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의 나,
여름 방학인데도 우린 매일 등교를하며 수업을 받고 있었다. 우리가
첫 졸업생이 되는 신설 학교였던지라, 전교 50 등안에 드는 학생들만
모아서 별도의 한 반을 만들어서 특별 지도를 받고 있었다.
우리가 원해서 이 학교에 들어온건 아니였다.
우린 연합고사라는 시험을 치루어 놓았을 뿐, 학교배정은 우리의
의사는 전혀 상관이 없이, 오직 컴퓨터가 배정해 주는데로 가야하는
제도를 거쳐서 지금의 학교를 3 년째 다니고 있다.
그나마 우리의 학교는 신설이어서, 시설이 최상급이었고, 남녀공학
이면서, 합반까지 해준다는, 젊은 교장선생님의 방침을 예비소집일
날 들었던 친구들의 반응은 가지가지 였지만, 난,아무 관심도 없었
다. 내 목표는 오직 하나.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전교 1 등을 아무에게도 양보하지 않겠다
는 생각 뿐이였다.
난, 가끔 나 스스로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다.
모질거나, 악착같은 성격이 아니면서도 무언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
하면 끝장을 보고야 돌아서는, 강한 집착력을 가지고 있는 내가
싫을 때도 있었지만, 타고난 성격을 고치거나 버리기가 쉽지 않다.
공부는 악착을 부리지 않아도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던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명석한 두뇌에다가, 무언가를 배운다는걸 늘
재미있어하는 호기심까지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태어나면서부터 받아왔던, 첫손녀에게 쏟아 부으시던 할아버지의
누구도 말릴수 없던 사랑과, 내과 의사였던 아버지와, 여학교
가정과 교사로 계신 어머니 사이에서 첫딸로 태어난 내가 누리고
받았던건, 넘치는 사랑과, 평범한 사람이 쉽게 누릴수 없는 행복
과, 환경에서 오는 풍요로움이 늘 1 등을 하도록 도와 주었다.
그런 내게도 사춘기는 찾아 왔었고,
가족말고도 사랑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그렇지만, 그 어설픈 감정땜에 우리의 앞날이 먹구름 속에서
길을 잃고, 우주에서 버림받은 떠돌이 별이 되어서 추락하는
유성이 되리라고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고3의 여름날씨는,
우등생한테도, 전교 꼴지인 학생에게도 공평하게 더위와 짜증을
나누어 주면서,초조해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아랑곳 없이 기승을 부
리고 있었다.
바람은 야껴두었다 가을에 다 불꺼냐고, 툴툴대는 내 불평을 하늘
이 들었었는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소나기는 자율학습시간까지 계속 퍼부었고, 오랜만에 보는 시원한
빗줄기는 짜증으로 뒤범벅이던 가슴까지 씻어 주길 바라며, 창밖
을 내다보고 있던 나를, 선생님께서 부르셨다.
"미사야,지금 집에 가야겠다.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 가셨
다는구나.널 많이 찾으셨다는데... 어서 가 보거라."
아...! 할아버지. 내 할아버지. 내 할아버지. 할아버진 당신의
아들인 우리 아버지보다 손녀인 나를 더 끔찍히 사랑해 주셨었는
데... 초등학교 6 년을 등하교 길을 데려다 주고, 데려오곤 하셨는
데... 할머니 돌아가시고 노년의 허전함과 쓸쓸함을 오직 손녀딸
재롱으로 달래시던 할아버지셨는데...그런 할아버지를 난 늘 '내
할아버지' 라고 동생들은 할아버지 무릎에도 못 앉게 했었는데..
돌아가시면서 내가 얼마나 보고 싶으셨었을까?
걸을 수가 없는 날 짝인 민규가 아빠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아빠, 왜 돌아가시기 전에 나 안 불렀어?"
"할아버지께서, 너 놀랜다구,천천히 부르라고 하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숨을...거두셨다."
할아버지의 쭈굴쭈굴한 얼굴은 이미 싸늘한데, 그 얼굴을 부비며
할아버지의 마지막 체취를 맡으며, 할아버지의 무한했던 사랑을
이젠 가슴 속으로만 간직해야함을 깨달으며, 할아버지와 이별을 했
다. 사랑이란 오직 받는걸로만 알았던 내가 느꼈던 슬픔은, 처음
이성을 느꼈던 내 짝, 민규로 인해 차츰차츰 옅어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