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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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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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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회


BY noma 2000-12-14

13
호텔 일층에 있는 오픈된 바에 앉아서 칵테일을 마시며 라이브를 듣고 있던 그녀는 이제 피곤을 느꼈다.
아까 낮에도 바닷가에서 멀지 않을 것 같아 근사한 카페들이 있다는 고개를 걸어서 갔다오느라 기운이 다 빠진 모양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참 많이 걷는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미소 지었다. 내일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민우도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그가 그리워 미칠지경이었다.
그렇게 상처받았으면서도 이렇게 보고싶다니 정말 자신이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저녁을 먹으러 내려왔다가 결국 칵테일만 몇잔을 마시고 일어난 그녀는 빈속이어서 그랬는지 조금 취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를 나와 엘리베이터앞으로 가던 그녀는 라운지 쇼파에 앉아 있는 낯익은 뒷모습에 그자리에 못박힌 듯 서버렸다.
시선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본 그가 그녀를 발견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 어디 있었던거야? 방에 없다길래 여기 앉아서 출구만 바라보구 있었는데 ]
[ ...저기 바에 있었어 ]
그녀가 손으로 가리키자 그는 어이없어했다.
[ ... 한번 그쪽도 보는건데 괜히 여기서 기다렸네 ]
[ 많이... 기다렸어? ] 왜 이렇게 가슴이 떨리는걸까. 그녀는 아직까지도 그가 미치는 영향이 두렵게 느껴졌다.
[ 아니... 방으로 올라갈래? ] 



