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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춘다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줄 몰랐다.
민우는 놀이기구에도 관심이 없었고 말이 별로 없는 아이같았다.
아빠에게도 떼를 쓴다거나 뭘 요구하지도 않았고 현수도 아이와 노는 일이 익숙치 않아보여 그녀는 중간에서 아이의 흥밋거리를 찾기위해 힘겨워했다.
간신히 아이가 오락실에서 즐거운 반응을 보이자 그녀는 겨우 안심했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을 찾았는지 곧 그속으로 정신을 빼앗겼다.
[ 힘들지 않아? ]
[ 아니, 괜찮아. ...근데 민우가 원래 말이 없나봐? ]
두사람은 잠깐 게임에 열중해 있는 민우를 두고 오락실 밖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 아까 너무 갑작스럽게 말해서 민우가 충격받지 않았을까? ]
[ 아니. 아이라도 알아야할건 빨리 알리고 익숙해지는게 나을꺼야... 민우가 좀 어렵지?
나도 아이한테 어떻게 해줘야 할지 잘 몰라서 ... 늘 같이 있어주지도 못해서 혼자 하는 일이 많다보니까 아이가 좀 조숙해 ]
[ 지금은 어디서 지내는거야? ]
[ 큰형집 근처에 살고 있어서 거의 형수님이 봐주셔, 우리집에서 제일 따뜻한 사람들이니까 너한테도 잘해 주실꺼야 ...우리집 많이 힘든 사람들이거든 ]
그가 담배를 피워물며 씁쓸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착잡한 기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민우의 곁으로 갔다.
[ 민우 게임 잘하는구나?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게임을 무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민우가 게임이 끝나고 아쉬운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그녀가 말했다.
[ 누군데? ]
[ 응 ... 우리 오빤데 애들처럼 게임을 무지 좋아해 ]
[ 잘해? ]
아이가 관심을 보이자 그녀는 기분이 밝아졌다.
[ 그래, 아주 잘해... 언제 한번 민우 소개 시켜줄게 ]
[ 오빠, 나 책방 그만 둘래 ]
차가 오빠의 아파트 주차장에 서자 그녀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민우는 피곤했는지 뒷좌석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 재이야... 그럴 필요까지 없어. 니가 얼마나 책방을 좋아 하는지 잘알아. 나 때문에 니 생활을 포기 하는거 원치않아 ]
[ 그래두 결혼하면 힘들꺼야... 민우도 돌봐야 할꺼구 책방은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겨서 안돼 ]
[ 방법을 찾아보자. 집에 민우를 돌봐줄 아줌마를 두든지... 민우도 그런일에 익숙하니까 ]
[ 싫어, 기껏 엄마가 돼주겠다고 해놓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거잖아... 나 괜찮아 책방을 끝까지 꾸려 나갈수 있을꺼란 생각은 하지 않았어 ]
현수는 반대했다.
차라리 현수가 책방을 그만두고 자신과 민우에게 신경 써달라고 말했다면 이렇게 서운하지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집에 갔다.
그녀는 그가 지내온 환경에 한번 놀랐고 집안 식구들의 차가운 분위기에 다시한번 주눅이 들었다.
그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이나 다른 형제는 너무도 어렵고 무섭게까지 느껴졌지만 큰형님 내외분은 다정하게 그녀를 맞아주어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의 부모님은 그녀를 썩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현수의 첫 번째 결혼과 그의 고집을 생각 했는지 그녀를 받아 들이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그녀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엄숙한 분위기에서의 저녁식사를 마치고 결혼식 얘기가 오고갔다.
사실 그일에 대해선 당사자인 그녀의 의견은 필요없다는 듯이 현수와 어머니와의 차가운 대화 몇마디로 결정나버렸지만.
그녀는 그집에 있는동안 전혀 다른 세계로 혼자 떨어진 이방인이 그 곳에서 가장 약해보이고 그녀와 다를바 없는 존재로 보이는 민우를 가장 의지하고 있었다는걸 집을 나오면서 깨달았다.
[...휘∼유... 무섭다 ]
언제 부터였는지 그녀의 손안엔 민우의 작은 손이 꼭 쥐어 있었다.
그녀의 중얼거림과 표정을 바라보던 민우는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아이의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왜? ]
[ ...그냥 ...누나 얼굴이 너무 웃겨서 ]
무안했는지 빠르게 얘기하고 고개를 돌리는 민우를 보며 그녀는 경직됐던 몸과 마음이
풀리는걸 느꼈다.
결혼식은 여름이 끝나는 9월초로 정해졌고 이제 한달 정도가 남은동안 현수는 그녀의 책방이 있는 동네 아파트로 이사하기로 했다.
그가 책방을 정리하는 일을 반대했기 때문에 그녀는 당분간 그일에 대한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
결혼 날짜가 정해지자 현수는 그동안 이일에 너무 신경을 썼다고 생각했는지 미국에서 돌아온후 하게된 큰형님의 회사일을 돕느라 점점 그녀에게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져 울적한 날들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