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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BY noma 2000-11-14

10
그녀는 그가 갈아입을 옷을 챙겨가지고 기념일파티가 열리는 호텔의 예약된 방에서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크소리가 들리자 흥분된 가슴이 심하게 떨려 문을 열기도 전에 곧 쓰러질 것 같았다.
문이 열리고 그리운 얼굴이 나타나 그녀를 뚫어져라 보자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들어와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그의 팔에 안겨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 이러다 늦겠어. ] 그가 먼저 이성을 되찾고 그녀를 몸에서 떼어 놓았다.
[...빨리 가서 끝내고 집으로 가자구, 그때까지 참을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
그의 천진해보이는 미소에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 ... 당신한테 다시 듣고 싶은 얘기가 있어. 그러니 얼른 가서 끝내고 가자구 ]
그가 어느새 옷을 다 갈아입고 그녀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연회장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속에서도 그녀의 시선은 그의 모습만을 쫓고 있었다.
그는 기념일에 대한 인사를 하는 중이었다. 이제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고백을 받아내는 일만이 그녀가 할 일이었다.
그녀가 행복한 기분에 취해 있을 때 누군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 안녕하세요, 나연씨. ]
[ 안녕하세요 ]
이 방송국의 또다른 사장인 가운의 친구 김 준영이었다.
몇 번의 모임에서 인사를 한적이 있었지만 그녀를 보는 눈빛이 웬지 차갑게 느껴져 부담스러운 인물이었다.
[ 가운이가 많이 변했더군요, 여자한테 그렇게 쌀쌀?О?굴던 녀석이 비서한테 꽃집 전화번호를 물어보기도 하고 여직원들이 놀라워 하고있죠 ]
그의 말에 얼굴이 빨개졌다.
[ 아버님은 안녕하신가요? ]
그의 입에서 아버지얘기가 나오자 그녀는 당황하여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보는 그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 가운이를 저렇게 정신 못차리게 하는걸 보면...당신네 부녀는 참 대단한거같애 ]
그녀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말투였다.
[ ...무슨 뜻이죠? ]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 또다시 가운이를 상처 입히려거든 그만 두는게 좋을꺼야. 당신 아버지한테 당한걸루 족하니까 ]
[ 무슨 뜻이냐니까? ]
[ 모르고 있었어? 당신 아버지, 그녀석을 그렇게 아끼는 것처럼 보이게 하곤 뒤에서 그가 공들여 만든 사업계획서를 다른놈들한테 팔아치울 생각이나 했지. 정말 비열한 인간이야.
... 가운이 당신 아버질 얼마나 존경했는지 알아? ]
토할 것 같았다. 머릿속이 어지럽고 메스꺼워서 그 자리에서 쓰러질것같아 중심을 잡으려 애썼지만 결국 비틀거리고 말았다.
그가 팔을 잡아 주었지만 그녀는 그손을 뿌리치고 뒷걸음질쳤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가운이 그녀의 얼굴을 찾아내어 미소짓자 굳어진 얼굴로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연회장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그녀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개의치않았다.


