 앞을 지나가고 있으니 잠시 얼굴만 내 비쳐주라든지, 어 느땐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며, 5분만 볼수 있게 해달라는 식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늘 급작스럽게 나타나서는 늘 가슴 설레게 하는 사람이였다.
그랬다.
그는.. 늘.. 그렇게 그런 그를 만나야했던 나는 바빠져야했다.
집에 퍼질러 있었다면 급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 짧은 시간안에 흐트러져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단장하고선,, 그 앞에서 늘 향기나는 여자가 되어야 했었으니..
그는 크진 않지만 견실하게 다져온 그의 생활을 보여주듯 이제 갓 20대 중반이 넘어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벌서 자신의 이름으로 버젓히 "카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 그 자신을 그는 자랑스러워했고,늘 자신감에 넘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는 젊었고, 운동과 육체적 노동으로 다져진 몸은 다부졌으며, 산을 타며 익힌 그의 순발력은 남달랐다.
거기다 그는 정말 멋진 미소를 가지고 있었으며,늘 친절이 배여있었다.
그를 슬쩍 본 내 친구는 거의 기절할 뻔했었지..
"야~ 너 봉잡았다! 정말 잘 생겼잖아!,널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던걸,,, 좋겠다,넌!"
그런 말들이 날 어쩌면 우쭐하게 했었을까,,
그와 두번째 만남을 약속하고,, 우리가 다시 만났을때도 이미 늦은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