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신 바 위 9 ![]() 와릉 와릉 와릉 ...... 기계소리가 작은 산골 마을에 울려 퍼졌다. 오늘은 산 밑 외딴집에서 타작을 하는지 작은 초가집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지개를 지고 볏단을 나르는 사람 기계옆으로 볏단을 옮겨주는 아이 양발을 교대로 기계를 밝아가며 벼이삭을 터는 사람 다 털은 볏짚을 소먹이로 쓰기 위해 짚가리를 만들는 사람 머리에 수건을 쓰고 갈퀴로 지프라기를 쓸어 내리는 사람 따사로운 햇살아래서 그들의 하루는 분주하고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매일 보리밥에 쌀 한 웅쿰을 넣어 지은 밥을 어머니께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의 밥 사발에만 살살 골라 푸고는 휘휘 저어 푼 시커먼 꽁보리밥은 늘 아이들 차지였지만 이 날은 큰 가마 솥에 흰 쌀밥을 가득 지어 이웃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는 한다 사공은 아까부터 빈배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온 마을이 가을 거듬이를 하며 겨울 준비에 빠져있을 무렵 산등성이에 서있는 나무들은 잎새를 떨구기전 한껏 멋을 부리며 고운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 무렵이면 아내는 뒷산에 올라 가을 들꽃과 도토리 열매를 따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었는데...." 푸른 보라 빛의 작은 들꽃을 보니 사공은 베시시 웃던 천진한 아내의 얼굴이 생각나 속주머니에 깊숙히 넣어두었던 아내의 편지를 꺼내 보았다 그녀가 떠난후 사공은 강바닥에 업어져 몸을 말리는 나룻배를 보며 탄식했었다 "왜 너만이 그 곳에 누워있냐고? 내 아내는 볕 좋은 강가에 앉아 옷고름을 말릴 수도 없고 가을 바람에 머리카락도 날릴 수 없는데 너는 왜 돌아와 상처받은 내 가슴을 갈갈이 찢어 놓는냐고?" 사공은 다시는 노를 잡지 않으리라 맹세했지만...... 그러나 그는 노를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목숨을 던지며 구하려던 배... 사공은 그동안 아내의 머리를 빛 겨주고. 음식을 챙겨 먹이고 옷을 갈아 입히며......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사공은 아내를 그렇게만 대했던 지난날들이 한없이 후회스러웠다. 어쩌면 아내의 행동은 자신을 위함이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공은 더욱더 슬품을 가누지 못했다. "아~ 처음에는 미쳐서 무작정 물속으로 뛰어 든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 였어 글쎄...." 말릴 사이도 없고 붙잡을 틈도 없이 진돗개가 주인을 구하려 불구덩이를 뛰어든 것처럼 그렇게 아내는 나룻배를 향해 서슴없이 뛰어들었다고 아랫마을 사는 노인네가 들려줬다 사공은 아내의 편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왜 아내는 그까짖 배에 목숨을 걸었을까?" "이 편지는 무었일까?" "유서? 그러면 미리 죽음을.......?" 사공은 명주실 같은 아내의 생명줄을 끊은 하늘을 원망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는 더 이상 사공의 짐이 되기 싫었을지도 모를 일이 였다 "그게 아니 였는데......." 그는 타작하는 집에서 보내준 보따리를 풀었다 하얀 쌀밥과 나물 두어가지 자반 한 토막. 사공은 옛날 일을 회상했다 따듯한 밥을 싸들고 들어가 쌀밥을 가득푼 숫가락에 고등어 자반을 얹어주면 베시시 웃으며 먹던 아내 모습에 사공은 얼마나 행복 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두어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보자기를 푼 것이다 "고시네~" 그 하얀 쌀밥을 푹 퍼서 강물에 던졌다 강 바닦 까지 햇살이 비추어 물결 그림자가 해맑은 자갈위로 어른 거렸다 작은 물고기들이 꼬리를 치며 밥알을 따라 움직였다. 그는 요즘 들어 배를 타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20여 리 떨어진 곳에서 배를 발견할 당시 아내는 노를 매는 고리에다 자신의 옷고름 을 맨 체 세상에서 마지막 몸부림으로 배를 붙잡으려 했던 아내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아이들이 제잘 대는 소리에 그는 급히 식사를 마치고 노를 잡았다 이렇게 농사철이 바쁜 철에는 학교를 가는 아이들이 몇 명 안 된다 볏단도 날라야하고 아기도 보아야하고 하루종일 잦은 심부름으로 일꾼 한사람 몫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몇 번을 오가며 뜨문뜨문 오는 뱃 손님을 실어 날랐다 "야 너 어떻할래?" "뭘?" "내 알을 깨서 연필을 못 샀잖아" "그러니까 너도 짚 푸라기로 꾸러미를 만들어 가지고 다녀" "야 우리 엄마가 그냥 주는데 어떻게 해" "빨리 니 연필이라도 내놔" "나도 하나밖에 없어" "그럼 집에 가서 숙제는 어떻게하냐?" 