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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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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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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ajersee 2000-12-19


"주문하실 래요?" 하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들다말고 깜짝
놀랐다..." 아니 영주"... 하마터면 이 말이 목구멍을 넘어 올뻔 했다...
오래 전 헤어진 그녀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에 주문을 받으려고
서있는 여인을 앞에 두고 나의 기억은 십 여년 전으로 달려 내려갔다..

"저.. 혹시 저랑 영화 구경하지 않으실래요? " 이런 나의 제의에
그녀는 난처한 듯 머뭇거리며 " 그러면 안 돼는데..." 하는 사이
나는 남자의 단호함이라도 보이듯 약속 장소와 시간을 고지하고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녀 앞을 떠났다...

그리하여 우리의 만남은 시작이 되었다...
처음 만난 그날 그녀의 주저주저 하는 모습에 의례 여인들이 보이는
부끄러움과 약간의 내숭이려니 하고 생각을 했다... 여자들과의 데이트
경험이 별로 없던 나는 친구놈 들의 장난기 어린 여자들 이야기에서
어느 정도 학습을 했었고, 또 나만의 자그마한 자신감이 뒷받침되어
그렇게 용기를 내어 데이트를 신청했던 것이다...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도 나는 그 영화의 줄거리를 기억하지
못했다. 밖은 어둑어둑 해졌고, 둘은 근처의 찻집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나에게 주저하며 꺼내는 말이

" 저 남자친구 있어요..."
"...아아.. 그러세요?....음... 그런데 왜 애초에 말씀을 안 하셨나요?.."
" 지금 여기에 없어요..." "?........." " 군대에 있죠..."
"............ 그랬었군요......."

무슨 말을 더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사실 군대에 있을 때 또 쫄병 녀석이 애인이 고무신을 바꾸어 신었다고
한탄을 하며 엉엉우는 녀석의 모습을 볼 때 인간적인 연민의 정이 생겨
그 녀석의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하며 상대 남자를 같이 저주를 한 나였다...
팔팔 뛰며 이를 부드득가는 상병 녀석도 보았고, 무기력하게 선고를
받아들여야하는 군바리의 비애를 많이 목격한 나로서는 숨이 턱 막히는
말이었다...

나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아..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몇 달 간의 짝사랑 끝에 용기를 냈고, 또 성공한 줄 알았던 데이트 였는 데...
이 데이트를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가슴 졸였던가...

용기를 내었다... 목소리가 약간 떨려서 나왔다...
"..... 저는 요... 영주씨를 좋아합니다.... ... 아마 눈치 채셨을지
모르겠지만요... 오래전 부터 생각해 왔었습니다..."
"........... ........"
".... 남자 친구라 하셨는데... 결혼할 사인가요?..."
"......... 그건 아니지만요.... 저는 마음에 걸려서 못 만나겠어요..."
"... 친구면 저도 친구로 만나면 되지 않습니까?....애인을 해달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 그래도 저는 죄책감이 들어서 안 되겠네요..."
"....................."

어색한 시간이 꾀나 오래 흘렀다... 데이트에 나온 그녀를 보고 좋아한
것이 바로 몇 시간 전이었고, 지금의 난감한 기분이 도무지 꿈만 같았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승부수를 던졌다...
"... 그러면요... 저에게 확실한 댁의 마음을 보여 주세요... 제가
내일 이 찻집에 나와서 두 시간을 기다릴 테니, 만약 앞으로 저를
만나지 않겠다면 나오지 않으셔도 되고요.. 저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으시다면 여기로 나오세요..."
"... 그럴 필요 없으신데요......."
"... 아! 아닙니다.... 부담은 갖지 마세요...저를 제가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일 것 같아요...... 나오시던 안나오시던...저는 거기에 따라야죠..."

그녀가 버스에 올라타자 광화문 사거리에는 나 홀로 남겨졌다...
이순신 장군님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콧등이 찡해진다...


반응이 괜찮으면 이편을 올리죠... 아님 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