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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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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BY 이슬비 2001-03-14

휴가도 반납한채 일에 매달렸던 팀원들..

그들과 함께 서울의 숨막히는 듯한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젠 가을시즌 준비도 끝이 났습니다.여러분의 노고에..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뇨..팀장님이 더 수고 하셨지요.."

"우리가,,해낸 결과를 보니,,흐뭇하걸요.."

"그런 의미에서..오늘 우리팀 회식을 할까 하는데..어때요 시간?"

그들이 힘들었던 것만큼..회사의 보상은 따른다.

하지만,,나름대로 내가 그들에게 표현할 최소한의 성의는 있어야 한다.



"주희..? 오늘 비너스 모임인데..너 결혼하고는 얼굴도 안비친다고 같이 나오라더라"

"음..넌?"

"나야,,뭐,,오늘 가영이가 바쁘다니..갈까 말까,,생각중인데.."

"그럼..잠시만.."

인터폰으로 그를 호출했다. 그의 대답은..짧았다.

"응..민기씨는 일이 좀 있다는데.."

"그럼..너랑 나랑 둘이 가지 뭐.."




오늘 비너스의 모임에는 기석이 없었다.

기석의 회사에 자금 사정이 안좋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래서 안나온 건가,,?

그를 보고 싶지 않았는데..다행이군..

태우는 우리는 짝잃은 외기러기 한쌍이라며..농담을 하곤 했다.

민기씨가 이런 모음같은걸 좋아하지 않는건 알고 있으니..

나라도 그를 위해..

약간의 거짓된 웃음으로 나를 감추며 어울려야 한다.

"네..민기씨! 그래요..알았어요.."

"형이야?"

"응..가영씨집으로 간다고..."

"왜..?"

"가영씨가 술이 좀 됐나봐,,그래서 데려다 준다고,,그러네.."

왜..날 찾지 않은 거지..라는 태우..

왜..그를 찾은거냐구..라는 주희..

우울한 그림자가 주희와 태우의 얼굴에 드리워지고 있다.




"하하..삼촌..오랜만이야..정말.."

"녀석..집에 놀러 오고 하지.."

"내가 바쁘잔아..그리고 신혼집에 어떻게 불쑥 찾아가고 그래?"

"오늘 기분 좋나 보다,,너.."

"응..일두 잘되구..신나잔아..살맛나는 세상이잔아,,좋은 세상..."

그렇게 주절거리던 녀석이 잠이 들었다.

주희가 비너스 모임에 가지 않길 바랬지만,,그녀는 갔다.

정말 오랜만에..가영이에게 전화를 했더니..

"하하,,삼촌..어디야? 난 회식자리도 끝나가는데..보고싶다,,삼촌.."이라고 했다.

녀석이 맛있는 잠을 즐기게 해주려고 도착해서 시간이 지났지만,,조금더 기다려 주고 싶었다.

"가영아,,이제 집에 다 왔어..일어나,,"

"음..그래..삼촌..커피한잔..하고 갈래..?"

예전에 내가 쓰던 방은 그녀의 작업실로 바뀌어져 있었다.

"좀 어지럽지..? 자,,커피 마셔.."

이렇게 함께 마주앉아 커피를 마신지가,,아주 오래전 일인것처럼..어색하기만 하다.

"일은..잘 되지?"

"응.."

"다음주쯤에..놀러 와라.."

"응.."

침묵이,,무거워지고 있다.

"주희언니,,숙모가 잘해주지?"

"응..그렇지 뭐..요즘은 일이 좀 바빠서..태우랑은..어떠니?"

"훗..그냥 그래..잘해줘..오늘 비너스모임엔..왜 안갔어?"

"응..그냥,,일도 있고..난 그런곳 별로야..알잔아.."

"하긴 삼촌은,,여기저기 맞춰주는 스타일이 아니니까,,그런곳은 재미없겠지.."




의미없이 허공을 가르는 얘기들..

모임에 함께 가자고 했을때 팀원들과 회식약속이 있다고 거절하더니..

술을 많이 마신건가,,?

"가영이니? 그래..얘기 들었는데..걱정하잔아..술도 못마시면서.."

"미안해요..어쩔수 없이..기분이 좋아서.."

"나,,집으로 갈까..하는데..잠시 들러도 돼니?"

"그래요..그럼 삼촌 여기 있으니...숙모랑 같이 오면 돼겠네요.."




그가 숙모와 함께 집으로 들어설때까지..그냥 이런저런 얘기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숙모는 들어서자 머리가 아프다며..집으로 가길 바랬고 삼촌은 그런 그녀와 함게 갔다.

다음주쯤에 한번 집으로 초대한다는 말을 남기고..

그들이 나가자..태우오빠는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이러고 있으니 우리 집들이하고 손님 보내는 신혼 부부 같지 않니?"

"훗..아뇨..아닌데요..커피 한잔 드실래요?"

"좋지..근데..가영아..왜..형을 불렀어..날 부르지.."

"전화를 했더라고요.삼촌이..그래서..오빠는 모임때문에 나오기 힘들까봐,,"

"그랬니..? 아닌데..커피향,,참 좋다.."

"오빠,,저리가요..이러다 다쳐요.."

뒤에서 나를 감싸 안은 그의 온기가 전해져 온다.

"커피향보다는,,사실 난 네 향기가 더 좋아.."

그가 입김이 내 귀를 내 목을 간지럽힌다.

그는 나를 돌려 세워 자신의 눈에 빛나는 소망을..보여주려하고 있다.

그저 조용히 미소 지을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보는 그도..조용히 안아주기만 했다.




"민기씨..다음 부터는 같이 가..모임에.."

"난,,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민기씨.. 아냐.."

"두통은..어떠니..? 요즘 자주 머리 아프다고 했잔니.."

"지금은 괜찮아,,일 때문에 그런가,,봐.."




"네..? 임신요?"

"네..축하드려요..다음엔 산부인과로 가서 진료 받으세요."

"난,,그저 두통이 좀 있길래.."

"증상은 조금씩 다를수 있어요.감기인가하고 넘어가는 분들도 있는걸요.."

그와의 허니문 베이비가 탄생하게 된다.

그를 닮은 아이...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다..

"민기씨..나야.."

그녀의 목소리가 들떠 있다..

"응..어디야?"

"나,,임신이래..두통이 아니고.."

"그래..? 정말,,?"

"응..나..지금 너무 가슴 벅찬데..자긴 어때?"

"고맙지,,그냥,,너한테..병원이야? 어디니? 내가 데리러 갈께"

임신 소식으로 즐거워 보이는 삼촌과 숙모..

하지만,,그 즐거움은..오래 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