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은 모처럼 깊은 잠을 잤다.
새벽이 오는 뿌연 빛이 도현의 잠을 깨웠다.
상쾌했다.
출근준비를 하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이사한 곳이 유치원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곳이라 일찍 나서야 정상출근이 가능했다.
버스를 타고 낯선 곳의 아침을 두리번 거리며 익혔다.
낯선 사람들이 여럿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하는 버스를 급하게 올라 타는 남색 교복을 입은 남학생... 조잘대며 걸어오는 여학생들... 아이를 맡기는 맞벌이 주부... 할머니랑 엄마를 마중하는 아이...
아파트 단지안에는 겨울이긴 하지만 벌써부터 시끌벅쩍이다.
도현은 자신의 집이 걱정되었다.
수업내내 연제의 관심어린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서선생님, 어디 편찮으세요? 하루 더 쉬지 그러셨어요."
도현은 가벼운 미소로 괜찮다고 했다.
퇴근길에 긴 스카프를 하고 입을 막고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연제의 차가 와서 멎었다.
"서선생님, 타요. 바래다 드릴께요."
여전히 경쾌한 연제의 목소리가 이어 들렸다. 도현은 연제의 차를 타고 아파트앞에 내렸다.
도현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아파트를 올려다 보았다.
이사한지 하루가 지났지만, 어딘지 낯설어 보였다.
승강기를 타고 버튼을 눌렀다.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을 만큼 싫었는데...
우리 가족들의 체취가 묻어있는 곳인데...
문을 열었다.
휑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와는 아무런 달라진 게 없는...
도현의 두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초인종이 울렸다. 도현은 얼른 인터폰속의 얼굴을 확인했다. 연제였다.
연이어 초인종이 울었다. 도현은 쇼파 구석으로 쪼그리고 앉았다. 문을 열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초인종으로 안된다고 생각했던지 문을 두드리며 서선생님... 하는 연제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한참이 흘렀다. 연제가 갔는지 밖은 잠잠해졌다.
어둠속에 적막이 흘렀다. 쇼파에서 일어나자 요란하게 가죽소리가 났다. 불을 켤 엄두도 내지 못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집으로 오는 버스 속에서 내내 도현은 무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무의미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버스속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내리더니 모두들 자리를 차지하고 도현과 한 학생만이 서 있었다.
버스에서 내렸다. 낙엽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들만 있는 길을 힘없이 걸어갔다.
뒤에서 차소리가 났다.
도현씨...
영한이었다. 도현은 조금은 반가운 표정으로 영한을 바라보았다. 이딘지 모를 수렁에 자꾸만 빨려 들어 갈 것만 같았던 자신을 영한의 경적소리가 깨워주어서 영한이 고마왔다.
영한은 아무런 말도 없이 앉아있는 도현을 위해 슈퍼에서 부식을 사가지고 음식을 만들고, 제후를 부르고... 부산을 떨었다. 도현은 영한의 밝은 분위기에 서서히 동화되어 갔다.
도현과 영한은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식탁에 음식을 차리고 있었다. 제후가 밝은 표정으로 현관으로 들어섰다. 영한과 도현이 앞치마를 입고 식사를 차리는 모습을 보고 괜히 질투가 났다. 하지만, 밝은 도현의 표정에서 제후는 안심했다. 오늘도 기분이 슬퍼보이면 어쩌나... 얼마나 걱정했는데...
"어우. 두사람 보기 좋은데요."
제후가 함박웃음으로 서있었다. 도현도 영한과 제후의 배려가 고마왔다.
제후는 식사 초대 선물로 꽃다발을 선물했다.
집뜰이야...
집뜰이면 선물을 사와야지...
옥신각신 싸우며 도현의 기분을 맞추려 애쓰는 두사람 덕에 도현은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며칠이 지났다.
휴대폰이 울렸다.
민서였다.
"도현아, 나 민서.... 베란다에 불이 없네? 어디니?"
"응..... 왔구나...."
"어디니? 낚시점에도 없구... 내가 그리로 갈께."
"응..."
도현의 눈에 바알갛게 눈물이 고였다. 서러움이 몰려와서 목이 메였다.
"도현아..."
"응......."
도현이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추스리지 못했다.
"응.... 여기가.... 어디냐면..... "
민서는 흐느끼는 도현의 목소리에 깜짝놀랐다.
도현이 말한는 곳으로 얼른 차를 몰았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