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대학교.
학교마다 색다른 행사를 마련해 놓고, 한참 축제가 무르익어갈 때,
우리들의 마음도, 교정을 맴도는 공기만큼 신선하고, 달떠 있었다.
마지막날 쌍쌍파티에 함께할 파트너....
경훈은 그 날 이후로 나를 잊었는지, 단 한번도 나타나질 않았었다.
입학식 날도. 민규 혼자서 내 눈치만 몇번 살피는 듯하더니, 끝내
아무것도 묻지도, 또 그 아이가 알고 있는 경훈의 소식도 얘기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
오늘의 파트너는 당연히 민규였다.
그런데, 언제 와 있었는지 경훈이 우리들 앞을 가로 막았다.
"민규야! 오늘 미사의 파트너는 당연히 내가 아닐까? 넌 어떻할래?
내가 다른 파트너를 구해다 줄까?"
"한경훈! 누구 맘대로 내가 니 파트너라는 거니?"
"허허. 당연한걸 뭘 묻고 그러시나. 앞으로 장내과를 맡아 운영할
사람이 그대의 파트너인걸, 무얼 통해서 확인을 시켜 줘야 되나?"
"그래, 미사야. 경훈이랑 놀아라. 난 뭐, 그냥...가던지..."
"경훈이, 너! 똑바로 들어! 난, 앞으로 더이상 너하고는 친구도
뭣도 아니야. 난, 널 몰라. 앞으로 영원히! 너같은 아이하고
친구였다는게, 내 일생의 수치였다는것도 알아둬!"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뺨에선 불이 났고,그 불을 끄려고 나선건
생각지도 않았던 민규였다.
"경훈이, 너, 무슨짓이니? 어떻게 여자애를 때릴 수가 있냐?
공부 좀 잘하면 다냐? 세상 여자애들 다 니 맘대로 할 수 있는지
몰라도, 앞으로 미사는 니 맘대로 못해! 가자! 미사야."
우리의 첫 축제는 그렇게 경훈의 출현으로 내 가슴에 또 다른 상처
를 남긴채 추억속에 묻혀 있다.
민규는 또 나를 달래야 했고,이젠 그 아픔을 술로 풀 수 있는 나이
가 됐다는 생각에 마실 줄도 모르면서 몇 잔의 술에 그만 취해 버렸
다.
"민규야, 우리 키쓰 또 할래?"
"그래두, 되니? 근데 여기서 어떻게 하지?"
"뭐 어때? 우리 둘이 좋으면 하는 거지."
"사람들이 보는데..."
"바보! 니가 그러니까 경훈이가 니 앞에서 그렇게 잘난척 하는거
지."
경훈이란 이름이 내 입에서 나오는걸 들은 민규의 낯빛이 붉어졌다.
"미사야. 나가자. 그리구 너, 다시는 내 앞에서 경훈이란 이름 부
르지 마라. 부탁이다."
민규의 아파트에, 술 취한 내가 민규의 침대에 앉아 있다.
우린 서로 말 없이 서로의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고, 오늘의 축제에
퀸이 되고 싶어서 새로 사 입은 원피스 속으로 민규의 손이 들어
왔지만 난, 막지 않았다.
"미사야, 나...처음인데...너, 괜찮니?"
울고 있는 내가 자기 탓인줄 알고 민규는 자꾸 날 부른다.
"나, 괜찮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치만, 민규야...."
난 차마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온통 혼란 속이었다.
'이게 뭐란 말야.어른이 돼가는게 이런 건가? 이게 지성을 자부
하는 대학생들의 참 모습이란 말인가? 이럴려구, 이렇게 망가지려
구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생이 된건가?'
민규는 계속 미안하다며 어쩔줄 몰라 했다. 그런 민규를 오히려
내가 달래 주고 있었다.
"괜찮아. 너 모르니? 나 너 좋아 하잖아."
"그럼, 내가 너, 사랑해두....되니?"
"사랑?...글쎄....너랑 나랑두 그런 감정이 생길까? 그리구, 넌
그딴걸 꼭 물어 보더라.그냥 내가 미치도록 보고 싶거나. 날 안
보면 죽을것만 같거나 그러면 그게 사랑이구나, 하면 되는거지."
"바보는 미사, 너면서... 내가 널 보면서 숨이 막힌적이 얼마나
많았었는데...그런 날, 넌 한번두 쳐다보질 않았었구...."
" 야 야.. 됐다 됐어. 우리 대사 들어 보면, 내가 남자구 니가
여자인거, 너 모르지?"
외박은 하지 않았으므로 우리 집에선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축제 마지막 날이라서 당연히 좀 늦는걸로 아셨고, 거기에
어제 경훈이 우리집으로 날 찾으러 왔었기에 집에선 당연히 경훈
이와 함께 축제에 있은 줄로 알고 계시는 아빠께, 난 폭탄이라고
생각하고 말씀을 드렸다,
"아빠, 어제 저 경훈이하고 같이 안 있었어요. 저 경훈이 안
좋아한다구 말씀드렸잖아요."
"허허... 녀석들은.. 어제두 또 싸웠냐? 우리 미사가 까탈이
심한가? 경훈이가 어디가 어때서 만나기만 하면 싸우냐?
어제 경훈이가 그러더구나. 니가 입학식에두 오질 못하게 해서
못 갔다구, 죄송하다구 깍듯이 인사를 하더구만, 똑똑하구 예의
바르구, 어른들 눈이 정확하니까 어지간히 해둬라. 이쁜짓두
한두번으로 끝내야지 길면 싫증난다. 경훈이 인물에 모르긴 몰
라도 여기저기서 탐 낼텐데..."
아빠는 벽이었다. 앞으로 내가 부딪치고 깨지면서 넘어야하는
첫번째 벽이라 생각하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저런식으로 아빠가 내 말을 못알아 들으시면, 난 내 마음대로 할
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