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학교로 향했다.
꽃집에 들러서 장미와 안개꽃이 보기좋게 섞인 꽃한다발을 샀다.
잠을 설쳐서 그랬는지, 아님 마음이 바빠서 그랬는지 꽃값 주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대로 돌아서다가 주인이 다급하게 부르는 바람에 아차 싶어 계산을 치루었다.
주인은 젊은 아가씨가 아침부터 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다니냐고 야단치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얼굴로 날 쳐다 보았다.
그런 주인에게 죄송하다는 말대신 빈 웃음만 짓고 말았다.
명호선배가 있을 만한 곳을 조심스레 찾아다녔지만 그 어디에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잘되었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무슨 용기로 꽃다발을 전해줄 것이며, 또 선배는 아무 생각없이 내 선물을 받아줄 것인지 걱정이 되었던 탓이리라.
갑자기 춥고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서두르는 바람에 아침식사도 거른 상태였다.
전해주지 못한 꽃다발은 저 스스로 초라함을 느꼈는지 이내 시들어가고 있었다.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왠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비록 주인을 찾지는 못했지만 빈 꽃병에라도 꽂아놓는 것이 내게 위로가 될 것 같아서 찾지 않던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아직 조금은 이른 시각이라 동아리방은 텅 비어있었다.
오랫동안 와보지 않았던 동아리방은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었다.
누군가가 그냥 내버려둔 과자봉지가 그대로 뒹굴고, 칠판에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낙서가 그대로 있었다.
꽃병이 있을까 싶었는데, 낡은 캐비넷을 이리저리 뒤지다보니 꽃병이었음직한 병하나가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구석에 놓여있었다.
대강 먼지를 떨어내고 주전자에 있던 물을 조금 따르고 꽃다발을 꽂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왈칵 열리는 것이었다.
'모르는 사람이면 어쩌지?' 걱정을 안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진 정희, 그였다.
"아직 연습시간도 아닌데, 일찍 나왔구나! 이렇게 열성인지는 몰랐는데......꽃이구나! 근데, 이상하게 슬퍼보인다! 너랑 꽃이랑......"
갑자기 그의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서러워져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의 그런 갑작스런 눈물에 그는 많이 당황한 듯 보였으나, 그저 아무말 않고 맞은 편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어느 정도 흐른 눈물은 그 끝이 보였고, 그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이 창피스럽긴 했지만 그동안의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은 후련해진 것도 같았다.
얼굴도 들지 못한 채 가방에서 휴지를 찾아 얼룩진 얼굴을 닦아내고 고개를 들었다.
그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 다 울었으면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너 우는 것 지켜보고 있었더니 내가 다 배가고프다. 식당에서 김치 볶음밥이 나오는 것 같던데, 얼른 가자!"
그의 부담감없는 태도에 나도 같이 웃고 말았다.
이른 점심을 먹고 났지만 아직도 연습이 시작되려면 한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으므로 그와 난 일찍 문을 여는 학교앞 찻집에 마주 앉았다.
"우진아! 너 보기보다 맘이 여린 것 같네. 난 니 첫인상이 하도 차가워서 어디 말이라도 제대로 붙일 수 있겠나 싶더니만, 내가 그 말 한마디 했다고 그렇게 울어버림 난 뭐가 되냐?"
"미안해! 그냥 맘이 그랬나봐. 하필이면 그 때 형이 들어와서는......"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장난처럼 눈을 흘겼다.
그 일이 있고나서 그와 난 자주 어울려 다녔다.
나의 짝사랑에 대해 그에게 털어놓기도 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명호선배에게 다가가기란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