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가 나영씨를 만나고 나서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납니다..윤호는 정말 행복해 보이더군요... 나 아가씨 만난다...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뭐하는 아가씬데? 하고 묻자.. 응.. 집에서 살림만 할 아가씨야.. 그랬어요.. 키가 커? 하고 묻자.. 그냥 보통이야.. 그럼 이뻐? 하고 묻자 그냥 그렇지 뭐.. 그럼 학교는? 몰라.. 저 어디 무슨 여대를 나왔다던데... 그러는 거예요...그래서 제가 물었죠? 직장도 없다. 이쁘지도 않고 키도 안 크다. 그리고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좋은게 뭐야? 하고... 그러니까.. 윤호가 그 사람 참 반듯해..그랬어요.."
거기까지 이야기를 하고나서 승우는 입을 다물었다.
돌이켜보면 윤호와도 회상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윤호를 참으로 좋아했다...
예과시절 윤호가 몸담았던 과내의 한 학회에서 나온 동아리 회보에서 보았던 그에 대한 앙케이트가 생각났다.
"첫사랑은?"
이라는 질문에...그는....
"Not yet"
이라고 적었었다.
그걸 보고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던가....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지인 제주도의 호텔에 도착해서 나누었던 우리의 첫 키스....
"에잇... 키스는 내 적성에 안 맞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애.."
하고 내가 말하자...
그는...
"나도.. 나도.. 영 우리 적성에 안 맞다. 그치 우린 정말 서로 나무 닮은 것 같애?"
하고 말했었다....
부부라는 것은 동일한 가치관을 지닌채, 상이한 기호를 가지고 가정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꾸려가는 것.. 이라는 원칙을 정하고 우리 부부가 걸어왔던 길을 돌이키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짧은 세월이지만...
또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
윤호와 나.. 둘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들 아주 아주 까마득한 옛날부터 연애를 해 온 커플같다고들 했다..
우리가 선을 보고 불과 몇 달만에 혼사를 치뤘다는 사실은 우리의 안 지 얼마 안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을 주곤했다.
승우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나영씨에게로 향하는 저의 감정을 돌릴수가 없었어요...우습지요? 하지만.. 저는 하루에도 백번씩 내가 어떠한 이유로 나영씨를 좋아하는가에 대해 자문(自問)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윤호와 같은 입장에서 나영씨를 만났어도 나영씨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를 같이 생각해보았구요... "
"...."
"나영씨... 제 공방은 후배가 맡기로 했어요.. 그리고 전시장이랑 일층 찻집은 어머니가 계속 맡아보시기로 하셨구요. 저 일본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하고 싶던 공부를 해 볼까 해요... 일본에 계속 살고 싶지만 돌아올지도 모르겠어요.. 부모님이 적적해 하셔서.. 나영씨, 용서해요.. 이번 일로 나영씨를 감정의 혼란에 빠뜨렸다면.. 아니면 혹시 나로 인해 불쾌함을 느꼈다면... 제발 용서해 줘요.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윤호에게도 용서를 빌 날이 올지도 모르지요..."
나는 끝내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내안에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를 판단할수 있는 잣대가 이미 고장난 상태였다.
계속 눈물만 흘렀다...
승우는 나의 눈물만으로 내게서 충분한 답을 들은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