[ 무슨일이야? ]
[ 미안해, 밖에 택시가 있는데 대신 돈좀 내줄래. ...지갑을 안 가져왔어 ]
밖에 나가 택시비를 내고 들어온 그녀의 친구는 나연이 지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자 궁금한 눈으로 쳐다보는 학생들을 의식했는지 그녀를 감싸안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3일 밤낮을 앓았다. 은이는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그녀를 데리고 갈수가 없어 수소문 끝에 이천에 있는 자신의 선배 작업실로 그녀를 데려다 놓았다.
선배는 잠시 여행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친구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졌지만 가운의 얘길 털어놓을수는 없었다.
은이도 그런 그녀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아무 말도 묻지 않고 그녀를 돌봐 주었다.
그녀옆에 있으려는 은이를 고집스럽게 화실로 돌려 보내고 침대 속에서 마냥 눈물만 삼키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받지않으려는데 전화벨이 그칠 생각을 하지 않자 그녀는 침대에서 기어나와 밖에있는 전화를 찾았다. 시골 농가 주택을 작업실로 쓰고 있어 꽤 추워 몸을 잔뜩 움츠리며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 나연아, 나야. ... 저기 니 남편 곧 있으면 거기루 갈꺼야 ...야, 내말좀 들어봐. 니 남편이 여길 찾아왔었어. 전에 내 얘길 들었다면서 이 근처 화실을 다 뒤진 모양이더라구. 야... 무슨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둘이 얘길 해보는게 좋지 않겠니? ...니 남편두 꼴이 말이 아니었어. ]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한기때문인지 다시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조급하게 팔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안절부절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차가 들어오고 급하게 차문이 여닫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그녀가 있는 작업실 문앞에서 발소리가 멈추었다.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 문을 열자 초췌해진 모습의 그가 들어와 아무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 안그래도 돌아가려고 했어요. ...끝내야 할 문제가 있을테니까. ] 그녀가 먼저 침묵을 깨고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
[ 제발 그런식으로 말하지마. 당신이 그런식으로 말할때마다 내가 얼마나 상처받는줄 알아? ]
[ 당신이? ...설마? ...우리 아버지가 비열한 사람이라면...당신도 나을건 없어. 나한테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 정말 무서워. 이젠 어떡할거예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한 내가 얼마나 우스웠을까, 복수가 된거 같아서 통쾌했겠네. 당신을 상처입힌 사람의 딸을 상처 입힐수 있게 돼서]
[ 그만해! ]
그가 소리치며 다가와 그녀를 와락 끌어 안았다.그녀가 반항하자 그는 있는 힘껏 그녀를 조이며 그의 팔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게 했다.
[ 사랑해. ...당신을 너무 사랑해. ]그가 우는 걸까. 그녀는 그의 고백에 온몸의 기운이 흐물해져 그의 팔안에서 그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 미안해, 당신이 나 때문에 가슴아팠다면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도 가슴 아팠어. 그런데도 당신을 힘들게 하고, 그래 ...난 비열한 놈이었어. 그렇지만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꾸 그렇게 되는걸 어쩔 수가 없었어. ]
한동안 둘다 말이 없었다.
[... 아빨 용서해줘요 ] 그녀가 목소리를 쥐어짜내어 겨우 내뱉은 말이었다.
[ 그런말 하지마, 당신 아버지한텐 감정없어. 그당시에 상처받았던건 사실이지만 그건 금방 극복했어. ...당신아버진 이런말 하긴 뭐하지만 사업가로서의 능력은 없는 분이야. 모험을 하기엔 너무나 소심한 성격이었어. 그래서 좀더 안전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했던것뿐야. ]
[ 그래도 아빠의 행동은 ...너무나 ...왜 아빠에게 자꾸 실망만 하게 되는거지? ]
[ 그러지마, 당신 아버지만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딨다구... 아버지도 괴로워하셔 ]
그의말에 그녀는 품에서 빠져 나와 그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그가 미소지으며 다시 그녀를 안았다.
[ 미국에 가서 당신 부모님을 만나고 왔어. 그동안 혹시 연락을 하고 계시는 분이 있나 수소문해서 아버님 계신델 알수있었어. 거기서 아주 열심히 살고 계셔.
아버님이 부도낸 액수는 그렇게 크지않아. 너무 소심하셔셔 큰 사고는 치지도 못할 분이시지. 아버님이 좀더 열심히 하시구 내가 좀 도우면 금방 갚을 수 있을꺼야.
그러니 당신은 이제 마음 좀 편히 가져도 돼 ]
그녀는 고마움에 목이 메어 그의 품에서 계속 흐느끼기만 했다.
[ ...사랑해요 ]
[ 알아. 그말이 그렇게 다시 듣고 싶었는데... 그날 당신이 전화만 조금 늦게 끊었어도 당신도 들을수 있었을텐데 ]
[ 난, 당신이 뭐라 그럴지 몰라 겁이나서... ]
[ 사랑해. 얼마나 당신을 사랑 한다구. ...당신이 없는 며칠동안 죽을 것 같았어. 친구놈을 반쯤 죽여 놨다구. ]
[ 왜? ...당신을 꽤 생각 하는 것 같던데 ]
[ 그게 아니지, 내가 자기 동생이랑 결혼하길 바랬는데 안되서 당신한테 고약하게 군거야.
이래서 친구랑 동업은 안돼. 방송국은 이제 정말 지겨워 ]
그녀가 그의 팔에서 빠져나와 즐거운 웃음소리를 냈다.
그도 이제 안심을 했는지 더 이상 그녀를 잡으려 하지않았지만 시선은 계속해서 묶어두고 있었다.
[ 당신 친구한테 얼마나 혼이났는지. ...날 아주 용기없는 바보 취급하더라구 ]
그녀가 깔깔댔다.
[ 정말 좋은 친구예요. 그애 때문에 당신한테 고백도 할 수 있었는데 ... ]
[ 나중에 한 턱 내야겠는걸 ... 당신이 친구를 만나서 다행이야. 그때 이후 사람들한테 마음을 열지 않아서 걱정이었는데 ]
[ 그땐 내가 진짜 사랑을 했나 싶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창피해 ]
[ 너무 어렸지. 외로워서 더 매달렸던 것 같애. ...지금이니까 하는 말인데 그때 당신이 울고 불고 난리칠때도 웬지 불쌍하다는 생각이 안들더라구 ]
[ 너무해 ]
그녀의 항의에 그가 큰소리로 웃어댔다.
[ 참, 당신 엄마가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지? 아버님한테 얼마나 끔찍이 하신다구.
그동안 무슨 일 때문에 그러고 사셨는지 모르지만 이제야 마음을 여신것같애.
당신을 무척 그리워하고 계셔.]
[ 나두 엄마가 보고 싶어 ]
[ 뵈러 가자구. 영주권을 따실 생각이어서 당분간은 우리가 뵈러 다녀야돼 ]
[ 고마워요. 그리구 ...사랑해요 ]
그가 다가와 그녀를 안고 깊은 입맞춤을 했다.
[ 나두 사랑해.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구. 으... 벌써 얼마나 된거야? 빨리 안가면 여기서 일내고 말것같애 ]그의 장난스런 제스츄어에 그녀가 웃음을 참지 못하자 그는 그녀를 꼭 안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 그녀의 사랑이 이루어졌다.

< 끝 >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께 무척 감사하구요.
좀더 다듬고 노력해서 더 좋은 로맨스소설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번에도 많이 읽어주세요. 행복하세요.