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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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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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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BY 이나래 2000-12-15

"늘 그렇게 잘 웃으세요?"

역시 또 웃음이 문제였다.하긴, 우리나라 사람들 정서론 아무하고나

잘 웃는 여자를 정상으로 봐 주기 힘들지...

"말씀드렸잖아요, 습관이라구."

"습관이라...? 웃는것두 습관이 될 수 있나요? 웃음은 감정의 표현

아닌가요? 더구나 서양도 아닌 한국에서?"

귀찮게스리, 처음 만나는 사람마다 언제나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언제까지 해야하는지...

"할아버지께서 주신 선물이예요.내가 아주 애기였을때, 아무 감정

도, 분별력도 생기기 전부터 할아버지께선 나와 눈을 맞추시면서

웃어 주셨거든요."

"...? 이해가 잘 안되네. 애기들 보면선 누구든지 다 웃어 줄텐데,

그렇다고 다 그쪽 같진 않던데..."

"나, 귀찮아요, 그런 질문. 우리 커피 마시러 들어온거 아닌가요?

그냥 커피나 마셔요."

"아, 네, 귀찮게 해드렸다면 용서하시죠. 제딴엔 좀 특이하신분을

만난거 같아서.... 아뭏든 좋더라구요, 절보구 웃어주신게..."

그래, 그랬을테지. 너 뿐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들 그랬으

니까.

"영화 평론가가 직업인가요? 그거 힘들지 않으세요? 나두 영화

좋아해서 많이 보는데, 자막보랴, 배경보랴, 주인공 표정보랴

정신이 하나투 없는데, 한번 보구 어떻게 그리 일목요연하게

평가를 할 수가 있는지,신기하더라구요."

"영화평론이 본업은 아닙니다.영화광이다보니 사보 만드는 친구녀

석의 부탁으로 몇번 썼던게 자연스레 부업이 됐습니다.글구,저두

한번에 써지는거 아닙니다.오늘두 시사회때 봤는데 연결이 안돼

기에 다시 봤던거죠, 그러다가 댁을, '댁을?' 표현이 어째 19

세기네. 이름이나 알죠. 전 '하/동/민/'이라구 합니다.스포츠

용품 제조업체에 근무하죠. 여기 명함... 이름..물어봐두 돼요?"

"장/미/사/예요,무슨 이불가게 이름 같죠? 그치만 한문으론 예술

이예요, 아름다울 미/ 생각 사/ 아름다운 생각만 하라고 할아버

지께서 지어주셨대요. 근데, 나 오늘 이상하네.처음 만난 사람

인데 말 많이 하는거예요.왜 그러지?"

"왜 그런지는 내가 알죠. 말해줘요? 우린 취미가 같아서, 취향이

같아서 라구요."

"우리라구요? 푸후후..글구,취미, 취향이 같다는걸 어떻게 단정

짓구 말해요?"

"느낌이죠. 영화 좋아하구, 커피 좋아하구, 할아버지 좋아하구

벌써 3 가지나 겹치네요."

"할아버지, 좋아하세요? 그리구 난, 할아버지 좋아한다구 동민씨

한테 말한 적 없는데요."

"맞아요, 좋아한다구 말은 안 했지만, 얘기 도중에 여러번 할아

버지 얘길 했다는건,좋아하기 때문 아닌가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나의 할아버지. 그 분 생각을 하려니 또다시

가슴 한쪽이 알싸하게 아파온다.

"....커피, 다 마셨음, 이제 가죠."

"....? 저, 갑자기 언짢아 보이네요.내가 뭐 실수 했습니까?"

"그래요. 맞아요. 잘 봤어요. 나, 우울해요. 나, 할아버지 생각

나면 우울해져요."

"우리, 또 볼수 있을까요? 저, 미사씨 할아버지 얘기 듣구 싶은

데.... 명함 하나만 주세요. 할아버지 얘기 뿐 아니구 영화얘기

두 많이 하구 싶은데..."

"생각해 보구요. 전화주세요. 그 날 기분에 따라서 결정할꺼예요.

나, 변덕이 심해요."



집으로 가는 동안 내내 할아버지 생각을 하다가 지하철 속에서

기어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난, 웃기도 잘하지만,

눈물도 웃음 못지않게 참아지지가 않는다.

이 눈물도 할아버지땜에 생긴 습관이다.



"여기, 이거 티슈 쓰세요."

가방을 다 뒤져도 티슈가 없기에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 내게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기 티슈를 통째로 주었다.

고맙단 말도 못하고 당연한거처럼 받아 쓰다가,갑자기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옆의 사람 얼굴을 쳐다 봤다.

아, 7 년전의 그도 지금처럼 여행용 티슈를 통채로 내게 건네

주었었지.



그 날은 할아버지 제삿날 이었다.

날짜만 기억하고 있을 뿐 아무것도 할수 없는 난, 사무실에서

종일토록 울고 싶은걸 참다가 기어이 지하철 안에서 울음을 터뜨

렸던 것이다.


"화장지 없으시면 이거, 쓰세요."

그 날도 난, 울음이 그쳐지지가 않아서, 그냥 고개만 까닥해 주고

선 받아 쓰고 있는데,

"그거 공짜, 아닙니다."

뭐야? 남 속상해서 우는데, 장난치는거야? 고개를 획 돌려 그를 쳐

다 봤다. 물론 당연히 쬐려 보았지.

"울음 그치면 왜 울었는가를 말하셔야 되는겁니다."

니가 뭔데, 남 우는 이유를 일일이 다 알려고 하니?- 라고 하려다

가, 그냥 남은 티슈만 도로 주었다.

"4 장 쓰신거 같은데, 그것도 주셔야죠."

기가막혀. 내가 언제 달라고 했었나? 지가 스스로 줘 놓고선.

"이번역에서 내리세요. 사서 드릴테니까."

"당연히 내리죠. 대신 똑같은거 아니면, 사양합니다."

쭐레쭐레 따라 내리는 그를 뒤돌아 보니 연신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전염되어, 내 슬픔은 어느새 없어지고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