학용품이 필요 할 때마다 아이들은 달걀과 노트와 연필을 바꿔쓰는 것인데...... 사공은 두 아이가 다투는 모습을 무심히 보다가 주머니속에 있는 연필을 만지작 거렸다 그는 아내가 썼다는 편지 뒤쪽에다 아침마다 아내가 즐겨쓰던 비녀를 그려 넣고 있었다 참빚으로 곱게 빛어넘긴 까만 머리결을 생각하며 ........ 편지내용이 무척 궁굼하긴 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어 꼭 품속에 넣고 다니것이다 진작에 글을 배우지 않은것에 후회를 하면서 한통에 편지를 보며 그는 수십통에 편지를 읽고 있었다 "집에도 없니?" 사공이 물었다 "네" "아저씨 연필 빌려 줄께 내일 가지고 오너라" 늘 모른척했던 그가 웬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자신도 연필이 필요 하다는걸 자랑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아내가 글을 쓸줄 안다는것을 동네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을까? "네 아저씨 내일 꼭 같다 드릴께유" 아이들은 싸운 것도 금방 잊고 이마를 맞대고 조잘대다가 신바람이라도 난 냥 뛰어간다 어께에 둘러맨 네모 난 빈 도시락에서 쩡그렁 쩡그렁 숱가락이 장단을 맞추니 개구쟁이들의 뜀박질은 더욱 신바람이 났다 천진스런 아이들이 깊어가는 가을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돌아갈 따듯한 집이 있고 기다리는 부모 형제가 있는 그 아이들이 마냥 부러웠다. 사공은 노를 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치스런 생각일랑 하지 말자 어차피 내 몫이 아닌것을..." 아이들이 강가 논뚝에서 메뚜기잡이에 한창이다 강아지풀 줄기를 뽑아 매뚜기 목덜미를 꿰면서 재잘대는 즐거움에 해가 지는줄도 모르는 아이들... 도깨비 풀씨가 옷에 붙은걸 모르고 배를 타고서야 떼어내어 물에 던지기도 하고 고슴도치 흉내를 내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는 어느새 아이들의 놀이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를 뒷산에 묻던날 고맙게 염불을 해주시던 스님이 밀짚모자를 푹 눌러 쓴채 배전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하신가요" "네" "야들아 어서건너자?" '아저씨 우리 다음배로 갈께유" 사공은 노를 젓기 시작했다 "지난번엔 고마웠어요 장날도 아닌데......." "아닙니다 오히려 공양을 받고 간걸요 다른 절에 다녀오는 길이였지요" "보살님은 집이 어디신가유" "중이 집이 어디 있습니까? 이슬을 피할수 있고 부처님의 자비가 있는 곳이면 어느곳이든 내 집이지요" "그런데 왜 밀짚모자는 그렇게 깊게 쓰고 다니시나요?" 사공은 그동안 궁금하게 생각했던 질문을 던졌다. " 그래 혼자 지낼만 하신가요?" 스님은 애써 대답을 피했다 "네에....." "딸아이를 대려 오시지요" "글쎄요" "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사람의 생이란 모두가 업보인 것을........" "환생을 믿으시나요?" "그럼요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언제인가는 맑은 안개구름으로 다시 오르죠 그리곤 세상구경에 온갖 때가 찌들면 중량을 이기지 못해 다시 비로 내리고....... 자연의 섭리가 아닌가요? 스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인간도 만물 중에 하나일 뿐이지요" "그럼 이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부디 마음을 자비롭게 가지시길......." 바랑을 챙겨들고 뱃전을 나서는 스님을 향해 "저희 집에 꼭 한번 들려주세요" 사공은 크게 소리를 높였다. 사공은 이상하리 많큼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오후 내내 스님 생각에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와릉 기계소리도 멈추고 피곤한 농부들의 휴식 시간이 그렇게 ?아 들었다 빨간 노을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빨려 들어가자 스물스물 안개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사공은 불현듯 스님의 얼굴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집으로 오신다고 했으니 그때....." 사공은 손님이 없는 틈을 타서 저녁을 먹고 올 양으로 급하게 집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굴둑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고 있었다 급히 방문을 열고 보니 갈라진 방바닥 틈세로 연기만 삐집고 올라오고 있었다 9회 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