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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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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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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BY bluebird23 2000-12-30

며칠동안 도현은 유치원에 출근하는 것 외엔 아무런 것도 하지 않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영한과 제후가 걱정이 되어서 가끔 전화를 해서 확인을 했다.
법원에서 고지한 날짜가 다가왔다. 도현은 자신의 집안에 들이닥쳐 차압딱지를 부쳐대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며 두손으로 얼굴을 싸안았다. 두 손사이로 소리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하나...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고, 밤새 깜깜한 거실에서 쇼파에 멍하니 앉아 하루를 보냈다.
유치원에 전화를 걸었다. 연제가 받았다. 도현은 마른 목을 애써 감추며
"이선생님, 저 서도현인데요... 오늘 몸이 안좋아서 쉬려고 하는데... "
수화기 너머로 연제의 경쾌하고 빠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도 안좋으신것 같네요. 그럼 편히 쉬세요..."
전화가 끊어졌다. 도현은 쇼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초인종 소리가 쉴새없이 울리는 바람에 도현은 잠이 깨었다. 영한과 제후였다.
문을 열어주자, 영한과 제후가 상기된 얼굴로 집안에 들어섰다. 쇼파며 장농, 모든 물건에 차압딱지가 붙어져 있고, 그 속에 도현이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봐요. 이런 일이 있었으면, 저한테 연락을 하셨어야죠. 사람이 어쩜 이렇게도 무심할 수가 있어요... 빨리 짐을 싸요..."
도현이 짐을 싸서 어쩌자는 투로 영한을 쳐다보았다.
"여기서 살순 없잖아요. 이렇게 차압딱지가 붙어있는 곳에서..."
제후는 소리없이 영한을 도와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도현은 힘이 빠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영한과 제후의 도움으로 몇 안되는 짐을 꾸려 영한의 차에 실었다.
영한은 애처로운 도현을 보며 눈물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이제 말라버려 눈물조차 나지 않는 도현은 인형처럼 영한과 제후를 따라 나섰다.
제후는 운전을 하며 도현의 감정을 잃어버린 얼굴을 이따금 쳐다보았다.
영한이 독립해서 살던 원룸을 내놓았는데, 다행히 아직 안팔려서 그대로 도현에게 빌려주기로 했다. 도현은 제후와 영한과 짐을 풀었다. 대충 짐을 다 풀자, 제후는 슈퍼로 먹거리를 사러 갔다. 말없이 짐을 챙기던 도현이 갑자기 눈물을 펑펑 흘리며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어떡해... 나 이제 어떡해...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나 어떡해...
도현의 울음에 참고 있던 영한도 같이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모두 나 때문이에요. 그 사고 날때 제가 조금만 주의 했더라면, 아저씨가 그런 사고도 나지 않았을 텐데...
제가 다쳤어야 했는데...
아니예요....
괜찮아요...
그리고 고마와요. 큰아버지가 수일내로 돈을 부쳐주기로 했으니깐, 돈은 갚아드릴께요...
두사람은 한동안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 펑펑울며 대화를 했다. 영한은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고 있는 도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도현은 영한의 어깨에 기대어 펑펑울었다.
제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영한과 도현의 그런 모습에 괜한 질투가 났다. 갑자기 무표정이 되어버린 제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물을 가스렌지에 올리고, 사가지고 온 컵라면에 붓고...김치와 김밥을 접시에 담고...
준비가 다되자, 조금은 진정되서 눈물을 닦고 있는 두사람에게 퉁명스럽게 라면을 먹자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슬픈인연은 여러분들의 지친 마음을 편히 쉬어가는 가벼운 사랑이야기 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