방으로 올라온 그녀는 초조하게 생수를 꺼내 마시는 한편 의자에 앉은 그는 너무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 웬일이야? ]
[ 데릴러 왔어 ] 뜻밖의 말에 가슴 한켠에서 뜨거운 감정이 솟아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뭔가 불안한 대답이 나올까 조바심이 난 것 같았다.
[ 민우 할머니에게 말했어... 민우는 ... 내 아들이 아니라구 ]
갑작스런 그의 말에 그녀는 충격을 받아 입을 열려고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 유진이와 결혼했을 때 이미 그때 다른 남자의 아일 갖고 있었어... 그녀는 나와 행복하지 못했어. 그땐... 내가 그녀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도 없었지...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이곳에선 그녀가 너무 힘들까봐 미국으로 갔었는데 그 곳에서 그녀는 더 힘들어했어. 많이 오고 싶어했는데 ... 나도 힘들었어 뭐든 나 혼자 힘으로 할수 있는게 없었으니까. 큰형 친구가 있어서 많이 도움을 받고 살았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게 쉽지 않았어...패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식구들을 만나는게 두려웠거든 ]
그의 얘기를 듣는동안 그에 대한 연민에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이제와서 민우의 얘기를 털어놓는건 무슨 의도로, 그녀는 급한 마음에 그의 말을 더 들어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 민우얘기를 할머니에게 했다는건 무슨 뜻이야? ... 이제와서 보내기라도 하겠단거야? ]
그녀가 흥분해서 소리치자 그는 쿡쿡 웃었다.
[ ... 그런거 아니야... 거긴 지금 민우를 키울 형편이 아니야. 민우에게 매달리는건 나하고 연결되는 유일한 끈이기 때문인거지... 유진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놔두고 날 택한건 집안의 강요 때문이었어. 언젠가 받아 줄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녀를 몰아 부쳤는데 이제 그녀가 죽고 없으니 민우마져 놓치긴 싫었을꺼야... 눈을 감기전에 내게 용서를 빌더군... 그리곤 민우를 부탁했어... 한동안은 배신감에 아이를 보는것조차 힘들었지.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구. 내가 그렇게 매달리지 않았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할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니까 죄책감이 들어 그녀의 집에 함부로 할 수가 없었어.
... 그런데 이제는 모든걸 정리하구 싶어...그리구 날 용서해준다면 다시 시작하고 싶어 ]
그의 얘기를 듣고 난후 그녀는 혼란스런 마음을 추스르느라 잠시 아무말없이 침대위에 걸터 앉아있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자 이제는 그가 초조해졌는지 다시 말을 꺼냈다.
[ 내가 잘못한게 많은거 알아... 이제와서 이런걸 느껴서 너무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 니곁에 있는동안 너무 행복했어... 지금 너무 힘들어. 민우는 널 데려오지 않으면 삼촌이랑 산다는데... 부러워 너와 재원이의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나도 이젠 널 떠나보낼 용기가 없어 ]
그녀의 입가에 행복의 미소가 번지고 있었지만 아직 한마디를 더 듣기 전까진 그를 용서 할 수가 없어 입술을 깨물며 그말을 기다렸다.
그는 이제 지친듯 다가와 재이의 두손을 자신의 두손에 감싸고 그녀앞에 무릎을 꿇었다.
[ 사랑해 ... 날 용서해줘. 이제야 깨달았어... 다시는 사랑을 할 수가 없을꺼라고 생각했거든.
그동안의 상처가 너무커서 내자신이 다른사람을 상처 입히고 있다는걸 자각하지 못했어. ]
이제 그녀는 마음놓고 웃을수 있었다. 웃는데 눈물이 나오는건 너무 이상했다.
[ 날 뭘루 보고 ... 내가 얼마나 끈질긴데 이런 일루 도망이라두 갈줄 안거야? ...얼마나 어렵게 잡은 사랑인데, 내일 돌아가면 이젠 폭력을 써서라두 맘을 돌려놓으려구 했는데... 이제 이렇게 나오면 맘이 약해지잖아. ]
[하하하... 흐∼ 음 ...지금 완전히 벌받는 기분이었어... 니가 계속 아무말 없어서 이제 정말 끝냈나보다 했잖아 ]
그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소리가 흘러나오며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 그정돈 아무것두 아니야... 그동안 나한테 한거에 비하면 이정도루 끝난걸 다행으로 알라구 ]
[..모든걸 잃었다고 생각했었어... 처음엔 사랑이, 다음엔 내 마음이 ...그리곤 그나마 나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해주었던 친구들까지...그런데 너마저 잃을걸 생각하니까 두려워졌어.  내  비뚤어진 자존심이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해...이젠 아무렇지 않게 말할수 있어 ]
[ 그럼 앞으로 평생 그말을 할 준비는 돼 있는거야? ]
그는 말대신 그녀에게 뜨거운 키쓰로 답하고 있었다.
어느새 그들은 서로의 옷을 모두 벗기고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몸부림을 시작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을 나눴을까 그녀가 이제 지쳐서 그의 품에서 졸고 있을 때 그가 귓가에 속삭였다.
[ 사랑해 ]

에필로그

[ 이민우! 빨리 안나와. 너 놔두고 그냥 나간다... 우리 아주 늦게 들어 올껀데 ]
부산에서 돌아온후 8개월이 지났다.
두사람이 민우를 데릴러 오빠집에 갔을 때 언니의 임신소식으로 집안은 들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언니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에 아기를 보러 가려고 나서는데 민우는
자기 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삼촌의 사랑을 뺐길까 벌써부터 질투를 하는 민우가 조금은 걱정되었다.
이제 두달후면 그녀의 아기도 나올 예정인데 민우는 점점 더 어리광이 늘어가고 있었다.

[ 에이, 너무 못생겼잖아 ]
유리창밖에서 아기를 보던 민우가 안심하는 말투에 그녀와 현수는 마주보고 웃었다.
어느새 다가온 오빠가 민우에게 꿀밤을 먹여 우는 아이를 달래려 자리를 떠나자 그녀는 이제 태어난 생명의 신비로움에 취해 있었다.
아쉬운 듯 자리를 떠나는 그녀의 무거운 몸을 부축해 언니의 병실로 향하는 현수를 바라보며 그녀는 미소 지었다.
요즘 그는 자기전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빠뜨리지않고 하느라 애쓰는중이었다.
이제 그의 사랑을 그리워 하는 날들은 오지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